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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y Sep 07. 2015

우리도 조만간 노인이 된다

부모 봉양은 개인의 효심에 기대야 하는가

난 부모님께 매달 100만원 드리는데 왜 누나는 한푼도 안 드려
...10년 직장생활 동안 큰 불만 없이 살던 30대 중반의 한 직장인은 어느 날 고민이 들었습니다. ‘왜 나만 부모님 봉양을 하고 있는 거지?’ 그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누이는 부모님께 생활비를 대지 않았습니다. 최근엔 집도 샀습니다. 누이가 제 살 길만 살핀다고 불만이 들어 동생은 누이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누이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지난 토요일 한겨레신문의 한 기사이다..


우리 주변 가족들간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로 인해 성장한 자녀들 사이에 갈등은 수시로 일어나고 있고 독거노인의 고독사(고독사)나 자녀들 다툼이 사회문제화되곤 한다. 특히 자녀들이 결혼한 이후라면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더더욱 불거지게 된다.(저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더불어 이런 경우 대부분 '먹고살기 바빠서'라는, 위의 기사처럼 경제적 문제가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장남이라서, 장녀라서, 막내라서, 기혼이라서, 미혼이라서, 멀리 있어서, 가까이 있어서, 외벌이라서, 맞벌이라서, 어릴 때 많이 받아서 혹은 적게 받아서 등등 가족내 오래묵은 감정과 현실적 비교 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부모 봉양은 쉬이 풀릴 수 없는 이슈가 된다.


결국 기사에서처럼 현실적 해결점은 없는 채 가족이라는 농도짙은 감정선에서의 공감을 통해 일시적으로 해소되는 것처럼 끝나는 경우도 다반사다. '사정 없는' 형제자매들이 없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는 그래도 형제자매이니까 하면서 감정의 흔적은 남은 채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해소가 필요할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일시적 해소만으로는 지나가기에는 부모 부양은 현실이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다. "부모를 모시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부담스러워하면 불효자식"이라고 말이다. 철저한 유교식 사고방식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주장이고 또 은근 그런 말 앞에서는 죄의식을 느끼거나 위축되기도 한다.


모두 개인의 부담으로만 돌리기에는, 국가나 사회가 그리고 자본주의가 우리 삶 깊숙히 들어와있다. 교육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보다 효과적인 경제인력 양성소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효용성/필요성에 따라서 쉽게 내쳐지고 버려지고 있고 경제 11위 대국임을 자랑하면서도 사회안전망이 부족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42.6%나 될 정도로 사회구조적으로 엮여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개인과 가족 단위의 노력으로 뚫고 나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2인 노인부부의 생활평균 비용은 225만원이 적당하다고 하는데 2014년 기준 근로소득자 월 소득이 264만원이니 도대체가 개인이 부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노인이 뭐 그렇게 많이 쓰나"라는 주장도 있겠으나 본인이 늙으면 그렇게 될까 싶은가.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만 해결하라고 방치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고 급증하는 노령층 비중을 감안하면 더더욱 사회와 국가에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조만간 닥칠 이슈를 노후걱정이 없는 이들에게 무조건 맡기는 것이 옳을까 싶다.


효니 가족이니 하는 개인의 이슈로 쉽게 보지 말고 노인 부양 이슈는 진지한 대면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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