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교육/키즈 IP] 공부가 아닌 모험이 되도록
지금까지 각 분야의 IP를 전개할 때 쟁점과 메제웍스의 솔루션을 제시했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메제웍스의 교육 솔루션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됩니다"라는 처방전을 내놓지 않습니다. 학부모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여러 분면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왜 이렇게 조심스러울까요? 교육은 특별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세계관과 직업 세계관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람이고, 그 책임감은 다른 어떤 소비 결정보다 무겁습니다. 새 옷을 잘못 사면 버리면 되지만, 교육을 잘못 선택하면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학부모의 태도는 견고하고 엄격합니다. 당연합니다. 자녀의 교육에 관한 한, 실험적이거나 혁신적인 것보다 검증되고 안전한 것을 선호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메제웍스는 이 태도를 존중합니다. 함부로 "우리 방식이 더 낫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질문을 멈출 수 없습니다. 지금의 교육 방식이 정말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시험 점수를 올리는 것과 지식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인가? 게임을 10시간 하는 아이가 공부는 10분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던지는 질문들과,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교육을 논하기 전에, 먼저 네 가지 개념을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뭉뚱그려 "공부"라고 부르지만, 사실 전혀 다른 것들입니다.
수험(Exam):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기술입니다. 어떤 문제가 나올지 예측하고,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을 익히고, 시험장에서 실수 없이 답안을 작성하는 능력입니다. "10년간 출제되지 않았으니 이 단원은 건너뛰어도 됩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수험 기술입니다.
학습(Learning):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입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지 못하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경험입니다. 시험과 무관하게, 공룡의 이름을 100개 외우는 여섯 살 아이가 하는 것이 학습입니다.
교육(Education):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지식을 넘어서 가치관, 태도, 사고방식을 배웁니다. 협력하는 법, 실패를 견디는 법, 타인을 존중하는 법. 이것이 교육입니다.
수련(Training): 반복을 통해 숙련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피아노 연습, 축구 훈련, 그림 그리기. 몸과 마음이 기술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수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수험에는 이미 수십 년간 축적된 노하우와 수조 원의 시장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인정합니다.
이 글은 "지식의 기쁨"에 관한 것입니다. 수험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알아가는 즐거움에 관한 것입니다.
솔직해집시다. 수험은 아동노동입니다.
국가는 아동이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수면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고행에 가까운 행동을 강제하는 것을 막습니다. 아동의 건강과 발달을 보호하기 위한 법입니다.
하지만 학습만은 예외입니다. 아이가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어도, 수면이 4시간으로 줄어도, 친구와 놀 시간이 전혀 없어도, 국가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장합니다.
게임 셧다운 제도는 있지만 인터넷 강의 셧다운 제도는 없습니다. 밤 12시가 넘으면 게임은 강제로 꺼지지만, 인강은 새벽 4시까지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학습은 아동에게 허용된 유일한 고행입니다.
수험 시장은 이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합니다. "10년간 출제되지 않았으니 이 문제는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비교육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수험의 관점에서는 완벽하게 합리적입니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은 시간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수조 원이 투입된 이 시장의 숙련도는 엄청납니다. 문제 유형 분석, 출제 경향 예측, 오답 패턴 파악. 여기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어떤 우회 경로도, 어떤 혁신적 방법론도 이 시스템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의 관심사와 목표가 "아이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하는 확장IP"같은 것이라면, 답은 명확합니다. 검증된 학원에 보내고, 검증된 문제집을 풀리고, 검증된 인강을 듣게 하십시오. 이것이 최선입니다. 메제웍스는 여기서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요?
2014년, 에듀테크 시장은 하나의 비유로 요약됐습니다. "초콜릿 입힌 브로콜리."
맛없는 공부(브로콜리)에 재미있는 게임(초콜릿)을 억지로 씌우는 시도였습니다. "몬스터를 잡으려면 영어 단어를 맞춰야 해요!" 몬스터는 게임 요소이고, 영어 단어는 학습 요소입니다. 둘을 억지로 결합했습니다.
"어머나 인기 있는 히어로 셋과 몬스터 넷을 더하면 몇일까요?"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아이들은 재미도 못 느끼고, 학습 효율도 떨어졌습니다. 게임으로서도 실패했고, 교육 도구로서도 실패했습니다. 부모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타협점일 뿐이었습니다. "게임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거야"라고 변명할 수 있는 알리바이.
아이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초콜릿만 빨아먹고 브로콜리는 뱉어냈습니다. 몬스터는 클릭했지만 영어 단어는 대충 찍었습니다. 게임의 외형만 가져오고 본질은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화려한 그래픽이나 캐릭터가 아닙니다. 동적 정의와 능동적 추론입니다. 플레이어가 스스로 규칙을 발견하고, 전략을 세우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가는 과정. 이것이 게임의 마법입니다.
하지만 2014년의 교육용 게임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 이제 영어 단어를 배워볼까요?"라며 텍스트를 들이밀었습니다. 게임이 아니라 교과서에 그래픽을 입힌 것이었습니다. 학습만화나 딸기맛 치약처럼, 본래 기능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수준 낮게 사용된 껍데기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습니다. 2025년, 교육계는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교육용 게임을 따로 만드는 대신, 상업용 대작 게임을 교실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인크래프트 에듀케이션 에디션을 봅시다. 화학 원소 주기율표를 외우는 대신, 게임 안에서 원소를 조합해 화합물을 만듭니다. 수소 2개와 산소 1개를 합치면 물이 됩니다.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수십 번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억됩니다.
역사 시간에는 고대 건축물을 직접 짓습니다. 피라미드를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블록이 필요할까요? 노동력은 얼마나 들까요? 책에서 "노예 10만 명이 20년 동안 지었다"라고 읽는 것과, 직접 블록을 쌓으며 그 규모를 체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디스커버리 투어 모드를 제공합니다. 전투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고,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를 걸어 다니며 박물관 도슨트의 설명을 듣습니다. 파라오의 무덤 구조,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 양식. 게임이 역사 교과서가 됩니다.
로블록스 스튜디오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게임을 만듭니다. 물리학 법칙을 구현하고, 사회학 시뮬레이션을 설계합니다. 코딩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는데, 만들고 싶은 것이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코딩을 배웁니다.
이것이 GBL(Game-Based Learning)의 진화입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게임을 하면서 배우는 게 아니라, 게임 안에서 생활하며 배운다."
하지만 여전히, 이것은 수험이 아닙니다. 마인크래프트로 수능 점수를 올릴 수는 없습니다. 어쌔신 크리드가 역사 시험 문제를 풀어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학습입니다.
물류 업계에는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운송 허브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마지막 구간. 가장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입니다. 트럭은 도착했는데 고객이 집에 없으면, 배송은 실패합니다.
교육에도 라스트 마일이 있습니다. 지식은 널려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최고의 강의가 무료로 올라와 있습니다. AI는 무엇이든 설명해줍니다. 1타 강사들의 인강은 완벽하게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인프라는 완벽합니다.
문제는 학생이 책을 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재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첫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약이 아무리 좋아도, 환자가 먹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TED 강연에서 본 사례입니다. 당뇨병 환자에게 약을 주고, 심지어 약값도 지원했습니다. 물류는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약을 먹지 않아서 사망합니다. 라스트 마일에는 돈과 물자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지가 먼저입니다. 의지가 지각을 만들고, 지각이 집중을 만들고, 집중이 인지를 만들고, 인지가 이해를 만들고, 이해가 기억을 만듭니다. 만약 의지가 없다면, 뒤의 모든 과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AI 시대에 사람은 무엇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합니다(Will)." 지식은 AI가 다 줍니다. 중요한 건 질문을 던질 의지입니다. 배우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에듀테크의 진짜 과제는 여기 있습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생성하는 것입니다. 책을 펴게 만드는 것. 첫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것. 이것이 라스트 마일입니다.
학습은 본질적으로 스트레스입니다.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뇌는 편안함을 좋아하지, 낯선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쉽게 만들면 될까요? 난이도를 낮추면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쉬우면 지루해서 포기합니다. 어려우면 좌절해서 포기합니다. 난이도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포기 압박(Pressure to Quit)'이라고 부릅니다.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에 비례해서 생기는 스트레스입니다. 배우려 들기 때문에 생기는 고통입니다. 이것은 제거할 수 없습니다. 도전 자체가 원래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난이도를 낮추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것을 줍니다. 격려와 보상입니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핵심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즉시 반응이 옵니다. 화려한 이펙트, 통쾌한 사운드, "Great!", "Perfect!", "Excellent!" 화면 가득 칭찬이 터집니다. "네가 방금 해냈어!"라는 확인 사살입니다.
작은 성공(Small Win)을 반복합니다. 큰 목표를 잘게 쪼갭니다. 100단계를 올라가야 하는 산이라도,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1단계 달성!", "2단계 달성!" 알려줍니다. 진행률이 눈에 보입니다. "내가 어디쯤 왔구나"라는 감각이 생깁니다.
이것이 몰입(Flow)을 만듭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어서 최선을 다하는 상태. 동시에 성공의 쾌감이 반복되어 포기하고 싶지 않은 상태. 몰입은 중독이 아닙니다. 실수 없는 연속된 성공의 쾌감입니다.
교육은 이 쾌감을 거세하려 합니다. "게임처럼 재미있으면 안 돼. 공부는 원래 힘든 거야." 하지만 게임은 이 쾌감을 통해 포기 압박을 이겨냅니다. 어려운 게 문제가 아닙니다. 도전할 의욕을 지켜주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셀레스트(Celeste)>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산을 오르는 게임입니다. 주인공은 수천 번 죽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가시에 찔리고, 괴물에게 잡힙니다. 하지만 죽는 즉시 체크포인트에서 부활합니다. 로딩 시간도 없습니다. 1초 안에 다시 시작합니다.
화면에 메시지가 뜹니다. "You can do this." 네가 할 수 있어. 500번 죽었어도, 1,000번 죽었어도, 같은 메시지가 뜹니다. 게임은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플레이어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수천 번 죽으면서도 끝까지 산을 오릅니다.
왜일까요?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학습이기 때문입니다. "아, 여기서는 이렇게 점프하면 안 되는구나." 즉각적인 피드백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도할 기회가 즉시 주어집니다. 포기 압박이 격려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혼자 문제집을 푸는 것은 노동입니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문제를 푸는 것은 공략입니다.
MMORPG에는 레이드(Raid)라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깰 수 없는 보스. 여러 명이 팀을 이뤄야 합니다. 탱커는 보스의 어그로를 끌고, 힐러는 탱커를 살리고, 딜러는 보스를 공격합니다. 한 명이라도 역할을 못 하면 전멸합니다.
이것을 긍정적 상호 의존성(Positive Interdependence)이라고 합니다. "내가 이 문제를 못 풀면 우리 팀이 보스방 문을 못 열어." 책임감이 생깁니다. 혼자서는 대충 넘어갔을 문제도, 팀을 위해서는 제대로 풉니다.
와우(World of Warcraft) 유저들을 관찰해봅시다. 레이드를 앞두고 무엇을 할까요? 자발적으로 공략집을 찾아 읽습니다. 보스의 패턴을 암기합니다. 자신의 역할에 필요한 스킬 트리를 연구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요.
왜일까요?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 팀이 졌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임감이 학습 동기가 됩니다.
관찰 학습(Observational Learning)도 일어납니다. 텍스트 매뉴얼을 읽는 것보다, 잘하는 친구의 아바타가 하는 행동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뇌는 미러링을 합니다. "저 친구는 저렇게 하네. 나도 해봐야지."
메제웍스는 이것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친구 A는 벌써 챕터 3을 끝냈대!" 경쟁심이 자극됩니다. 동시에 모방 심리도 자극됩니다. "걔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어."
소셜 서포트(Social Support)도 중요합니다. 힘들 때 격려해주는 팀원. "힘들지? 조금만 더!" 힌트를 공유하는 친구. "이 문제는 이렇게 풀면 돼."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이것이 포기를 막습니다.
혼자 하면 독학이지만, 같이 하면 공략입니다. 외롭고 지루한 노동이, 협력과 경쟁의 시너지가 되는 순간입니다.
만약 메제웍스가 교육 IP를 만든다면 어떻게 할까요? 상상해봅시다. 수학 던전이 있습니다. 보스방 문을 열려면 세 명이 파티를 이뤄야 합니다.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A는 계산을 맡습니다. B는 검산을 맡습니다. C는 풀이 과정을 설명합니다.
한 명이라도 실수하면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전체가 실패합니다. 그래서 A는 계산을 정확히 하려고 집중하고, B는 꼼꼼히 검산하고, C는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법을 배웁니다. 책임감이 각자의 역할을 완수하게 만듭니다.
성공하면 모두에게 보상이 갑니다. "우리가 해냈어!" 혼자 문제집을 풀 때는 느낄 수 없던 성취감입니다. 다음 던전도 함께 가겠다고 약속합니다. 내일도, 모레도. 학습이 약속이 되고, 우정이 됩니다.
이것은 가정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형태가 가능하다면, 혼자 하는 노동이 함께 하는 모험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이것을 외웁니다. 시험에 나오니까요. 하지만 시험이 끝나면 잊습니다. 왜일까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1592년이라는 숫자는 그저 외워야 할 정보일 뿐입니다.
이제 다르게 접근해봅시다. "너는 1592년의 이순신이다. 조정에서는 출정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백성들이 왜군에게 죽어가고 있다. 어떻게 할래?"
선택지가 나옵니다. "조정 명령에 따른다", "독단으로 출정한다", "백성들을 피신시킨다". 아이가 선택합니다. 결과가 나옵니다. 이순신의 고뇌가 느껴집니다. 역사적 사실을 외우는 게 아니라, 그 시대의 딜레마를 직접 선택하게 됩니다.
<프로스트 펑크(Frost Punk)>에서는 추위에 쫓긴 피난민들이 도시에 옵니다. 계속 옵니다. 그들을 얼어죽게 방치해야할 명백한 이유, 즉 도시가 위험해질 정도로 계속 몰려듭니다.
이것이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의 접근입니다. 정보를 주입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체험시켜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기능(Function)이 아닌 설득(Persuasion)입니다.
<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전쟁 속 민간인이 되어 생존합니다.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이웃집에 들어가 훔칠까요? 그 집에도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선택하고, 결과를 겪고, 죄책감을 느낍니다. 전쟁이 "1950년 6월 25일"이라는 날짜가 아니라, 굶주림과 공포와 도덕적 갈등이라는 체험이 됩니다. 폴란드 교육부는 이 게임을 교재로 추천했습니다.
<페이퍼 플리즈(Papers, Please)>는 입국 심사관 체험 게임입니다. 독재 국가의 국경에서 일합니다. 서류가 완벽하지만, 이 사람을 들여보내면 테러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체제의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19화에서 봤던 IF 시나리오가 여기 적용됩니다. "만약 이순신이 출정하지 않았다면?" 역사를 암기 과목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만듭니다.
정교화(Elaboration)의 원리입니다. 단순 암기는 휘발됩니다. "진돗개"라는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진돗개는 주인에게 충성스럽다"고 감정을 개입시키면 더 오래 기억됩니다. "내가 구한 백성", "내가 지킨 역사"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암기하지 마라, 체험하라. 텍스트가 아닌 상황 속에 던져질 때, 뇌는 기억합니다.
편의상 저는 게임 유저를 두 종류로 나뉩니다. 양(陽)의 유저와 음(陰)의 유저입니다.
(옛날에는 이 구분에 외향성/내성적이라거나 성별을 붙여 구분했습니다.)
양의 유저는 성취 지향적입니다. "더 강해지고 싶다. 남보다 앞서고 싶다." 이들에게는 정량적 보상이 효과적입니다. XP, 레벨업, 랭킹, 화려한 장비. 숫자로 표현되는 성장. "영어 단어 100개 외우면 레벨 10 달성!" 명확하고, 측정 가능하고, 비교 가능한 보상.
음의 유저는 관계 지향적입니다. "의미를 찾고 싶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경쟁은 싫어합니다. 이들에게는 정성적 보상이 효과적입니다. 변화, 반응, 의미.
"문제를 풀었더니 황무지에 꽃이 피었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 자체가 보상입니다. "캐릭터가 나에게 편지를 썼어. '네 덕분에 구원받았어. 고마워.'"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보상입니다.
<동물의 숲> 같은 게임이 음의 유저를 만족시킵니다. 마을을 꾸미고, 꽃을 심고, 주민들과 대화합니다. 레벨도 없고, 전투도 없고, 랭킹도 없습니다. 하지만 수백만 명이 매일 접속합니다. 왜일까요? 내 마을이 점점 예쁘게 변하고, 주민들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기존 교육 시스템은 양의 보상만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점수, 등수, 백분위. 숫자로만 평가받습니다. 음의 유저들은 동기를 잃습니다. "나는 1등을 하고 싶은 게 아닌데..."
메제웍스가 교육 IP를 만든다면, 두 가지 보상을 동시에 제공해야 합니다.
양의 유저에게: "챕터 10 완료! 레벨 15 달성! 전국 상위 5%!"
음의 유저에게: "네가 공부한 만큼 마을에 나무가 자랐어. 동물들이 돌아왔어. 캐릭터가 너에게 고맙다고 해."
하이브리드 보상 설계. 모든 성향의 학습자를 만족시키는 전략입니다.
여섯 살 아이가 공룡 이름 100개를 외웁니다. 시험에 나오지 않습니다. 부모가 시킨 것도 아닙니다. 아이는 그냥 좋아서 외웁니다. 공룡 책을 읽고, 공룡 다큐를 보고, 공룡 피규어를 모읍니다.
왜일까요? 유치원에 공룡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쉬는 시간마다 공룡 이야기를 합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말이야..." 친구가 대답합니다. "나는 스테고사우루스가 더 좋아." 대화가 이어집니다. 서로의 지식을 교환합니다.
이것이 커뮤니티입니다. 같은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03화에서 우리는 키워드 신용을 배웠습니다. 특정 키워드를 아는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공룡]], [[기차]], [[별자리]]. 이 키워드를 공유하는 것이 소속의 기준이 됩니다.
지식이 없으면 커뮤니티는 불가능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대화에 끼지 못합니다. 외톨이가 됩니다. 반대로, 지식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무리에 속하게 됩니다. 소속감과 연대의 즐거움이 생깁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덕후들을 봅시다. 애니메이션 덕후, 영화 덕후, 음악 덕후. 이들은 왜 그렇게 많은 지식을 쌓을까요? 시험에 나오지 않는데도요.
커뮤니티 때문입니다. 온라인 포럼에서, 오프라인 모임에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많을수록 대화가 깊어지고, 존중받고, 친구가 생깁니다.
지식은 커뮤니티를 결정합니다. 무엇을 아느냐가 어디에 속하느냐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소속은 인간의 기본 욕구입니다.
세상은 흥미로운 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모든 주제의 영상이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는 모든 정보가 있습니다. 커뮤니티는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수험은 이것과 무관합니다. 공룡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수능 점수는 오르지 않습니다. 별자리를 외워도 내신에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배웁니다. 자발적으로, 기쁘게, 밤을 새워가며 배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생의 도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사람들과 연결되고, 의미를 찾는 과정. 이것이 학습의 본질입니다.
수험노동과 지식의 기쁨은 별개입니다. 둘 다 중요하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회 상류의 사다리가 수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해도, 그것이 지식의 전부는 아닙니다.
메제웍스에서 IP는 "지적 재산권"이 아닙니다. 세계관, 유니버스입니다. 하나의 완결된 세계입니다.
세계관이란 지식 체계로 짜여진 세계입니다. 그곳에는 규칙이 있고, 관계가 있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세계가 현실 세계 대비 대체 세계라는 점입니다. 현실을 벗어나 머물고 싶은 곳. 살고 싶은 세계여야 합니다.
교육 IP, 키즈 IP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아이가 더 머무르고 싶어 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 억지로 붙잡아두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것.
여기서 함정이 있습니다. "아! 이걸 이용해서 더 공부하게 할 수 있겠구나." 이런 감금적 사고방식으로는 세계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세계란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우애와 격려와 조직과 자기조직과 견습과 도달 달성 승리라는 성취와 즐거움으로 이뤄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그 세계 자체가 좋아서 머무는 것이지, "공부하라고 만들어진 감옥"에 머물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예민합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알아챕니다. "이거 사실 공부시키려는 거네." 그 순간 흥미가 식습니다. 배신감마저 느낍니다.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게임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게임 안에서 레벨을 올리고, 친구를 만나고, 모험을 하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만약 게임이 "숙제를 하게 만들기 위한 미끼"라면, 누가 하겠습니까?
교육 IP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세계 자체가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캐릭터가 사랑스럽고, 이야기가 흥미롭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워야 합니다. 학습은 그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부산물이어야 합니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수험의 범위를 넘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시험에 안 나오니까 건너뛰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세계가 아니라 문제집이 됩니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공룡은 시험에 안 나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공룡을 충분히 탐험하게 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생물학을, 지질학을, 역사를, 심지어 통계까지 배웁니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가다 보면, 모든 지식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험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범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효율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수험 최선은 결국 아동노동입니다. 정해진 범위만, 정해진 방식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이것은 세계가 아니라 공장입니다.
교육 IP는 수험 IP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수능 점수 올리기"가 목표라면, 강제 견인을 하는 교육자에 대한 IP 정도가 구현 가능한 거의 유일한 영역 같습니다. 고행에도 구루가 필요하니까요.
2020년, 미국 FDA는 최초로 게임을 의료기기로 승인했습니다. EndeavorRx라는 게임입니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치료제입니다.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게임 때문에 아이가 산만해진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는데, 이제 게임이 산만함을 치료한다니요.
비밀은 간단합니다. ADHD 아동도 게임에는 무섭게 집중합니다. 왜일까요? 게임은 불필요한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명확한 목표만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저 몬스터를 잡아라."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옵니다. 성공하면 보상이 옵니다.
학교 수업은 정반대입니다. 선생님 목소리, 친구들 소음, 창밖 풍경, 칠판 글씨. 자극이 너무 많습니다.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릅니다. 피드백도 늦습니다. 숙제를 내고 며칠 후 점수를 받습니다. ADHD 아동에게는 지옥입니다.
EndeavorRx는 게임의 집중력 유지 메커니즘을 치료에 활용합니다. 아이에게 "집중해!"라고 소리치지 않습니다. 대신 집중하지 않으면 게임을 못 하게 설계합니다. 자발적 몰입을 훈련시킵니다.
난독증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자가 뒤집혀 보이는 아이. "ㄱ"이 "ㄴ"으로 보입니다. 교과서를 읽으라고 하면 지옥입니다. 하지만 게임으로 접근하면 다릅니다. 글자를 맞추는 퍼즐 게임. 정답을 맞히면 캐릭터가 앞으로 갑니다. 틀려도 괜찮습니다. 다시 시도하면 됩니다.
핵심은 인터페이스를 바꾸는 것입니다. 학습의 본질은 같지만, 전달 방식이 다릅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배웁니다. "너는 왜 못 하니?"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네가 할 수 있을까?"를 묻습니다.
디지털 치료제(DTx, Digital Therapeutics)라는 분야입니다. 게임이 약이 되는 시대입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것을, 가상에서는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수험과는 무관합니다. EndeavorRx가 수능 점수를 올려주지 않습니다. 난독증 게임이 국어 시험 점수를 높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도움입니다. 아이가 학습 자체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것. 배움이 고통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
수험노동으로 얼마나 괴롭혔는지 수험 비슷한 것만 나와도 반사적, 기계적으로 움직입니다. 심지어 게임 개발자들조차도 '학습'에 해당하는 튜터리얼 설계를 만나면 그 재미있는 게임을 설계한 기획자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지독히 재미없고 기계적인 구조를 반복시키려 듭니다. 거의 아동학대의 대물림처럼 보일 정도의 참사입니다. 이렇게 수험교육이 무섭습니다.
수험과 지식은 여전히 별개입니다. 하지만 지식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게임은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메제웍스는 교육 솔루션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답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여러 분면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학부모의 세계관을 존중합니다. 수험 시장의 숙련도를 인정합니다. 그것을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봅니다.
지식의 기쁨은 존재합니다. 여섯 살 아이가 밤새 공룡 이름을 외우는 그 기쁨. 시험과 무관하지만, 분명히 학습입니다.
커뮤니티의 즐거움도 존재합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모여 대화하는 그 즐거움. 소속감과 연대감. 이것도 분명히 교육입니다.
살고 싶은 세계의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아이가 자발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곳. 우애와 격려와 성취로 가득한 곳. 감금이 아니라 자유. 이것이 교육 IP의 조건입니다.
수험노동과 지식의 기쁨은 별개입니다. 둘 다 중요하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둘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만약 당신의 목표가 수능 고득점이라면, 검증된 학원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최선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묻는다면, "내 아이가 평생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면?"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경험을 주십시오. 배움이 외로운 노동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험이 되게 하십시오.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하십시오.
이것은 수험과 별개입니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긴장 속에서 계속 고민할 것입니다. 답을 찾았다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질문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교육은 가장 무거운 주제입니다. 아이의 미래가 걸려 있으니까요. 학부모의 불안은 당연하고, 수험 시장의 존재도 필연입니다. 우리는 그 무게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믿습니다. 여섯 살 아이가 밤새 공룡 이름을 외우며 빛나던 눈빛이 수능 점수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고. 친구들과 기차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그 시간이 학원 성적표보다 덜 가치 있지 않다고.
수험과 지식은 별개입니다. 둘 다 필요하지만,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험을 대체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식의 기쁨을 지키려 합니다. 배움이 고통이 아니라 모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 외로운 노동이 아니라 우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평화로운 세계가 무엇입니까? 궁금해서 다가가도 괜찮은 곳. 시험 없는 공부의 세계.
우리는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이 영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펼치는 날을 꿈꿉니다. 시키지 않아도, 억지로가 아니라, 그저 궁금해서.
세상은 과거와 다르게 지식을 위해 누군가 밑에서 몇십년씩 마당을 쓸지 않아도 됩니다.
의지만 있다면 지식의 끝에 닿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조언 중에 책장에 꼽혀만 있는 책을 보며 '아 저 책을 읽긴 해야할텐데...'라는 생각이 들면 즉시 그 책을 꺼내어 두 줄만 읽고 다시 꼽아넣으라는 말입니다.
MEJE가 교육IP로 확장IP의 액티비티를 만들면 그런걸 만들 것 같습니다.
어? 하면 즉시 2분을 공부할 수 있는 액티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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