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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당신의 세계관 피드백: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by 김동은WhtDrgon

17-1. 후킹의 부재: “그래서, 이 세계의 다른 점이 뭔데?”


창작의 여정을 시작하며 우리는 종종 익숙하고 검증된 장르의 조합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스팀펑크’의 낭만적인 기계미학과 ‘마도공학’의 신비로운 힘을 결합하고, 그 위에 ‘용사와 마왕의 대결’이라는 고전적인 서사를 얹는 것은 훌륭한 출발점처럼 보인다. 각각의 요소는 이미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아온 강력한 키워드이며, 이들을 한데 모으면 실패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세계가 탄생할 것이라고 믿기 쉽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특히 당신이 목표로 하는 독자가 장르 문법에 정통한 ‘서브컬처 팬’이라면, 당신은 가장 냉혹하고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요?”


당신의 세계관을 마주한 그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내가 스팀펑크 40편을 봤어. 자, 이제 너의 스팀펑크는 뭐가 다른데?” 이것은 단순한 트집이나 비아냥이 아니다. 수많은 세계를 여행하며 온갖 종류의 창의력을 섭렵해 온, 그 분야의 ‘변태들’이라 불릴 만한 코어 팬덤이 던지는 가장 정당하고 예리한 질문이다. 그들은 이미 당신이 제시한 모든 요소를 개별적으로, 혹은 유사한 조합으로 수없이 경험했다. 그들에게 ‘스팀펑크와 마법의 조합’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마도 과학은 파이널 판타지 6 나올 시절 (…) 올드스쿨을 갖다가 지금 끄집어내고 있는 거예요.”


그들에게 당신의 세계관은 그저 익숙한 재료들로 만든, 맛이 예상되는 음식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익숙한 장르를 다룰 때 창작자가 빠지기 쉬운 ‘후킹(Hooking)의 부재’라는 함정이다. 후킹이란, 독자나 사용자의 멱살을 잡아채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독창적인 ‘한 방’을 의미한다. 이 ‘한 방’이 없다면, 당신의 세계관은 수많은 아류작의 홍수 속에서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한 채 잊혀 갈 위험이 크다.


“서브 컬처 쪽을 소구하잖아요. 그럼 우리는 끔찍하게 좁은 시장으로 들어가요. 근데 그 좁은 시장에서 승리하려면 독식을 해야 돼. (…) 차별성과 날카로움이 굉장히 세야 된다는 소리에요.”


그렇다면 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당신만의 날카로운 ‘한 방’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해답은 단순히 장르를 ‘섞는 것’을 넘어, 그 장르의 ‘핵심 규칙’을 비트는 데 있다.


1. 핵심 동력원을 비틀어라: 당신의 스팀은 무엇으로 끓는가?
‘스팀펑크’의 근간은 증기기관이다. 그렇다면 그 증기를 만드는 에너지원을 비틀어보자. 만약 이 세계의 기관들이 석탄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혼을 태워 얻는 ‘영혼 증기(Soul Steam)’로 움직인다면 어떨까? 도시는 화려하게 발전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하층민들이 사후에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동력원으로 착취당하는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제 당신의 스팀펑크는 단순한 기계미학을 넘어, 계급 갈등과 윤리적 딜레마라는 깊이 있는 주제를 품게 된다.


2. 마법의 대가를 비틀어라: 당신의 마법은 무엇을 대가로 하는가?
‘마도공학’은 마법과 기술의 결합이다. 그렇다면 마법을 사용하는 ‘대가’를 비틀어보자. 만약 이 세계의 마법이 사용자의 ‘기억’을 대가로 요구한다면 어떨까? 강력한 마법을 쓸수록 소중한 추억이 하나씩 지워진다.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필살의 마법을 사용한 용사는, 자신이 왜 싸워야 했는지, 지켜야 할 동료가 누구였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이제 당신의 마도공학은 편리한 기술이 아니라, 정체성과 기억이라는 인간의 근원을 뒤흔드는 비극적인 드라마의 장치가 된다.


3. 선악의 구도를 비틀어라: 당신의 용사는 정말 선한가?
‘용사와 마왕’이라는 구도는 가장 고전적인 트롭스다. 이 구도 자체를 뒤집어보자. 만약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마왕’이 사실은 세계의 마력 총량을 조절하여 멸망을 막는 일종의 ‘안전장치(Failsafe)’이고, 이를 모르고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야말로 세계를 파멸로 이끄는 존재라면 어떨까? 파티원 중 한 명이 동료를 배신하는 장면은 이제 단순한 클리셰가 아니다. 그 배신자야말로 세계의 진실을 알고 용사를 막으려 했던 진정한 영웅일 수 있다는 충격적인 반전의 복선이 된다.


‘33살이 되면 죽는 세계’라는 설정이 왜 그토록 강력한지 생각해보라. 그 세계의 나머지 99%는 평범한 판타지 세계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33살에 죽는다’는 단 하나의 비틀린 법칙이, 그 세계의 모든 것을—사랑, 가족, 야망, 예술—우리와는 전혀 다른,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익숙한 요소들을 100% 조합한 세계보다, 99%의 익숙함과 1%의 충격적인 비틀림을 가진 세계가 훨씬 더 강력한 훅을 가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당신의 세계관이 서브컬처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재료의 목록을 나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당신은 그들에게 익숙한 재료로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새로운 요리를 대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세계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그래서, 당신의 세계는 뭐가 다른데?” 그 답을 찾는 순간, 당신의 세계관은 비로소 평범함을 넘어 비범함으로 도약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17-2. 디테일의 힘: 호숫가의 집에서 톱니바퀴 초인종까지


독창적인 ‘훅(Hook)’을 통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는 그들이 당신의 세계에 기꺼이 머물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거창한 설정이나 장대한 연대기 때문에 세계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세계의 공기를 직접 들이마시고, 그곳의 흙을 밟아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세계를 ‘실재하는 곳’으로 믿고 사랑하게 된다. 세계관의 진정한 매력은 거시적인 설정이 아닌, 살아 숨 쉬는 ‘디테일(Detail)’에서 나온다.


많은 예비 창작자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세계를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 세계는 마법과 기계공학이 발달한 마도공학 문명입니다.” 이 문장은 정보를 전달할 뿐,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여행 가이드북에서 ‘파리는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입니다’라는 문장을 읽는 것과 같다. 우리는 파리가 아름답다는 ‘정보’를 얻었을 뿐, 에펠탑의 야경이 주는 황홀함이나 센 강변의 낭만적인 공기를 직접 ‘체험’하지는 못했다.


세계관 창작자의 임무는 가이드북 저자가 아니라, 독자의 손을 잡고 함께 그 세계를 여행하는 동행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독자에게 세계를 설명하는 대신, 그 세계의 아주 작은 단면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 훈련법을 ‘슬라이스 오브 라이프(Slice of Life) 구체화’라고 부른다.


‘호숫가의 집’ 비유를 떠올려보자. 내가 당신에게 “호숫가에 집이 한 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는 이미 구체적인 이미지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당신은 그 집의 지붕 모양을 알고 있다. 삼각형일 수도 있고, 평평할 수도 있다. 창문의 위치와 모양, 심지어 그 창에 드리워진 커튼의 무늬까지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정보를 주입한 것이 아니라, ‘호숫가의 집’이라는 키워드가 당신의 경험과 기억을 호출하여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창작의 과정도 이와 같다. 우리는 먼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호숫가의 집’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감각적으로 탐험해야 한다.


“그 세계를 남한테 얘기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를 충분히 여행했어야 돼.”


당신이 만약 ‘스팀펑크 마도공학’ 세계를 만들고 싶다면, ‘마도공학’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신, 그 세계를 살아가는 한 평범한 인물의 시점으로 들어가, 그의 아주 사소한 일상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새벽 3시, 빌어먹을 담배가 다 떨어졌다. 나는 외투를 걸치기 전에 허리춤에 스팀건을…


이 짧은 단락 어디에도 “이 세계는 스팀펑크와 사이버펑크가 결합된 위험한 디스토피아입니다”라는 설명은 없다. 하지만 독자는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그 모든 것을 직관적으로 체험한다. 권총이 화약이 아닌 압축 스팀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에서 ‘스팀펑크’의 기술 수준을, 자경단 드론이 골목을 순찰한다는 사실에서 ‘사이버펑크’의 감시 사회 분위기를, 그리고 담배 하나를 사기 위해 무장해야 한다는 상황에서 이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더 사소한 디테일로 파고들어가 보자. 당신의 스팀펑크 세계에 사는 한 탐정의 사무실 문을 상상해보자. 그 문에는 어떤 초인종이 달려 있을까?


“문의 초인종은 닳아빠진 황동 버튼이었다. 버튼을 누르자,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한줄기 스팀이 뿜어져 나오며 붉은색의 액체가 쭉 빠져나가며 문 위쪽에 설치된 복잡한 톱니바퀴 장치가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녹슨 체인이 덜그럭거리며 당겨지더니, 사무실 안쪽에서 ‘뎅-’ 하고 맑은 종소리가 한 번 울렸다. 전기로 작동하는 벨보다야 번거롭지만, 이 도시에서는 이게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다. 적어도 EMP 폭탄이 터져도 이 초인종은 울릴 테니까.”


이 묘사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계는 전기가 보편화되었지만 여전히 기계식 장치를 신뢰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불안하게 공존하는 문명이다. 또한, ‘EMP 폭탄’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 도시가 기술적 테러의 위협에 노출된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톱니바퀴 초인종’이라는 아주 작은 디테일 하나가, 세계관 전체의 기술 수준, 사회 분위기, 역사적 배경까지 함축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펑크(Punk) 장르의 핵심은 “절차와 동력의 연결을 되게 중시”한다는 점에 있다. A에서 B로 결과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과정—톱니바퀴가 돌고, 체인이 당겨지고, 스팀이 압축되는—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펑크 미학의 정수다.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세계의 사람들은 아침에 무엇으로 세수를 하는가? 그들이 즐겨 먹는 길거리 음식은 어떤 맛과 냄새를 가졌는가? 그들의 도시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이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구체적인 디테일을 쌓아나갈 때, 당신의 막연한 설정은 비로소 독자들이 만지고, 맛보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현실이 된다. 거대한 용을 묘사하는 것보다, 그 용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비릿한 유황 냄새를 묘사하는 것이 때로는 더 강력하다. 세계관의 위대함은 스케일이 아니라, 디테일의 깊이에 있다.


17-3. 정합성의 함정: 게임 기획자와 소설가의 차이


세계관 구축의 여정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의 강력한 유혹에 빠진다. 바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모든 요소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지도록 만들고 싶은 ‘정합성(Consistency)의 함정’이다. 우리는 세계의 모든 규칙이 공정하게 적용되고, 모든 캐릭터가 균형 잡힌 힘을 가지며, 모든 사건이 논리적으로 인과관계에 따라 발생해야만 좋은 세계관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강박은 특히 게임, 그중에서도 여러 플레이어가 경쟁하고 협력하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세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게임 기획자는 다른 글 쓰는 사람보다 굉장히 강하면서도 특화된 능력의 정합성이에요. 말이 되게 만들어. (…) 7명이 있으면 그걸 밸런스를 순식간에 맞춰내려고 그래. 왜냐하면 소설에서는 밸런스가 안 맞아요. 솔직히. 주인공 따로 있고 엑스트라 따로 있는데, 근데 게임은 7개의 직업이 있으면 밸런스가 맞아야 돼요.”


게임 기획자에게 ‘밸런스’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마법사 직업이 전사 직업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모든 유저가 마법사만 선택할 것이고 게임의 생태계는 무너진다. 7개의 직업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면서도, 전체적인 성능 면에서는 거의 동등한 수준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게임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핵심적인 ‘정합성’이다. 게임 기획자는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복잡한 수식을 계산한다.


문제는, 많은 창작자가 이러한 게임적 사고방식을 이야기 창작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관 속 모든 요소를 공정하고 균형 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것, 즉 ‘재미’와 ‘드라마’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불균형’에서 태어난다. 압도적으로 강한 악당과 보잘것없이 약한 주인공,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불가능한 목표, 사회의 부조리한 차별과 편견. 이러한 극단적인 불균형이야말로 갈등을 만들어내고, 독자들이 주인공의 여정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만약 다윗과 골리앗이 처음부터 비슷한 체급이었다면, 그들의 싸움은 그저 평범한 격투 시합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불가능해 보이는 불균형을 주인공이 처절한 노력과 의지, 그리고 약간의 행운으로 극복해내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소설가는 의도적으로 불균형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주인공에게는 특별한 재능과 강력한 동료를 몰아주고, 엑스트라들은 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경으로 소모된다. 이것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불공정함 때문에 우리는 주인공의 서사에 열광하는 것이다.


“닌자가 갑자기 등장해서 다 죽여버리는 것보다 재미없으면 쓰지 말라”는 말은, 때로는 논리적 정합성보다 순간의 압도적인 카타르시스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관 창작자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정합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합성에만 매몰될 수도 없다. 해답은 ‘설정’의 영역과 ‘이야기’의 영역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데 있다.


세계관의 ‘설정(Setting)’은 최대한 정합성을 추구해야 한다. 당신이 만든 세계의 법칙, 역사, 시스템은 일관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이 단단한 ‘설정’의 기반이 있어야만 독자들은 당신의 세계를 신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법을 사용하면 수명이 줄어든다’는 법칙을 설정했다면, 이 법칙은 주인공이든 악당이든, 심지어 엑스트라에게든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 설정의 정합성이 무너지는 순간, 세계 전체가 가짜처럼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그 단단한 설정의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Story)’는 의도적으로 불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이 정합적인 세계 속에서 유독 ‘불합리한’ 상황에 처한 인물을 조명하고, ‘불공정한’ 운명에 맞서 싸우는 그의 여정을 그려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마법-수명 등가교환’의 법칙 속에서, 유독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아 마법을 쓸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처절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다. 설정의 ‘정합성’이 이야기의 ‘비극성(불균형)’을 더욱 극대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세계관은 관객석에 입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올라오게 만드는 작업이다.
세계관은 참여자에게 배역을 제공한다. 그러기에 정합성있어야 하지만,

세계관에 참여를 마음먹게 하기 위해서는 비정량적, 정성적 매력이 있어야한다.


세계관 창작자는 냉철한 ‘게임 기획자’의 뇌와 뜨거운 ‘소설가’의 심장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세계의 뼈대를 세울 때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논리와 균형을 따져야 하지만, 그 세계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할 때는 과감하게 불균형과 불공정을 끌어안아야 한다. 세계관의 정합성은 유입된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생활 기반’을 제공해주지만, 그들을 이 세계로 처음 끌어들이고 영원히 머물고 싶게 만드는 것은 결국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거부할 수 없는 드라마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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