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WhtDrgon210625#게임기획자하얀용
자 이 게임에서 여러분은 신입 암살자입니다. 여러분에겐 칼, 독약, 자동차, 저격총 중 하나가 주어질 텐데 지금 사람 죽일 생각을 하고 계실 텐데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죠. 제가 암살자들의 세계라는 낮은 차원을 만들었고, 이 글을 읽기 위해 그 상황을 받아들인 것이죠.
게임은 '가상의 상황'을 단번에 규정합니다. 가상화죠. 그리고 그 안에는 규칙이라는 공정함이 있을 것이고, 나는 선택이라는 인터랙티브를 가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메타버스라는 가상화 콘텐츠, 그리고 이전에 게임이 해왔던 이 가상화의 식별이 창작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나는 가상화를 순식간에 잘 분별한다."라는 마음가짐이 기획자에게 필요한 것이죠.
게임은 정적 정의를 통해 게이머의 자발적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규칙과 밸런스가 행동 범위를 좁히고, 효율을 통해 스스로의 결정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주사위를 통해 변수와 실감을 만들어내죠.
이 부분에서 규칙과 정적 정의는 '참가자'가 더 고차원이고, 게임 세계는 가상화된 더 단순한 차원입니다. 고차원에서 저차원으로 뭔가를 할 때는 에너지가 훨씬 덜 듭니다. 고차원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저 차원의 캐릭터의 행동을 바꾸기 때문에 몇 글자로도 사람을 죽이게 할 수 있습니다.
마법사가 결계를 치고 그 안에서 마음껏 마법을 쓰는 만화의 설정이 현실에 도래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시각을 추측하는 능력, 전달된 정보에서 추측과 팩트를 구분하는 능력에 이어 차원 결계를 만들고 식별하고 추상화된 그 너머의 존재를 인지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게임에서 UI나 유료화 부분에서 어떤 고민이 생기면 즉시 이 가상화 영역이 어디에 있으며 그곳의 주민이 (지나가는, 게임이란 걸 해 본, 계정을 만든, 앱을 가동한) 사람인지 캐릭터인지 구분하면 대체로 문제를 명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걸 게임 UI에 넣어야 하는지 설정에 넣어야 하는지도요.
인형극의 인형이 할 말과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 할 말이 정해져 있습니다. 둘은 서로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지만 자꾸 들락날락하면 몰입이 깨집니다.
메타버스 설계 혹은 SNS 설계, 플랫폼 설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관문을 지나면 이제 그 세계에야 합니다. 이 차원이란 것이 예전에는 리소스 문제로 개념상에서 존재했습니다만, 실감형 콘텐츠는 이 공간을 비주얼 하게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때는 더더욱 차원 창조와 식별 능력이 제작자에게 중요해질 것입니다. 어설픈 세계와 리얼한 세계를 가르게 되겠죠.
쇼핑을 하려고 진입한 순간 쇼핑객으로 대우해야 하고 쇼핑객은 쇼핑을 하겠죠. 좋아요가 있는 곳에서는 좋아요에 맞게 글 투가 바뀝니다. 힘들어요(좋아요 X) 말고, 힘들지만 희망이 있겠죠! (좋아요). 이러면 좋은 세계가 되죠. 좋아요만을 말할 수 있는 세계. (물론 그 세계도 이제 좋아요 말고 다른 것들을 만들었지만요.)
인터넷 밈 중에
싸이월드 : 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많다.
페이스북 :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블로그 : 내가 이렇게 전문적이다.
인스타그램 :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있다.
카카오스토리 : 내 아이가 이렇게 잘 크고 있다.
트위터 : 내가 이렇게 이상하다.
추천 시스템이나 연속 재생도 물론 서비스 기획 측면에서 볼 수 있지만 차원 진입과 사용자의 선택이라는 들락날락을 막는 장치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소셜. 정확히는 온라인 소셜은 소셜의 가상화입니다. 글, 사진 등의 양식에 맞추어 가상화된 곳이고, 인공지능 혹은 버추얼 캐릭터들이 사람처럼 활동하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즉 온라인 자체가 별도의 차원이라는 것. 그래서 재생시간에 콘텐츠가 맞춰지듯 사람의 행동이 맞춰집니다.
연애편지는 밖에서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항마력이 필요한, 가상인지 감수성이 필요한 그들만의 다른 차원입니다. 싸이월드의 흑역사도 마찬가지 지지요. 이걸 웃고 넘길 수도 있지만, 그 효능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흑역사가 될 행동들, 심지어 살인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 차원 설계능력 말이죠.
살인은 세계 진입 문턱 같은 '가상 선언'의 역할을 합니다. 저 차원에서도 살인은 쉽게 할 수 있어도 살인보다는 낮은 어떤 범죄들은 현실에 연결되어 차원 경계를 흔들어 놓습니다.
즉, 저 차원은 현실에 가까이 올 수록 자기 형태를 유지하기 힘들어집니다. 메타버스의 세계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세계. 현실을 가상화하거나, 왜곡해야 하는 상태에서는 차원 설계와 유지 능력이 더욱 고도화되어야 합니다. 기술자가 필요한 거죠.
세계관은 그 차원 설계의 암묵지를 형식지로 바꿔놓는 과정입니다. 글자, 그림, 음성, 애니메이션, 영상, 3D, VR, MR 등 저장매체, 디바이스, 재생환경이 다른 곳은 모두 다른 차원이고 다른 질서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콘텐츠들이 다른 매체/차원으로 넘어갈 때 반드시 만들어져야 하는 작업물입니다. 마치 사전처럼 방대해서 스토리에 비해 무용하고 과잉 작업처럼 느껴지지만 프로젝트가 망하는 것에 비하면 소소하면서도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제 게임이나 만화, 장르 콘텐츠가 아니라 모든 곳에 필요한 작업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곳이 가상화된 곳이기 때문이죠.
뉴스, 세계. 전쟁이 생중계되고, 그 중계 자체는 '데이터화'되어 그대로 아카이브 됩니다. 비대면 강연은 그 자체로 기록물이 되죠. 기술의 발달로 세상 자체가 쉬지 않고 가상화되어 기록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데이터들이 있지요. 모든 손짓이 분석될 수 있는 세계. 그 세계에서 가상과 가상에 투영된 현실을 뚫어보는 능력이 세대 전반에게 필요합니다. 이게 없으면 고차원 세계에서 저차원적 행동을 합니다.
아동의 코딩 교육이나 개념들도 마찬가지로 '차원을 식별하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무형의 코드에 겹겹으로 쌓인 가상화된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프로그래머 소양이란 이런 능력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에 익숙해지는 것은 인생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게임 기획 능력이 게임에 개념 없이 빠지는 것을 막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처럼, 가상화의 차원 설계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 제작자나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의 필수 교양이 되는 세상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추상화를 추상화로, 가상을 가상으로 분석하는 세상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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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은WhtDr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