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01호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 주 Sep 11. 2024

공간유목민 그녀, S의 취직

301호실의 마법

육아로 인해, 10년 이상을 출근 없는 일상을 보냈다. 매일 출근하는 고통스러운 직장인이 들으면 소스라칠지 모르지만, 아침에 집을 나서 특정한 장소로 향한다는 게 설렐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마치 직장을 나서는 사람처럼 아침이 분주해졌다. 아이가 학교로 등원하면 서둘러 집을 나선다. 걸어서 10분, 자전거로 5분, 차로 3분 정도면 도착하는 곳에 301호실이 있다. 마음가짐의 여유에 따라, 계절의 변화에 따라 301호실로 향하는 이동수단은 바뀐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차로 이동을 하는 날이 잦고, 봄과 가을은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을 하게 된다. 마음은 늘 이곳에 여유를 두고, 일상은 아이와 남편을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루를 두 단위를 쪼개어 쓰게 되었다. 아침에 아이와 남편이 출근하면 301호실로 출근을 하고, 오후에 아이가 하원을 하는 것에 맞춰 집으로 향하게 된다. 주로 오후에는 아이의 스케줄에 따라 픽드롭을 다니느라 분주하다. 자기만의 방을 확보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도 확보하고자 함이다. 그 또한 지켜내기 위해 일사불란해지고, 더 바빠지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침 끼니를 챙기고, 집을 정돈하고 나서려면 아침에 쓰는 체력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차피 내가 해치워야 할 일이기에 집을 나서기 전에 집안일은 미루지 않으려 한다. 곧 301호실로 향할 것이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시간을 느리게 쓸 예정이다. 좋아하는 원두를 선택하고, 느리게 향을 음미하며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실 것이다.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롯이 시간을 재촉하지도, 육체도 재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01호실로 출근한다고 하였지만, 주객이 전도되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퇴근을 하고, 고된 몸을 누리울 장소로 퇴근을 한 기분이다.


때론 혼자이기도 하고, 때론 공간유목민 S와 이 공간을 열심히 음미하였다. 읽고 싶은 책을 한가득 가지고 와서 책탑을 쌓아두고 읽기도 하고 안 읽기도 하고. 수다로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하였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나는 주로 먹는 것과 예체능 관련 학원을 보내는 일상에 중점이 있었던 반면, S는 중학생인 쌍둥이 아들 둘의 공부에 집중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 한 아들을 데리고 저녁에는 301호실에서 S는 책을 읽고, 아들은 수학공부를 한다고 머물다 가곤 했다. 이렇게 공간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이 되었다. 아들의 수학을 간간히 봐주던 S는 전직 수학강사였다. 수학강사를 그만둔 건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마자였으니 15년은 족히 넘었다. 거의 독박육아로 키운 아들들이라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시절을 보냈던 그녀다.


301호실을 계약하고 두어 달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S가 아들이 다니던 수학 학원에 면접을 보러 간다는 것이었다. 이야기인즉, 매일 아들을 데리고 301호실에서 수학의 가이드를 잡아주고 문제집을 체크해 주었더니 예사롭지 않다고 느낀 학원원장님이 아들에게 질문을 했던 것이다.

# 학원 원장 : “도대체 어머님이 뭐 하시는 분이시니?”

# 아들 : “예전에 수학강사로 일하셨어요.”

다음 날, 학원 원장은 S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혹시? 일 해보실 수 없겠냐고. 그렇게 S는 이력서를 써서 학원에 면접을 보았고, 15년 만에 다시 수학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주로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 1학년 수학을 봐주는 파트여서 2시부터 6시까지만 시간을 할애하는 조건이라 금상첨화였다. 그 시간은 쌍둥이 아들들을 케어하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시간이었으며, 오전은 수업준비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물론 경력단절의 시간만큼 긴장감이 컸을 터, 첫 출근이 다가오는 내내 S는 ”잘할 수 있겠지? “라고 의구심을 가졌다. 그렇게 첫 출근날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S는 다시 경력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우리는 내내 신기해한다. 301호실에 들어와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마치 예정되고 준비되었던 것처럼 술술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공간이 부리는 마법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ENFJ와 ENFP가 만나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