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WhtDrgon140305#게임기획자하얀용
이 글은 2014년 3월 5일 페이스북에 포스팅된 글입니다.
내가 게임이 문화가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들.
물론 충분한 수가 모였다면 대중문화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어떤 것은 여전히 배타적인 채로 그냥 수가 많은 서브컬처일 뿐 대중문화가 아닐 수도 있다. 게임도 그럴 수 있다. 나머지를 다 합쳐도 반도 못 쫓아올 어마어마한 수출액과 기업들의 수익, 많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이 시점에서도 결핍을 느껴왔다.
카메라든, 자동차든 그 분류가 '기능적'인 것에 있을 때는, 개인적으로는 '문화'단계를 느끼지 못하다가 스타일과 테마 등의 다양한 키워드들을 가지고, 또 그 키워드들이 선택과 분류의 중심이 되기 시작할 때 문화요소가 된다고 생각한다. 가령 6기 통이니 12기 통이니 매뉴얼, 오토. 전륜, 후륜 등으로 구분하다가 레저용 업무용 생활용 주부용 등의 생활 키워드가 등장하고, 매력적인 남녀, 성공가도의 사업가, 오피셜, 크루징, 금색, 리치 등의 스타일이 키워드로 등장할 때.
과거 게임의 팬들은 시뮬레이션 혹은 FPS 등의 게임의 기능적 구성을 '장르'의 키워드로 삼았고, 더 나아가 모티브나 테마. 즉 판타지, SF 등으로 발전해갔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매개로 한 대중화에서 게임들은 게임의 기능을 넘어 쿵후, 좀비, 경영, 동물, 원버튼, 1분, 협동 등의 정말 다양한 유형의 스타일을 게임을 구분하는 요소로 삼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나는 FPS가 좋아."라는 게임의 기능과 형태를 구분자로 삼는 '게이머'들의 관점이 키워드가 되는 세상에서, 마치 나는 락스타의 음반과 콘서트, 포스터, 예능, 게임, 광고하는 제품을 즐기고 있어요라는 식으로 "나는 좀비가 좋아"내지는 "무협이 좋아.", "귀여운 동물 나오는 거" 등의 키워드의 다변화, 그래서 좀비 만화, 소설, 영화, 게임 등을 즐긴다는 면에서.
이런 (게임을 선택하여 고르기 위한) 키워드들의 분화에서 아. 게임이 문화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의 '문화'의 일원. 게임이 라디오, TV, 책, 만화, 애니메이션처럼 문화코드를 즐기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런 상황에서는 종종 기존 게이머는 자신이 중시하던 '게임의 절묘한 기능성'이 별 관심을 못 받게 돼서 일명 '꼰대'가 된다. '요즘 게임은 게임도 아냐.'등등.)
더 나아가 마치 나올 때마다 멜론 순위 1위권대를 차지해버리는 무한도전식으로 대중문화적으로 소모적인 게임들이 더 많이 등장할 때. 자원이 더더욱 낭비의 풍요 아래에서 대중의 키워드를 공유하고 거기에 제작자의 메시지 자체에 집중하는 게임이 난립하기 시작할 때.
"이 클리세를 사용했다는 건 이 게임이 생태/환경/진보/자유주의/신자유주의 등을 지지/조롱하고 있다"는 식으로, 어떤 클리세를 사용하느냐가 게임의 사상이나 정체성을 규정하기 시작할 때가 되어야 게임이 단순히 (아랍인, 마을이 테러리스트로 등장하는 등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미디어의 일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Zombies, Post-Apocalypse, Anarchism, Survivor, Gun, Co-Op의 코드를 가진 게임에서도 다양한 표현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 게임이 카톡 게임이든, 초대작 게임이든.)
더 나아가 예술가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의지가 오직 게임의 기술들로 표현되어 (마치 글이나 그림, 연극, 영화처럼) 게임이 아니면 대치 불가능한 방식으로 '비언어적인' 메시지와 예술성을 표현하고 공감을 이끌어 낼 때 게임은 예술의 일원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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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은WhtDrgon
#게임기획자하얀용
표지 사진: Photo by Liks Digital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