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 물류창고가 불탔다. 38명이 죽었고 10명이 다쳤다. 경찰이 수사하는 중인데 몇 가지 추정이 있다. 불은 지하 어딘가에서 났다. 대부분 유독가스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시신을 지하 2층에서 4구, 지하 1층에서 4구, 지상 1층에서 4구, 지상 2층에서 18구, 지상 3층에서 4구, 지상 4층에서 4구 발견했다. 피할 곳은 없었다. 70여 명이 일했는데 절반 넘게 당했다.건물은 화통 같았다.
조지 오웰이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다시 꺼냈다. 숯검댕 같은 창고 건물에서 오웰이 본 갱도 풍경이 떠올랐다. 그것은 "더위, 소음, 혼란, 암흑, 탁한 공기, 그리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이 갑갑한 공간"이다. 불빛은 뿌연 탄진에 막혀 뻗지 못하고, 장비는 기관총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갱도는 깊이 350m에서 길이 1.5~5km, 혹은 8km에 달한다. 폭은 2~3m, 높이는 1.5m쯤이다. 숨이 막힌다.
창고에서 누군가는 전기를 다뤘고, 누군가는 설비를 만졌다. 누군가는 도장을 했고, 누군가는 타설을 했다. 누군가는 용접을 했을 것이란 추측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일이다. 일이니까 누군가는 지시를 했을 것이다. 불꽃이 튀었고 도장과 타설에서 발생한 유증기에 닿았다. 폭발음이 10번쯤 들렸다고 한다. 용접이나 도장이나 타설 같은 것을 탓할 수 있을까. 어떤 전문가는 "환기를 안 해서"라고 추정한다.
지하 350m 갱도에 그런 게 과연 있을까 싶은 걸 오웰이 기록했다. "올 굵은 삼베 커튼과 두꺼운 나무문을 열고 기다시피 지나갈 때면 한바탕 세찬 공기가 밀려온다. 이 문들은 환기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한 수직 갱도의 탁한 공기를 환풍기로 뽑아내면, 다른 수직 갱도로 맑은 공기가 들어온다. 하지만 그대로 두면 공기가 가장 짧은 코스로만 돌아서, 더 깊은 곳에 있는 작업장은 환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칸막이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탄광에서도 노동자가 죽는다. 오웰의 서술에 따르면, "매년 광부 900명 중 하나꼴로 목숨을 잃으며, 여섯 명 중 하나가 상해를 당한다". 또 "광부의 직업 수명이 40년이라고 할 때, 상해를 입지 않을 확률은 일곱에 하나 정도고 사망당하지 않을 확률은 스물에 하나 남짓"이다. 그러다 보니 "광부의 가정치고 일하다 목숨 잃은 아버지나 형제나 삼촌 얘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지난해 11월, 2018년 1월~2019년 9월 산업안전보건공단 재해조사 보고서를 모두 모아 분석해 쓴 기사 제목은 '하루에 한 명 떨어져 죽고, 사흘에 한 명 끼어서 죽는다'였다. 이천 창고에선 50대 아버지와 20대 아들이 함께 죽었다. 60대 아버지는 죽었고, 30대 아들은 건물 밖으로 몸을 던져 살았지만 중상을 입었다. 어떤 5살 아이는 나중에 아버지가 그 곳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지은이 조지 오웰 | 옮긴이 이한중 | 2010년 2월 |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