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삽질

본캐도 부캐도 다 나야.

by 와이 주

합법적으로 나의 신상을 알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활용동의서가 필요하다. 미성년자의 보호자라면 어쩔 도리 없이 동의해야만 한다. 생년월일, 연락처, 주소, 직업란에 최소한의 정보를 학교에 제공하는 일은 매년 반복되기 때문이다. 항목마다 신상정보를 적다가 펜을 멈춘다. 매번 멈추는 부분은 직업란이다. 주부라고 적으려다 주부라는 정체성으로 기재되는 것을 거부하는 멈춤이다. 괜히 심통이 난다.


하루 종일 바쁘면 한없이 바쁜 사람, 잉여 시간을 가족을 위해 쓰는 사람, 매일 반복되는 일을 하지만 눈치채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 나의 취향을 무시한 채 좋든 싫든 해야 하는 일이 있는 사람, 엄마니까, 주부니까, 며느리니까 당연히 부여된 통념적 사고가 박혀 버린 사람.

그 모든 일을 주부라는 한 단어로만 ‘퉁’ 치는 것 같아 부아가 난다.


주부라는 단어 대신 다른 걸 적고 싶어 떠올려 본 단어들도 있었다. “독서논술지도사” “그림책 지도사” “작가 지망생” “그림책 작가” “소잉 기술자” “주식하는 사람” “독서운동가” “식물 집사” 등등. 무엇이 되기 위해 했던 삽질이 아니었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했던 삽질도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걸 계산 없이 해서 얻은 나의 정체성이었다.


독설 논술지도가와 그림책 지도사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이유가 있었다. 적어도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랐고, 노력을 기울였다. 좋은 그림책을 함께 읽고, 같이 도서관을 드나들고, 작은 책방이나 서점 나들이도 이벤트처럼 했었다. 전문적으로 학습코칭을 배운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좋은 엄마이자 좋은 어른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정학습이 길어지면서 예정에 없던 홈스쿨링을 해야 했다. 이왕이면 제대로 홈스쿨링을 해보고 싶었다. 시간을 쪼개어 오프라인 수업을 다녔고, 독서논술지도사, 그림책 지도사, 학습코칭지도를 한꺼번에 구상했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수업은 멈추기를 반복했지만, 코로나 시국의 낯선 환경에서 기어코 자격증을 획득했었다. 새로운 뭔가를 배웠다는 것보다 재미있었고, 확신을 받는 시간이었다. 잘하고 있다고.


결국, 잔뜩 열을 내고는 차분히 주부라고 꾹꾹 눌러 적었다. 괜스레 딸아이에게 기재된 자료를 건네며 말을 덧붙였다. 엄마는 현재 본캐가 주부이지만, 부캐도 적고 싶어. 적을 자리가 비좁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어쩌면 주부의 삶은 인정 욕구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누군가 칭찬이라도 해주면 그게 좋아서 더 잘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아이가 받아 온 상도 엄마가 잘 키워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아이를 다그쳐서라도 잘해 내게 하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칭찬에 목말라 있었다. 약자인 아이에게 욕망을 투여하고, 뭐든 잘하려고 어깨에 힘을 잔뜩 들어가 있었고, 긴장 상태였다.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나마 책을 가까이했기에 일그러진 자신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자각하던 순간 두려웠고, 자책도 했었다. 누구나 겪는 딜레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아이의 성취를 엄마의 성취로 인지하려는 감정적 일치가 일어나지만, 이성적으로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딸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는 엄마의 꿈을 꿀 거야. 너는 너의 꿈을 꿔. 너의 성공은 오롯이 너의 것이 될 것이고, 나의 성공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될 거야. 그저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응원하고 기뻐해 주는 사람인 거야.”


행복을 아이를 통해 보상받으려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했던 삽질의 결과들, 현재 진행형인 삽질들은 나의 꿈을 찾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이루고, 일상 속에 잘 녹여내어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계산 없이 하는 삽질이라고 비난을 받는 것은 쓸모와 연관 지으려고 하는 나쁜 시선이 만들어낸 갑질이다.


많은 작가들이 예술의 쓸모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인정하는 방식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하는 동안 혹은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참견과 충고의 말을 듣는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서. “쓸데없는 짓 한다” “시간 낭비한다” “돈도 안 되는 일에 힘을 쓰네” “밥이 나와, 떡이 나와” 어떤 사소한 도전과 배움에도 따라다니는 말이다. 쓸모를 요구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예술적 행위가 나의 삽질과 닮았다고. 당장 돈이 안 되니, 쓸데없어 보인다고 단정 짓는다. 내가 했던 쓸모없는 것들이, 사실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말이다. 앞으로도 나쁜 시선은 과감하게 물리치면서 건강한 삽질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