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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Jan 11. 2018

새가 날아가는 길

헤르만 헤세, <데미안,  Demian>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그때엔 가방이 무거웠다. 짊어진 삶의 무게보다도 어깨를 당장 짓누르는 가방이. 초등학생 시절엔 가방이 그렇게 무거웠었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고 걸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이 뜨거운 아스팔트 길이 끝나 집에 도착하겠거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러다가 어느 날은 푹 숙인 눈에, 까맣고 뜨거운 아스팔트의 밀물과 썰물 사이에서 다른 게 보였다. 새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새였던 것'이다. 눌리고 눌려, 밟히고 밟혀 마침내 피떡이 되어 아스팔트에 짓이겨져 물러버린 새였다. 깃털이었는지 까무잡잡한 게 더려 껴있기도 한, 빨간, 피주검이라 부를 수도 없는 그 새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학교는 엄숙한 공간이었다. 시간마저 자로 잰 듯, 그곳에선 모든 것이 얼어붙어있는 것만 같았다. 월요일이면 교실 앞 티브이에 띄운 태극기를 보고 해야 했던 말들.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사이로 칼같이 앞문을 밀고 들어오는 선생님. 줄 맞춰 키 맞춰 선 아이들 사이에서 묵묵히 들어야 했던, 들을 이를 잃은 교장선생님 훈화. 그곳에선 누구나의 가슴속에 발버둥 치는, 뛰는 듯한 발랄함을 가두어야 했다. 착한 어린이 되기란, 학교라는 무대에선 선생님 말에 복종하기였으므로.

 그때의 세계는 명령과 복종으로 그어진 땅따먹기였다. 이른바 '착하게 살기'는, 어른들이 말하는 신성한 땅따먹기의 유일무이한 노하우였다. 그런데 나는 그만 넘어선 안될 선을 밟고 말았던 적이 었었다. 손에는 제 값을 치르지 못한 껌이 몇 통 들려있었고, 나는 감옥에 갈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잘못에 이제 새로운 잘못들이 뒤이어질 게 틀림없다는 것,
 (중략)
 여기까지 이야기한 이 모든 체험에서는 이 순간이 중요한 순간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성함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내 유년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되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우리들 운명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은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칼자국과 균열은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히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 살아 있으며 계속 피 흘린다.
 그 새로운 느낌에 곧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나는 곧바로 엎드려 아버지의 발에 키스라도 하여 사죄하고 싶었다.


 무서웠다. 그날 이후 감옥을 가는 것 대신, 신성한 세계를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기로 맹세했었다. 눈물로 맹세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낮에는 학원을 다니고 저녁에는 보던 티브이를 껐다. 어머니가 나가라는 교회에  나가서, 그 나이 때 아이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떠들고 때로는 무릎을 꿇고 십자가에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대로 선생님은 내게 꾸중이나 칭찬을 해주었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숭고함과 고귀함을 온몸에 가득 안고만 산 것은 아니었다. 어느 때는 짊어진 있던 세계를 던지고 싶어 소리 지른 적도 있었고, 짓눌린 어깨 때문에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낫겠다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 뿐이지 한 번도 세계를 발 밑에 내려놓은 적은 없었다. 모든 걸 던지고 감옥에 들어간 적도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는지.


 "압락사스는 (중략)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의 이름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나이가 들었다. 요즘엔 술에 좀처럼 취하지 않는다. 소주에 절인 몸보다 먼저 반응하는 머리인 탓인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교장선생님 훈화를 들을 이유도, 책상에 여덟 시간씩 앉아 공부할 이유도, 총을 들쳐 메고 연병장을 뛸 이유도 없는 지금에도 왜 마음을 놓고 취할 수가 없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이가 더 들면 좋아질까.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집을 갖고 그러면 나는 술에 취할 수 있을까.


 어렸을 땐 새가 되고 싶었다. 새처럼 훨훨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신성한 세계를 짊어지려 했고 그 무게를 말없이 인내할 수 있었다.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에겐, 어느 누구라도 와서 내 어깻죽지에 날개를 달아줄 것만 같아서. 감옥을 가지 않는 것도, 그 나이 때의 예쁨을 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나는 훨훨 날고 싶었다.


 마침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데미안>의 유명한 경구는 그럴듯한 말이지만, 그뿐이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자유인 지금, 피떡이 돼서 짓이겨진, 아스팔트 위의 새 시체의 영상이 불현듯 떠오른다. 경고문처럼. 어렸을 적의 야무진 다짐대로 나는 아직 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취하지도 않는 술을 날이 밝도록 마시고, 즐기지도 않는 노래에 목이 터져라 몸을 맡기는가 보다. 피떡이 된 새인가 나는.

 그러나 나를 뒤흔든 건 <데미안>의 유명한 '새'가 아니라, 오히려 에바 부인의 말이었다.


 "그건 늘 어려워요, 태어나는 것은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요?"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에게 힘들었다고, 여기까지 오느라 그렇게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다른 길이 있었을까. 더 아름답고 쉬운 길이 있었을까. 에바 부인의 말대로 자문해본다.


 많은 일이 있었다. 잘못을 하면 감옥에 간다는 말에 두려웠었고,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도 지옥에 간다는 말에 벌벌 떨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에 잠을 줄이고 책상에 앉아있기도 했고, 나와는 상관없는 불의에도 몸서리치며 화를 냈었다. 그러나 나는 무거운 지구를 단 한 번도 어깨에서 내려놓을 수도, 초라한 등짝에 날개 한 짝도 달아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하릴없이 앉아 끄적이는 지금 , 나는 감히 삶이 쉽지 않았다 말한다.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요?"

 라는 말에 나 혼자 서럽던 마음에 문득 부끄러움 한 줄기가 비친다. 과연 내게 다른 길이 있었을까. 다르게 살 수 있었을까.

 

 아침엔, 집을 나서면서 새를 보았다.

 새는 날아올랐고,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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