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왜 당신의 AI 번역은 실패하는가?

부제: 번역가 마인드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로

by 김동은WhtDrgon

PART 1. 번역의 종말과 시작

우리는 지금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시점에 서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이 기술에 의해 실시간으로 해체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ChatGPT를 켜고 한국어 원고를 붙여 넣은 뒤 "영어로 바꿔줘"라고 입력할 수 있습니다. 10초도 걸리지 않아 유려한 영어 문장이 화면을 채웁니다. DeepL은 문학적 뉘앙스까지 살려준다고 자랑하고, Papago는 한중일 번역의 정확도를 과시합니다. 구글 번역은 이미 100개가 넘는 언어를 지원합니다.


이 경이로운 속도와 접근성 때문에, 수많은 창작자와 기획자들은 착각에 빠집니다.
"이제 번역은 끝났구나. AI가 다 알아서 해주는구나."

하지만 그 결과물을 들고 실무 현장으로, 혹은 글로벌 시장으로 나갔을 때 마주하는 것은 처참한 실패입니다.


주인공의 이름 '백룡'은 1장에서 'White Dragon'이었다가 3장에서는 'Baek-Yong'이 되고, 5장에서는 갑자기 'The Pale Dragon'으로 바뀝니다. 존댓말을 쓰던 캐릭터가 갑자기 반말을 하고, 게임 UI 텍스트는 버튼 밖으로 튀어나갑니다. 미묘한 문화적 뉘앙스는 증발하고, 문장은 건조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국 여러분은 "역시 기계는 안 돼"라며 혀를 차고, 다시 비싼 비용을 들여 휴먼 에이전시를 찾거나, 글로벌 진출의 꿈을 '비용 문제'라는 핑계로 서랍 속에 넣어둡니다.


번역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온다

역설적이지만,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번역 자체는 점점 중요하지 않아질 것입니다.


이미 유튜브는 자동 자막을 넘어 자동 더빙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X(구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모든 SNS는 게시물을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보여줍니다. 크롬 브라우저는 웹페이지 전체를 클릭 한 번에 번역합니다. 이메일은 Gmail이, 문서는 구글 독스가, 채팅은 카카오톡이 알아서 번역해줍니다. 이제 모든 서비스에, 브라우저에, 이메일에, 오피스에, 전화기에 AI가 설치되면서,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가 의식되지 않는 투명한 레이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이 2,0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 성경의 본질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번역되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범세계적 콘텐츠이기 때문에 번역된 것입니다.

K-pop도 마찬가지입니다. BTS의 노랫말이 영어로, 스페인어로, 아랍어로 번역되어 자막으로 달리지만, 그것이 K-pop의 핵심은 아닙니다. K-pop은 언어를 초월한 무언가로 전 세계와 소통합니다. 춤, 비주얼, 사운드,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관 자체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실시간 AI 번역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지는 세상. 한국어로 말하면 상대방 귀에는 영어로 들리고, 영어로 쓴 글이 내 화면에는 한국어로 보이는 세상. 그렇다면 번역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은 세계관 전개에 필수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번역은 더 중요해집니다.
정확히는, '번역'이 아니라 '세계관 전개'가 중요해집니다.


세계관은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키워드는 다국어로 동시 구성될 때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스타워즈의 '광선검(Lightsaber)'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것은 단순히 한국어 '광선검'이 영어 'Lightsaber'를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Lightsaber'는 스타워즈라는 키워드 클라우드의 일부입니다. Force, Jedi, Sith, The Dark Side... 이 모든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의미망을 구성합니다.


'광선'도, '검'도, 'Light'도, 'Saber'도 본래의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무언가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스타워즈 세계관이라는 맥락 안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image)'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입니다. 지금은 jpg, png 같은 그림 파일이 빼앗아가 버린 그 단어 - 심상(心象), 뉘앙스, 세계관 - 그 자체를 구현해내는 것. 그것이 진짜 번역이 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 완벽한 세계관적 체계가 있다면, 번역은 그저 부수적인 작업일 뿐입니다. 광선검의 번역에 필요한 모든 단어, 모든 맥락, 모든 관계가 이미 데이터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PART 2. 왜 당신의 AI 번역은 실패하는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AI 모델이 덜 똑똑해서일까요? 여러분의 프롬프트가 부족해서일까요?
단언컨대, 아닙니다. 여러분의 번역이 실패하는 진짜 이유는, 여러분이 번역을 '언어의 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실패 사례 해부: AI는 왜 '백룡'을 매번 다르게 번역하는가

제 필명으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판타지 웹소설 작가가 ChatGPT-4를 이용해 자신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주인공의 닉네임은 '백룡'. 용맹한 전사이지만 흰 갑옷을 입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1장 번역 결과: "White Dragon raised his sword."

좋습니다. 의미가 통합니다. 작가는 만족했습니다.

3장 번역 결과: "Baek-Yong stepped forward, his eyes blazing."

어? 갑자기 음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유는? AI가 '고유명사는 음역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라는 패턴을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1장에서 White Dragon으로 번역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었습니다.

5장 번역 결과: "The Pale Dragon stood alone on the battlefield."

이번엔 'Pale Dragon'입니다. '백(白)'을 'White'가 아닌 'Pale'로 번역했습니다. 틀린 건 아니지만, 일관성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7장 번역 결과: "He wore the white armor that earned him his name."

여기서는 아예 '백룡'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고 설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같은 캐릭터, 같은 이름인데 4가지 표기가 나왔습니다. 독자는 혼란스럽습니다. "White Dragon과 Baek-Yong이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캐릭터인가?" 이것은 단순한 오타나 실수가 아닙니다. AI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영어면 다행입니다. 히브리어와 줄루어는 어떻게 합니까?


인간 번역도 실패한다: 불완전성의 인정

AI를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기존에 의존해왔던 '인간 번역'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이 하는 번역이 완벽하다"는 환상을 가지고 AI와 비교합니다. 하지만 실무에서 겪는 현실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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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제웍스 CEO. 배니월드,BTS월드, 세계관제작자. '현명한NFT투자자' 저자. 본질은 환상문학-RPG-PC-모바일-쇼엔터-시네마틱-게임-문화를 바라보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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