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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y Mar 30. 2017

'지혜로운' 아빠는 어떻게 될까

지식이나 경제 말고 지혜는 가르쳐줄 수 없을까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밤 9시반쯤 와이프와 동네에서 운동 겸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네가 대단지라 산책하기고 참 좋은 곳입니다.

밤산책을 즐기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멀리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급하게 달려와 지나치면서 우리를 보고 소리지르더군요. “살려주세요. 잡히면 죽어요”


학교폭력? 


그 단어가 머리속에 떠올랐습니다. 솔직히 조금은 두렵기도 했습니다. 요즘 애들 워낙 막무가내인데다 전 싸움엔 젬병이거든요. 그래도 용기를 내어 뒤돌아보자마자 비슷한 또래가 쫓아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덩치 큰 아저씨가 엄청난 속도로 저를 지나쳤습니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약간은 멍한 상태로 보니 50미터 남짓 멀리서 아저씨가 결국 아이를 붙잡았고 발로 걷어찼습니다. 


그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달려나갔고 동시에 와이프를 100미터 떨어진 파출소로 달려갔습니다. 가자마자 전 둘 사이를 몸으로 가로막았습니다. 그리고는 뭐라고 하려는 그 순간 둘 사이의 분위기가 묘함에 멈칫하게 되더군요. 이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부자지간’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렇다고 빠지기도 그렇고 아저씨는 아이에게 화내고 아이는 울먹거리며 대들고 남의 집안싸움에 끼여든 것같이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아저씨에게는 “때리지 말고 말로 하세요”, 아이에게는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고 하나마나한 말만 했습니다. 


아빠로 보이는 그분 눈빛에서 순간 많은 감정이 지나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화가 나지만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그러고 있다는 부끄러움, 그래서 더욱 화가 나지만 낼 수도 없는 복잡한 감정들 말입니다.


부자지간이었어

결국 아이가 "아빠"란 단어를 언급하고 둘 사이가 부자지간으로 확신하는 순간 아빠는 “다시는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 마라”며 잡았던 멱살을 풀고 멀리 가버렸고 아이는 반대방향으로 뛰어갔습니다. 혼자 괜히 머슥해지더군요.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야 파출소에 갔던 와이프가 돌아와 파출소에 사람이 없어 긴급전화로 신고하고 왔다고 해서 "부자지간이니 필요없다"고 하고는 다시 경찰에 전화했습니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참으로 느긋하고 여유롭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느낌이었을 겁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와이프랑 아까 그 상황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두컴컴한 놀이터 한귀퉁이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 아이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개입했다는 일말의 책임감이었을까,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겁니다.


“안녕. 아까 그 아저씨가 아빠시니”
“네”
“아빠한테 왜 혼나고 있었니? 잘못한 게 있니?”


그러자 아이는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는 울음을 터트립니다. 남자아이의 눈물이란...


자기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수학문제 하나 틀려서 아빠한테 혼나고 집에서 쫓겨났는데 갈 데가 없어 PC방에서 게임하다 찾으러 나온 아빠를 보고는 도망치다 잡힌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울먹거리며 말한 거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겠는데 와이프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아빠라는 '존재'


아이는 그 후로도 아빠가 얼마나 무서운지, 또 자기의 마음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했고 차츰 안정을 되찾으면서 울음도 그쳤습니다.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 아이는 집에 가는 것부터, 집에 가서 아빠에게 다시 혼날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주 웃긴 일이지만 "아빠가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또 너는 아빠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지, 없다면 시도해보라’며 아빠의 입장에서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순간만은 진심이었고 또 아빠도 같은 마음일 거라 믿었습니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 이제야 직장에서 퇴근한다는 엄마를 만나러 아이는 인사와 함께 머리를 꾸뻑 숙이고는 달려갔습니다. 


나는 지혜로운 아빠인가요?


집에 돌아오며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 아빠는 그렇게 해서 아이에게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아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아빠가 진정 원하는 것이었을까. 당장의 상처는 아물겠지만 다시 비슷한 상황이 되면 마음은 다시 기억할텐데, 그리고 상처는 덧나고 또 덧나고 그럴텐데 말입니다.

아버지를 둔 자식이자 자식을 둔 아빠 입장인 나 또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그리고 내 마음을 잘 전달하고 있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순간의 말과 행동으로 진심이 통하진 않을 겁니다. 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감정 표현이 자칫 '표현' 그 자체로만 받아들여져 관계를 더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아는 것이 많아도 지혜롭게 사는 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에 마음이 많은  쓰인 저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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