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는 '위험한 집에 사는 사람을 구한다'로 읽히길
*2023년 9월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병욱 국회의원·경기도가 주관한 세미나 <반지하 주택 해소 국회 토론회>에 앞서 제출한 토론문입니다. 공유보다는 개인 기록 목적이 더 강한 글을 게시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반지하 주택에 관한 논의를 접할 때마다 2022년 8월 8일 서울 신림동 반지하 참사 직후 한 장면을 재생하게 된다. 그때 서울시는 나름 빠르게 대처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커다란 비난을 떠안았다. 물론, 자치단체가 관할 지역에서 재해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호된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재해 이후의 심각한 '소통 실패'가 어떤 분노를 들쑤셨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당시 서울시는 굉장히 억울했을 것 같다. "반지하 주택은 안전과 주거환경 모두에서 주거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 유형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라고 '원론'을 말했을 뿐인데, 반지하 주택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장 "그럼 어디 가서 살라는 말이냐"라는 원성이 자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반지하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비판했다. 사실,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10~20년에 걸쳐 차근차근 없앤다는 계획을 말했는데, 어째 "반지하는 (당장) 사라져야 한다"로 읽혀버렸다.
이 사건은 반지하 주택 대책의 지향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신림동 참사를 계기로 설정해야 할 정책의 목표는 무엇일까? 위험한 집을 모두 없애자는 것일까, 아니면 위험한 집에 사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일까.
얼핏 같은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반지하 주택 거주자는 아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서울시의 지난 소통 실패에서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반지하 주택을 택했다. 반지하 주택 거주자들의 주거 이동, 주거 상향 문제를 충분히 강조하지 않으면 서울시가 겪은 바를 보듯 소통에 오류가 발생한다. '위험한 집을 없애자'라는 이야기만 앞서고, '그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데?'라는 이야기는 뒤로 밀리는 모양새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현재 「건축법」과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반지하 주택을 더는 새로 짓지 못하게 하거나, 현존 반지하 주택을 빠르게 줄여나갈 방안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물어야 할 것 같다. 이 정책의 목표는 무엇일까? 단연, 위험한 주택(=반지하 주택)을 모두 없애자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도 "그럼 어디 가서 살라는 말이냐"라는 한숨이 나올지도 모른다.
소규모주택정비법에는 세입자 이주 대책에 관한 내용이 없다. 서울시가 이 법에 근거한 '모아타운' 사업을 70여개 지역에서 추진하면서 최근 세입자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는 중이다. 거주 가구의 80%가 세입자인 반지하 주택을 정비하는 일도 세입자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가정적인 이야기지만, 모든 반지하 주택이 어느 한날한시에 일제히 사라질 게 아니라면, 철거되는 '이 반지하'에서 아직 남은 '저 반지하'로 옮겨가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을 할 가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서울시 역시 모아타운의 갈등 요소를 줄이고자 했다. 시 조례를 개정해 세입자 이주대책을 마련할 경우 임대주택 공급 비율을 줄이고 용적률을 추가로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인센티브, 즉 권고 사항이어서 얼마나 실효적일지는 알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입자가 주거 상향이 가능한 수준으로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있게, 필요하다면 임대주택·용적률과 연계해 이를 보장하는 방안을 만들 수는 없을지 궁금하다.
세입자 주거 이전 대책을 반지하 주택 정책의 핵심 요소로 부각해야 한다. 그래서 경기도의 반지하 주택 정책이 단순히 '위험한 집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위험한 집에 사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라는 메시지로 읽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