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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문화 코드를 활용한 글로벌 세계관 설계

by 김동은WhtDrgon

18-1. 당신의 세계는 누구의 언어로 말하는가: K-콘텐츠의 진화


한국인인 당신이 만약 누군가에게 “저는 인도네시아 음악을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상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독특한 취향을 가졌군요’라는 표정으로, 당신을 소수의 비주류 문화를 탐닉하는 마니아 정도로 여길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인도네시아 음악’은 가믈란 같은 전통 악기 연주나,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이국적인 노래와 같은 막연한 이미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제3세계 음악 좋아하시나보다. 뭐 이렇게 표현할 수도”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K팝’이라는 단어는 세계 무대에서 정확히 이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K팝은 한국이라는 특정 국가(Korea)의 대중음악(Pop)이라는 의미를 넘어서지 못하는, 지극히 ‘로컬(Local)’한 음악이었다. 화려한 군무를 추는 아이돌, 알록달록한 의상, 한국어 가사 등 K팝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매우 낯설고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로 보였다.


“K팝에 관련된 용어들은 전부 다 폐쇄적이고도 로컬적이었어요. 그래서 이건 K팝이 왜 이래 뭐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였단 말이에요.”


이 시기 K팝을 소비하는 것은, 마치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처럼,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스러운 취향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지금, K팝의 위상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K팝은 더 이상 변방의 로컬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 대중문화의 최전선에서 ‘지금 가장 트렌디한 것’을 정의하는 강력한 기호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극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나의 고유한 세계관이 특정 문화권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열광하는 보편적인 ‘장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변용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우리는 K팝의 진화 과정을 네 가지 단계의 문화적 코드로 분석함으로써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 ‘힙(Hip)’의 단계: 개인적 발견과 취향의 선언
모든 문화 현상의 시작은 소수의 ‘힙스터’들이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가치 판단이다. “힙은 내가 좋은 거야. 그냥.” K팝의 초기 글로벌 팬덤은 바로 이 ‘힙’의 단계에 있었다. 그들은 주류 팝 시장의 획일성에 싫증을 느끼고, K팝이라는 낯선 장르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매력과 즐거움을 발견했다. 이 시기의 팬들에게 K팝은 ‘나의 독특한 취향’을 증명하는 배지이자, 남들은 모르는 비밀을 공유하는 소수만의 암호였다.


2. ‘쿨(Cool)’의 단계: 커뮤니티의 형성과 문화의 축적
‘힙’한 것을 좋아하는 개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쿨’한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쿨’은 “우리들이 보기에 괜찮아”라는, 집단적 동의를 통해 형성되는 가치다. 유튜브 리액션 비디오, 팬 번역 자막, 온라인 포럼 등을 통해 K팝 팬들은 국경을 넘어 서로를 발견하고, 그들만의 언어와 ‘밈(Meme)’을 만들어내며 견고한 하위문화를 구축했다. 이 단계에서 K팝은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을 넘어, 소속감을 부여하는 ‘우리들의 문화’가 된다.


3. ‘핫(Hot)’의 단계: 대중적 인지도의 폭발
커뮤니티 내부에서 응축된 에너지가 특정 계기를 통해 폭발하며 주류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될 때, 그것은 ‘핫’한 트렌드가 된다. “쫙 퍼지고 있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바로 이 ‘핫’의 단계를 상징하는 전 지구적 사건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노래의 구체적인 맥락이나 가사의 의미를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말춤이라는 재미있는 밈을 통해 K팝이라는 현상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깊이’가 아닌 ‘확산’이다.


4. ‘팝(Pop)’의 단계: 보편적 장르로의 격상
‘핫’한 트렌드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될 때, 마침내 그것은 ‘팝’의 지위에 오른다.
“팝은 대중적인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콘텐츠의 국적이나 로컬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구찌의 신상 컬렉션을 보며 ‘이탈리아 전통’을 묻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지금 가장 최신(Latest)’의 디자인 트렌드를 본다.


현재의 K팝이 바로 이 지점에 도달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제 K팝을 ‘한국 음악’이라서 듣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음악’이기 때문에 듣는다. ‘K’라는 이니셜은 이제 ‘Korea’라는 국적을 넘어, 하나의 독자적인 품질 보증 마크이자, 글로벌 대중문화의 최상위 포식자를 의미하는 보편적인 ‘장르’가 된 것이다.


“K팝에 관련된 단어가 예전에는 단어가 되게 특색 있고 지역성이 있고 연결성이 되게 강한 단어 뭉치가 따로 있었다면 지금은 이게 쫙 퍼져서 상계되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K팝이 구사한 가장 영리한 전략은, 자신의 고유한 로컬성을 버리는 대신, 그것을 전 세계인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 코드’로 번역해냈다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향해 “내가 어릴 적 그의 영화를 보며 공부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존경의 표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당신들의 문화적 아들이며,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영화 가족이다”라는, ‘가족주의’라는 가장 보편적인 코드를 활용한 완벽한 세계관적 선언이었다.

BTS가 〈Dynamite〉를 통해 마이클 잭슨의 스타일을 오마주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미국의 대중, 특히 흑인 커뮤니티가 가진 ‘마이클 잭슨’이라는 공동의 영웅 서사를 건드림으로써, 문화적 이질감을 단숨에 허물고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전략이었다.


“엄마가 자기 전성기 때 들었던 거기 때문에 엄마와 아들이 함께 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장면이 터져버린 거예요.”

이처럼 세대와 인종을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당신의 세계관이 특정 문화권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신만이 가진 고유하고 ‘힙’한 로컬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전 세계의 ‘이웃’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와 상징으로 번역해내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의 세계는 누구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가? 그 언어가 당신의 섬 안에만 갇혀 있는지, 아니면 모든 대륙을 향해 열려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야말로 글로벌 세계관 설계의 첫 번째 과제다.



18-2. 글로벌 팬덤을 위한 언어 전략: ‘인터내셔널 콩글리시’의 탄생


세계관이 국경을 넘어 확장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언어’라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장벽과 마주하게 된다. 많은 창작자가 언어를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투명한 ‘도구’로만 여기는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언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언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문화적 권력’이며, 시대의 흐름과 힘의 역학에 따라 그 위상이 끊임없이 변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글로벌 팬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콘텐츠를 번역하는 것을 넘어, 이 언어의 보이지 않는 힘을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를 돌이켜보자. 우리 부모님 세대의 연습장 표지에는 의미도 모르는 영어 문구나 프랑스어 단어가 멋스럽게 인쇄되어 있었다. 커피숍 이름은 ‘스타벅스’처럼 영어이거나 ‘카페베네’처럼 유럽 언어여야 세련되게 느껴졌다. 홍콩 영화가 아시아를 풍미하던 시절에는, ‘영웅본색(英雄本色)’과 같은 네 글자 한자만으로도 압도적인 포스를 풍겼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이는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콘텐츠의 힘, 즉 ‘문화적 권력’ 때문이다. 우리는 영어를 ‘배운다’기보다 동경했고, 프랑스어를 ‘쓴다’기보다 선망했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내가 더 세련되고 진보적인 문화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지금, 이 권력의 지형도는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K팝과 K드라마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이제는 ‘한글’ 자체가 가장 ‘힙’한 문화적 기호가 되었다. 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며 ‘사랑해’, ‘오빠’ 같은 단어를 배우고, K팝 노래의 한국어 가사를 서툴게 따라 부르며, 심지어는 자신의 SNS 프로필에 한국어 문장을 새겨 넣는다. 이제 한글은 더 이상 번역되어야 할 로컬 언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글로벌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언어의 위상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글로벌 세계관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과거에는 글로벌 시장을 위해 모든 것을 영어로 번역하고 현지화하는 것이 정답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어설픈 현지화보다, 한국어 고유의 뉘앙스와 표현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 더 매력적이고 ‘진정성’ 있는 소통 방식이 될 수 있다.


‘베니월드’ 프로젝트의 디자인 원칙—“영어가 괜찮다면 한글도 괜찮다”—는 바로 이러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영문 로고 아래 한글 설명이 붙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한글 로고 아래 영문 설명이 붙는 것 역시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언어는 각자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고유한 의미와 생명력을 가진다. 중국어의 ‘가유(加油)’는 문자 그대로 ‘기름을 붓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힘내!’, ‘파이팅!’이라는 응원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파이팅’이 ‘싸우다’는 본래의 뜻을 넘어 한국에서 독특한 응원의 의미를 갖게 된 것과 같다. 이처럼 문자적 번역만으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는 뉘앙스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글로벌 소통의 시작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인터내셔널 잉글리시(International English)’라는 개념을 통해 언어의 다양성을 이해해야 한다. 더 이상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도 특유의 억양이 섞인 ‘힝글리시(Hinglish)’, 싱가포르의 ‘싱글리시(Singlish)’처럼, 전 세계 사람들은 각자의 문화적 배경을 영어에 녹여내며 수많은 ‘로컬 영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드라마 《로스트》에서는 한국계 캐릭터가 구사하는 ‘꽈찌쭈’ 영어부터, 이라크 군인의 영어, 영국 상류층의 영어까지, 그야말로 ‘모든 종류의 영어’가 등장하며 언어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한 외국인 영어 강사가 “한국 사람들의 원어민 같은 발음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들린다”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요한 것은 발음의 정확성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 자신감 있게 소통하는 태도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K-콘텐츠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언어 현상, 즉 ‘인터내셔널 콩글리시’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다. ‘먹방(Mukbang)’, ‘애교(Aegyo)’, ‘치맥(Chimaek)’과 같은 단어들은 이제 영어로 굳이 번역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 전 세계 팬덤 사이에서 통용된다. 이는 단순한 콩글리시를 넘어, 한국 문화의 고유한 경험을 담고 있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 전략을 구사할 때, 우리는 반드시 동전의 뒷면, 즉 ‘문화적 금기(Taboo)’에 대해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특정 문화권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표현이나 음식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심각한 모욕이나 종교적 금기가 될 수 있다.


어떤 아이돌이 ‘순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글로벌 콘텐츠의 메인 키워드로 내세울 경우,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이나 소고기를 신성시하는 힌두 문화권의 팬들에게는 의도치 않은 상처나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음식, 종교, 역사, 특정 제스처와 관련된 표현들은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할 때 반드시 각 문화권의 전문가를 통해 검수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팬덤을 위한 언어 전략은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한 축은 우리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것을 번역의 대상이 아닌 매력적인 ‘문화 상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은 타 문화권의 금기와 감수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의도치 않은 오해와 갈등을 피하는 ‘섬세한 외교’를 펼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균형 감각을 갖출 때, 당신의 세계관은 비로소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뿌리내릴 수 있는 진정한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18-3. 현실의 경험을 번역하는 언어, '인접 세계관'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 ‘IMF 외환위기’나 ‘2002년 월드컵’과 같은 특정 국가의 ‘공통 경험’은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의 기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적과 문화를 초월하여, 인류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근원적인 경험의 장(場)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것을 ‘인접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인접 세계관’이란, 《해리 포터》나 특정 게임 팬덤 같은 창작된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에 가장 인접해 있는, 우리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필연적으로 소속되고 경험하게 되는 현실의 구체적인 사회 시스템과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가정, 학교, 직장, 군대, 종교 공동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현실의 인접 세계관들이 왜 그토록 강력한가? 왜냐하면 이들은 특정 문화권의 고유한 사건들과는 달리, 인류 보편의 원초적인 관계와 감정, 그리고 질서의 원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10대 소년은 대한민국의 ‘수능’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으며, 첫사랑에 설레는 감정을 경험한다. 브라질의 30대 여성은 한국의 ‘회식 문화’를 낯설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상사와의 갈등을 겪고, 동료와 협력하며, 승진의 기쁨과 실적의 압박감을 느낀다.


이처럼 인접 세계관은 우리의 창작물이 낯선 문화권의 사용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번역기’ 역할을 한다. 우리는 ‘K팝 아이돌 연습생들의 치열한 경쟁’이라는 매우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더라도, 그것을 ‘학교’라는 보편적인 인접 세계관의 틀, 즉 ‘혹독한 입시 경쟁을 치르는 예술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로 번역하여 제시할 때, 전 세계의 10대들은 그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며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 전략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소재를 차용하는 것을 넘어, 각 인접 세계관이 가진 고유한 ‘작동 원리’와 ‘핵심 감정’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1. 가정: 관계와 성장의 원형
가정은 우리가 경험하는 최초의 세계관이자 가장 원초적인 감정의 용광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갈등, 형제간의 경쟁과 우애, 가족을 지키려는 보호 본능. 이 감정들은 인류 보편의 코드다.

“가족주의는 (…) 모두가 좋아하는 인간 승리의 서사”다

게임 《갓 오브 워》는 북유럽 신화라는 낯선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핵심에는 서먹했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며 진정한 유대를 형성하는 ‘가족’의 이야기가 있기에 전 세계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다. 당신의 캐릭터들이 맺는 관계의 원형을 ‘가정’이라는 인접 세계관에서 찾아낼 때, 그들의 이야기는 국경을 넘는 힘을 얻게 된다.


2. 학교: 경쟁과 우정, 사회화의 축소판
학교는 우리가 처음으로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동등한 개인으로서 경쟁하고 협력하며 사회적 관계를 배우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선배와 후배라는 위계질서가 있고, 친구라는 수평적 연대가 있으며, 시험이라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있다. 일본의 수많은 ‘학원물’ 장르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학교’라는 보지 못한 인접 세계관이 제공하는 드라마—우정, 사랑, 배신, 성장, 경쟁—가 문화권을 초월하여 모두의 학창 시절 기억을 호출하기 때문이다.


3. 직장/군대: 조직과 시스템, 그리고 생존
직장과 군대는 개인이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생존하는 법을 배우는 세계관이다. 이곳에는 명확한 상명하복의 질서(정치 모델)가 있으며, 개인의 감정보다는 조직의 목표가 우선시된다.

“한국의 회사 체계가 군대랑 똑같은 호환성을 갖고 있어서 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이 두 세계관은 매우 유사한 작동 원리를 공유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것은, ‘군대’라는 매우 특수한 한국적 배경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담긴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전 세계 모든 ‘직장인’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가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버리고 ‘취향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이 인접 세계관 전략과 어떻게 연결될까?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넷플릭스가 식별하는 ‘좀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취향 공동체는, 사실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과 인간성’이라는, ‘군대’나 ‘재난’과 같은 인접 세계관의 핵심 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그들은 국적과 나이를 넘어, ‘만약 세상의 모든 질서가 무너진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에 매료된 이들이다. 넷플릭스는 취향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들이 어떤 종류의 ‘인접 세계관 드라마’에 끌리는지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향한 세계관 설계는 이질적인 문화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경험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세계의 핵심 갈등은 어떤 인접 세계관의 드라마와 가장 닮아 있는가? 당신의 캐릭터들이 겪는 감정은 ‘가정’, ‘학교’, ‘직장’ 중 어떤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날 수 있는가? 이 보편적인 인접 세계관의 틀 위에 당신만의 독창적인 문화 코드와 설정을 얹을 때, 당신의 이야기는 비로소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살아있는 세계관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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