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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Jun 27. 2021

'병맛'이라는 무감각한 단어에 대한 상념 기록.

김동은WhtDrgon 210627 #게임기획자하얀용

이 글은 인터넷에서 보게 된 아래 유머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 그림을 (종종 몰지각한 사람들로부터 '병맛'이라고 혹평당하는) '현대가 요구하는 감성을 쉽고도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는 샘플이라고 생각해서, 나중을 위해 잠깐의 생각을 다소 무질서하게나마 정리해놓으려 한다. (나는 에버노트를 쓰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여기가 내 에버노트이다.) 


이 밈은 이미 아트의 대접을 받고 있다.  일본이긴 하지만. 기대하다시피 이 아트는 화랑에 걸려서 주인을 기다리거나 박물관, 미술관으로 가진 않았지만 순식간에 세상에 상품화됐다.  독자들도 아마 인터넷에서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어색한 동물의 순간을 조각품으로 바꾸는 일본 예술가'


https://piximus.net/animals/japanese-artist-turns-funny-animals-into-sculptures


내가 예술가나 예술을 감정하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에서 예술을 본다.

 '익숙하고도 새로운 것'은  정숙하면서도 세련된, 고상하면서도 발칙한,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익숙한 기법이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가진 이 모든 것들은 상업이고 예술이든 뭐든 모든 창작자들, 지금껏 게임 기획자들이 고민했던 영역이자 천년쯤은 훌쩍 넘는 종교의 교당과 석탑이 추구했던 것이고, 기가 막힌 미의 밸런스이다.


 몬드리안 하면 떠오르는 그림


그리고 몬드리안의 멋진 그림들.



몬드리안의 그림과 다를 바 없다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보려고 했던 어떤 부분은 그 원리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왜 몬드리안의 저 그림이 유명한가? 왜 기법상 더 잘 그린 아래 그림보다 훨씬 더 유명한가?


명화는 흔하다. 이게 문제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바닷가에 모래대신 금이 쌓여있는듯한 세계. 

 

플란더스의 개 주인공 네로가 목숨과 바꿔서 봐야 했던 그림.


물론 이 그림이 걸려있는 성당에서는 돈을 좀 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가상화의 시대에는 이 그림을 얼마든 공짜로 보게 만든다. 실물 세계에서 가능했던 과금 BM과 그걸 지나야 볼 수 있는 관람 경험은 이제 의미가 없다. 지금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사실상 콘텐츠가 무료인 시대를 살고 있다. 게임도 '동전'을 넣어야만 게임을 할 수 있는 BM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게임 자체를 알리는게 더 큰 비용이 소모되는 시대라서 그렇게 안하는데, 미술도 마찬가지라 미술품의 가격보다 그 미술품이 거기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천배쯤 비용이 더 들 것이다. '유명작가'라는 이름은 바로 이 금액적 가치일 것.  

 그러니 화랑이라는 플랫폼이 등장한 것인데, 가상의 화랑은 더 많은 방문자를 필요로 한다. 직접 걸어서 화랑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의 1/10000쯤의 구매력은 1만명의 방문객을 필요로 하게 만든다. 대중화 될 수 밖에 없는 구조. 

 가상의 시대에 관람이 무료인 세상에서는 소유라는 선언 자체가 가치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어떤 것의 '구매'를 '구매'하게 될까? 


지금이라도 구글에 파인 아트를 검색해서 지쳐 그만둘 때까지 위대한 작품들을 계속 스크롤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지친 스크롤을 멈추게 할 단 하나의 무언가. 그것은 뚱뚱한 모나리자일수도 있겠다. 

그럼 이제 뭐가 common이고 뭐가 rare인가?  무엇이 더 귀중한가? 


미술관에 직접 가야 했던 시대. '올 칼라'의 비싼 하드커버 책을 사야만 볼 수 있었던 시대. 이름마저 아트한 '아-트 지 인쇄'라는 좋은 종이로 된 책으로 봐야 했던 시대를 지나 최고의 해상도로 명화를 스크롤 한 번에 수집장씩 내려가며 볼 수 있다. 오히려 보기 원하길 간구해야 하는 시대에 도달했다.


원리는 비슷할 것. 정규 고급에 질릴 정도로 노출되면 날 것, 라이브, 색다른 것을 찾기 마련이다.

NFT 시장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병맛이라고 표현한다. 대체 왜 이게 인기인가?


https://opensea.io/?locale=ko


가상의 이미지들이 가상의 화폐로 '컬렉션'이 거래되는데, 화폐마다 차이가 있지만 위 사진은 360 이더리움으로 거래되었다.


210627 현재 1 이더리움은 214만 원이다.



오픈 씨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라리블의 경우. 이런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


https://rarible.com/?sort=likes



"저게 왜 저 가격에 팔리나? 정말 할 짓 없네. 나도 하겠다. "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변기나 바나나를 궂이 언급하지 않아도 순수미술,예술가들에게 예술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던 말이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040286


순문학 작가들이 웹툰과 웹소설에게.

순수 미술가들이 NFT 시장에게.


시장의 질서가 넘어간다기보다 평생을 바쳐 좁디좁은 성공의 문을 돌파한 이쪽 사람보다 더 큰돈과 인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대는 듯한 시대에 들 수 밖에 없는 의문들. 이것을 '병맛'이나 '우민화' 혹은 '대중문화가 다 그렇지 뭐'라고 퉁 쳐도 되는 것일까. 


혹시 그 순수의 지성과 실력과 시각이 일반인과 차원을 달리한다고 믿는다면

왜 엄청난 부자인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성능의 아이폰을 써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갑부처럼

그 궁금증은 끝내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MZ라고 인류 공통의 '시간'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서로 다른 셀을 가질 테니까.

세계관 바깥의 사람들은 그 안에 대해 무력하다.  이건 그들의 전문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50903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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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상념을 정리하는 이 포스팅에 사용된 자료들을 한 20분 정도의 시간네 인터넷 서핑을 통해 모두 얻었다. 과거에는 엄청나게 부럽고 장대한 서재가 있어야 했던 것들을. 이걸 시대의 변화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르나.  이런 시대에서 '1줄 요약'을 요구하는 것은 그리 무리한/무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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