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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y Feb 14. 2017

'과정'과 '소통'에 대하여

영화 '컨택트'(Arrival)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꼭 봐야 할 영화" "두 번은 봐야 할 영화"라는 주위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개봉 10일이 지난 지금 누적관객 57만 명(영화진흥위)으로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영화 '컨택트'.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보지 못하신 분이라면 패스.




남자 주인공인 제레미 레너와 외계인과의 조우라는 영화 홍보물 덕분에 외계 생물체와 지구인의 mis-communication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고 지구의 패색이 짙어지는 가운데 주인공의 활약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지면서 해피엔딩 되는 전형적인 SF 액션 블록버스터로 기대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규모의 군부대가 등장했지만 끝날 때까지 기대한 전쟁 씬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즉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아니라는 거다.


조금은 김빠짐.


줄거리는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언어학자인 루이스가 딸 한나(Hannah)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기억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딸은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외계인들이 지구에 나타나고 모든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방문 목적을 알고 싶지만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언어학자인 루이스와 물리학자인 이안이 불러 외계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를 밝혀내고자 한다. 그들은 문어같이 생긴 외계인에게 헵타포드(Heptapod)라는 명칭을 붙였다.

음성으로는 소통이 불가능하자 외계인이 쓰는 문자를 해석하는 쪽으로 노력을 하게 된다. 원형으로 된 문자에 문장 하나가 모두 표현되는 헵타포드 언어를 해석하는데 시간이 계속 흘러가자 정부에서는 신속히 해결하라는 압박을 가하게 된다. 역시 언어 분석에 노력을 하던 중국 측은 외계인의 의도가 침략이라고 결론내리고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중국에 이어 많은 나라들이 공격을 준비하자 미국도 철수를 결정하게 되지만 루이스는 오해라며 외계인들의 방문 목적은 침략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비선형적으로 시간을 인식하는 헵타포트 언어를 이해하게 된 루이스는 미래로부터 현재의 전쟁 위기를 해결하게 된다.


월드워Z와 같은 화려한 전쟁 화면을 본다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 실망감이 들었지만 볼수록 영화는 의미를 주고 있었다. 감각적 만족과 서구적 감동을 주로 주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동양적 의미를 가진 영화였다. 내 식대로 이해한 두 가지.


모든 건 '원(circle)'으로 이뤄져 있다


이 영화는 한 단어로 말한다면 '원(circle)'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형적(linear)이 아닌 비선형적(non-linear)이며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고 무에서 태어나 무로 돌아간다는 동양의 사상과 닮아있다.


#1

원제 arrival은 도착이라는 뜻도 있지만 도입/도래라는 뜻도 있어 영화 제목은 끝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중의의 의미를 가진다.  루이스의 아이 이름은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한나(Hannah)이다. 외계인인 헵타포드의 언어 또한 원형의 그림같은 모습을 띄고 있고 더구나 단어가 아닌 한 문장 전체를 표현하고 있다.



#2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헵타포드 언어를 이해하면서 미래를 알게 되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미래에서 알게된 정보로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게 된다. 현재 시점에서 위기 해결한 공로로 루이스는 미래에 헵타포드 언어학자로 이름을 알리게 되고 현재(미래 시점에서는 과거)의 숙제를 풀 열쇠를 얻게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이어져있다. 과거의 결과가 현재이고 현재의 결과가 미래라는 개념이 아니라 미래의 결과가 과거이고 현재이며 또 현재의 결과가 미래가 되는, 삶은 원으로 이뤄져있음을 보여준다.


#3

미래를 알게 된 루이스는 앞으로 동료인 물리학자 이안과 결혼하고 태어난 아이 한나가 불치병으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또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안이 루이스와 한나를 떠난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결국 이안과 사랑에 빠짐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지만 운명을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운명론적으로 보이기보다는 결과지향적 삶보다 과정지향적 삶은 선택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자녀와 함께 한다는 소중한 과정을 단지 결과때문에 포기한다는 건 어찌 보면 무엇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두려움에 회피하기 위한 선택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결과가 주는 행복은 찰나이지만 과정이 준 행복은 결과와 무관하게 의미 있고 영원하다.


소통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루이스는 외계인 헵타포드와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루이스가 선택한 길은 필담으로 어휘를 알려주고 배우는 방식으로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오역 없는 방법으로 나온다. 중국은 한자의 난해함 때문에 마작으로 언어 소통을 시도하지만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오해를 일으켜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에서 언급된 이론이 사피어-워프 가설이다.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라는 언어학적 가설로 게임의 규칙으로 소통하고자 했던 중국은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상호 이해과 공감으로 시간을 들여 소통 노력을 한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인간의 단선적 시간 개념을 뛰어넘게 된다.


소쉬르가 기호학에서 이야기한 시니피앙(기표)과 시니피에(기의)로 언어를 분리해보면 단지 기표(문자나 발음)를 안다고 해서 기의(의미)를 바로 알아차린다고 말할 수 없다. 소통은 바로 의미까지 알아야 가능하다. 대화할 수 있다고 해서,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소통에는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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