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WhtDrgon150419#게임기획자하얀용
이 글은 2015년 4월 19일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글입니다.
2017년 이후 프로젝트에 바빠 시간강사/겸임교수 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교수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이타심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 이 일을 하고 계신 현업 분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때는 강사나 교수가 현업 실무능력 부족에 대한 표식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지만, 이미 20년 차가 수두룩한 지금입니다. 학계든 업계든, 기획이든 사업이든 코딩이든 아트든 서로 다른 전문성을 업신여기는 것은 미숙한 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본문의 오해들도 어차피 경험이 만든 선입견일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누구 탓할 일도 아닙니다. 그저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할 일들을 하는 것이고,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자신과 모두를 위해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인류의 책임을 다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저는 게임기획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걸어볼 뿐입니다.
p.s 2021년의 지금은 이제 본문같은 일은 없는데, 이번에는 부하직원과 동료들이 어려운 말 좀 쓰지 말라고 난리입니다. 큰일입니다.
개발자들과 이야기하거나 일을 하다가 내가 '겸임교수'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론으로는 현장을 이해할 수 없고, 책상에서 일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간트차트니 하는 방법론은 의미가 없고, 현장에서 직접 기획자와 프로그래머가 붙어서 이야기하면서 진행하는 것이며, 게임 기획이란 건 말로 할 수 없는 감성이고 재능이고, 용어 몇 개 안다고 기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려운 말보다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하는 것이 정말 실력이라는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내가 1988년부터 게임 관련 동호회의 개설자였고 동호회장이었고, 1999년 이후 현업 17년 차이며 이런저런 대규모 프로젝트의 리더였다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술 몇 잔 들어간 경우엔 심한 경우 그렇게 해서 대박 쳐봤느냐? 못했잖냐?라는 이야기까지.
그렇다고 그렇게 안 해서 대박 쳐봤느냐?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이론과 방법론의 수호자도 아니고, 나는 사실 예시로 든 저 말 전체에 동의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단지 나는 왜 (초등학생이 아닌) 현업 종사자에게 '초등학생 수준'으로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저런 말들을 왜 나에게 해대는지를 이해 못 할 뿐이다.
기획은 촉이고, 감성이라는 것은 게임뿐 아니라 '모든' 창조, 창작의 과정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의자를 만든 들, 커피를 만들든, 100층짜리 건물을 만들든. 그리고 게임을 만들든. 게임만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은 예술의 필연적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체계적 구분을 하려는 노력이 폄하되서는 안 된다. 특히 수십 명이 함께 일을 하는 프로젝트에선. 왠지 지적 도전이며 창조공간이었던 개발공간이 마치 대졸자 비웃던 건설 막일판이 되어가는 것 같다. 무슨 콤플렉스라도 있는 것인지.
이들은 어디서 (이론 들이대는 사람 덕분에) 심한 경험을 했길래 이런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예산을 틀어쥐고 리텐션이니 결제자 비율이니 파라미터로 개발을 운용하기 시작하는 사업 중심의 개발환경 속에서 과거 불가침으로 분리되었던 개발방식의 황혼을 감지하고 그리워하며 그에 대한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일까?
150419
김동은WhtDrgon.
#게임기획자하얀용
표지: Photo by Clay Bank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