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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Sep 14. 2021

한 동네책방의 죽음을 주민들이 애도한 이유

지금 당신의 사랑방은 어디에 있습니까

한 책방이 문을 닫는 날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책방 주인은 그날 거의 종일 문가에서 손님을 맞았다. 곁에는 카네이션이 한 다발 담긴 파란색 양동이가 놓였다. 주인은 책방의 마지막 날에 들른 손님들에게 이 꽃을 한 송이씩 건넸다. 책방과 주인, 손님들은 작별하지만, 그 풍경이 그리 슬퍼 보이지만은 않았다. 책방 주인은 이 폐업을 "존엄사"라고 했다. 책을 납품하는 출판사에 줄 대금, 일하는 직원 8명에게 줄 월급이 밀리는 처지로 내몰리기 전에 존엄하게 죽음을 택하겠다는 의지였다. 지난 9월5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불광문고와 대표 최낙범씨의 모습이다.

불광문고 입구에 놓인 나무모형에 한 어린이가 쪽지를 걸고 있다. 그 뒤로 폐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보인다. ⓒ와이아이라잇

불광문고는 1996년 바로 지금 자리에서 문을 열었다. 25년이 흘렀다. 대형서점이 우세종으로 자리 잡고, 판매를 넘어 유통도 넘보는 변이를 거친 시간이었다. 불광문고도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문구와 음반을 팔고, 직원들이 직접 책을 배달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는 모두 대안이 못됐다. 정가의 10% 할인을 용인하는 ‘불완전’ 도서정가제, 대형서점보다 10~15% 더 높은 공급가격…. 지역서점이 이 문제를 성토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집콕' 문화가 확산돼 도서 판매량이 늘었다는 건 온라인 서점의 이야기다.


불광문고는 8월17일 소셜미디어에 폐업을 알렸다. "25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던 불광문고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중략)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버텨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책을 판매하여 얻는 수익률로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기가 버거운 날들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중략) 기형적인 도서 유통구조로 인해 '책을 비싸게 파는 도둑놈' 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고 임대료는 감당이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중략) 지역 오프라인 서점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서점이 서점으로 존재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광문고는 멈춥니다."


책을 파는 구조나 소비하는 세태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불광문고는 책이 팔리지 않아 문을 닫는다고 했던 그날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썼다. 다소 냉소적인 비유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든 사람 자리는 몰라도 난 사람 자리는 안다고, 은평구 주민들에게는 불광문고의 빈자리를 상상하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불광문고 지키기'가 시작됐다.

불광문고 입구에 놓인 나무모형에 시민들이 걸어놓은 쪽지들. ⓒ와이아이라잇

불광문고보다 어릴법한 예전의 '동네 꼬마손님'들은 너도나도 소셜미디어에서 이 서점에 얽힌 추억과, 그 추억을 함께한 친구들을 호출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서점에 처음 발을 들였거나, 학교가 끝난 뒤 시간을 때우러 들렀던 순간들. "'할 거 없으면 불광문고 갈래?' 이랬는데…" 이들에게 불광문고는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담은 장소였다. 그 공간이 그 장소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들을 말하고 있었다. 은평구청엔 "불광문고 폐업을 막을 방안을 고민해 달라"는 청원이 제출됐고, 구청장 청원 답변 요건인 500명을 하루 만에 넘었다. 불광문고가 문을 닫기 전까지 1650여명이 참여했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선 불광문고 존치를 요구하는 서한에 400여명이 서명했다.


'은평구 불광동 272-51번지 불광문고', 그 장소가 지닌 의미는 은평구에서 나고 자란 장수련씨가 잘 안다. 장씨는 불광문고가 1996년 그 자리에 처음 생겼을 때 "이제 책을 사러 종로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라며 기뻐했었다. 3년 후인 1999년 장씨는 불광문고 옆 돈까스·우동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불광문고 직원이 됐다.


불광문고가 문을 열었을 때, 은평구엔 서점이 들어올만한 큰 건물도 딱히 없었다. 장씨는 "구립도서관도 없고 학교 도서관에도 책이 없었다"라며 "학교가 끝나면 여기 와서 노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그즈음 불광문고 풍경을 "동네 꼬마손님들이 발에 채이도록 많았다. 옛날 명절 앞둔 목욕탕처럼 바글바글했다"라고 묘사했다.

불광문고 내 서가 앞에서 한 시민이 책을 고르는 모습. ⓒ와이아이라잇

'공공도서관'이란 말도 익숙하지 않았던 그 시절엔 불광문고가 공공도서관이었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산 중턱에 있는 도서관은 멀지만, 똑같이 책을 접할 수 있는 불광문고는 가깝다. 술집 혹은 모텔이 랜드마크가 되는 불광역사거리 주변에서 불광문고는 거의 유일하게 아이들이 갈만한 공간이 된다. 지역 작가와 주민단체와 함께 동네 아이들을 위한 글짓기 교실, 색종이접기 교실, 비즈공예교실을 열었다. 보통은 동네 문화회관이나 복지회관이 이런 일을 한다.  주민들은 불광문고를 '문화사랑방'이라고 부른다. 이게 우리가 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공공장소이지, 다른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소유와 운영 주체가 공공이니 민간이니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공간과 장소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피는 것일 테다. 굳이 딱딱하게 말하자면, 불광문고는 '공적인 역할을 하는 민간 상업공간'이었다.


흔히 공공과 민간을 아주 단순하게 이분법처럼 나누는 데 익숙하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의 수많은 장소들 중 그렇게 무 자르듯 선을 그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무슨 구소련 국유화 체제도 아니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재화를 '구립' 내지는 '시립'이 붙은 시설에서 공급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기본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 먹고 자고 입는 일부터 교육, 문화, 소비, 여가 등 인간으로서 마땅히 향유해야 한다고 여기는 일들까지 모두 공공과 민간이 나눠 뒷받침해야 체제가 유지된다. 초등학교가 사립이든 공립이든 일단은 거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까지 가지 않아도 식당, 카페, 매점, 이런 곳들도 소소하게나마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은평구 주민들이 "불광문고를 살려내라"라며 여기저기 손짓했지만, 관할구청은 화답하지 못했다. 역시 딱딱하게 말하자면, 거기는 '민간영역'이기 때문에 '공공영역'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거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말 그대로 지역을 관할하는 공공기관이 이대로 손 놓을 일이 아닌 건 분명하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중요한 건 지역의 문화적 수요를 감당했던 공간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주민들이 그 장소가 사라진다는 것을 왜 그렇게 아쉬워했는지를 안다면,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노력이 나타나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내 도서관 등 공공시설 숫자를 자랑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번쯤 지도를 다시 그려보길 권한다. 분명 어딘가는 민간시설이 공적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며, 그 민간시설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도, 아무런 사후 대책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Photo by Noralí Nayla on Unsplash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모노클>은 매년 7~8월 발간하는 '삶의 질 특별호(Quality of Life Special Edition)'에서 '살기 좋은 도시(Liveable Cities Index)'를 선정한다. 올해 서울이 11위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모노클이 반영하는 여러 평가지표 중 하나가 바로 '독립서점의 수'라고 한다. 서점 그 자체보다는 도시를 구성하는 작은 요소에 주목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거대한 공공시설이나 대형마트도 많지만, 실은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룬 게 우리의 도시다. 서울은 얼마 전 그중 하나인 불광문고를 잃었다. 장수련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이 작은 공간을 도시에 돌려놓기 위해 아직 뛰고 있다.


참고: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 25년 불광문고···지역서점의 의미를 묻다


Photo by Sanath Kuma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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