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WhtDrgon160730#게임기획자하얀용
이 글은 2016년 오늘인 7월30일 페이스북에 포스팅된 글입니다. 저야 소신껏 이 길을 계속 왔지만 뜻을 같이하는 다른 게임개발자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이런 글들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세상이 오니 알아서 잔뜩 생겼죠! 역시 세상 일은 그저 때가 있는 법인가봅니다.
요즘 서브컬처의 이슈 덕분에 기획 이야기를 안 해서 섭섭하다고 하셔서 포스팅을 하나.
“When they go low, we go high” - 미셀 오바마.
게임 개발에 한정하지 않은 모든 콘텐츠의 게임 기획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대학 콘텐츠학과의 강단에 섰다. 게임은 훌륭한 도구이고, 대중성의 추세를 볼 때 게임 인터페이스는 곧 모두에게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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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코딩이나 기획을 너머 문사철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게임이란 도구는 더 훌륭한 콘텐츠를 품어야 한다. 100년은 우습게 손자의 손자에게 이야기해 줄 정도의 게임. 혹은 무언가.
카드 뉴스가 게임화되고, 교육이 게임화된다. 코딩이 교육이 되고, 툴은 게임화된다. 게임의 화면, 게임 UI는 UX가 되고 모든 곳으로 퍼져나간다.
가구공장의 마케터도 게임 기획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게임 기획자도 가구산업의 마케팅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게임이 점점 게임 같지 않은 이 시점에서.
시대가 바뀌고 있고, 모두가 바라보는 거대한 탑이 아니라, 그 탑에 기댄 생태계의 변화, 플랫폼의 주인들이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봐야 한다. 게임도 플랫폼이 바뀌고 있고, 우리는 음악 플랫폼과 게임 유통 플랫폼의 변화를 스티브 잡스를 통해 바라본 바 있다.
책의 세대교체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단순히 서점의 문제가 아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패션잡지의 편집장이 가진 위세를 생각해보자. 잡지는 책을 디바이스로 하는 플랫폼이다. 잡지의 힘과 멋은 멋들어진 광고지면에서 나온다. 잡지는 그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플랫폼이다. 종이책이 저무는 이 시점에 이제 그 위용과 권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모아둔 돈이 쏟아부어질 때이다. 나는 게임기획자가 그 밸류업 팀에 함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방송의 세대교체가 도래했다. TV는 공중파 수신 단말기일 뿐이다. 대부분 케이블이 연결됐고, 재전송 콘텐츠를 볼뿐이지 안테나로 TV를 보지 않기 때문에 TV 튜너는 필요성을 다했지만, 단지 관성 때문에 TV가 팔릴 뿐이다. 모니터만 연결해도 되고, 집에 TV가 없어지면 시청료를 납부하지 않을 수 있다.
드디어 최상의 영역이던 'TV광고'의 매출이 추월당했다. 인터넷 방송의 시대. MCN을 긁어모아 4시간을 연속 시청한다면 새로움 속의 진부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방송국에 있는 것은 송출탑만이 아니다. 고 퀄리티의 탁월한 콘텐츠 제작능력이 있기 때문에 적당한 변신만 한다면 MCN의 난립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것이다. 언덕을 넘지 못하는 차는 다섯을 엮어도 넘지 못한다.
방송은 그렇지만 홈쇼핑은 어떨까? 황금채널의 사이사이를 점령한 이 플랫폼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순순히 그 운명을 받아들일까? 그들에게 게임 기획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문의 세대교체. 이게 웹뉴스와 카드 뉴스 정도로 플랫폼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온갖 메타 언론들, 블로그 사업자들을 생각해보자. 콘텐츠의 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그 유통을 담는 '플랫폼'은 어떤 식으로 등장했는가? 버즈와 허핑턴일까? 위대한 편집장님이 그 권세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SNS와 가십 큐레이션, 메타 뉴스 사이트 들 사이에서 플랫폼을 세우고 왕위에 앉게 될까?
잡지 너머의 잡지. 방송 너머의 방송, 신문 너머의 신문. 게임 너머의 게임.
거기서 이제 대중의 언어가 된 게임을 설계하는 기획자는 모든 플랫폼의 왕들에게 어떤 비전을 열어줄 수 있을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바라보고, 게임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염원.
게임기획자의 소명은 더 넓은 곳을 향해 열려 있다는 생각이다.
마치 그날을 위해 놀이하는 맹수처럼.
160730
김동은WhtDr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