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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Feb 26. 2018

엄마처럼 살기 싫었는데

영화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김태리 주연

1.

 엄마처럼 살기 싫었어. 어디선가 본 이 문장. 혜원(김태리가 연기한)이 엄마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다시 입으로 씹어보면 어딘가 맛있는 문장이다. 감칠맛이 혀끝에서 도는 것 같기도 하고. 괜한 반항심이 만든 멋인가. 그 탓인지 모든 사람이 마치 자신의 어머니를 닮고 싶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어머니를 닮고 싶지 않다고.



2.

 집 떠난 혜원이 임용시험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돌아온 집엔 엄마는 아직도 없다. 혜원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자신의 삶을 찾겠다고 떠난 엄마가 혜원은 밉다. 집안 곳곳에서 그리고 엄마가 해주던 음식들에서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혜원은 자신을 혼자 남기고 간 엄마가 원망스럽다. 엄마는 왜 떠나야만 했을까.

 원망을 뒤로하고 혜원은 엄마가 살았던 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음식을 하고, 농사를 짓고. 그러면 조금이라도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면 엄마 없이 힘들었던, 혼자 남은 삶의 아픔을 치유할까 싶어서, 엄마가 그랬듯이.



3.

 '엄마'를 떠올리는 혜원을 보다가 문득, 이모를 떠올렸다. 언젠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이모한테 못된 말을 한 적 있다. 그땐 그게 나는 이모를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거면 이혼해. 이모.

 코흘리개 한 명을 앉혀놓으면 다른 한 놈이 득달같이 일어났다. 시끄러운 어떤 유튜브 방송이 켜진 휴대폰을 들고 어린 녀석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뛰어다녔다. 그리고 거실을 가로지어 대(大)자로 뻗은 이모부는 얄밉게도 눈길 하나 주지 않으면서도 입으로는 큰소리를 질러댔다. '애들 좀 가만히 있으라 해!'라고. 눈은 어지럽고 귀는 따가웠다. 그건 지옥이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어린 나이에, 나는 그 이모를 우리집에소 종종 볼 수 있었다. 당시엔 고등학생이었던 이모가 집에 놀러 오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보드게임 앞에서 주사위를 던지며 짓는 밝은 미소도 좋았고, 엄마와 닮은 모습에도 상냥한 이모가 정말 예뻤다. 방학이 끝날 무렵 이제는 학교 때문에 내려가 봐야 한다는 이모가 무거운 짐을 들고 현관문 앞에 서면, 그럴 때마다 나는 이모한테 손을 흔들면서 아니면 이모를 꼭 껴안고 자리에서 눈물을 주룩 흘렸다. 보고 싶을 거라고.


 그랬던 이모가, 어디서 본 적도 없는 사람의 아내가 되었고 그의 아이를 키우면서 모진 구박만 듣고 있는 것만 같이 보였다. 이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 엄마를 그만두라고, 아내를 그만두라고 이모에게 말했었다.



4.

 지금도 종종 이모를 본다. 아직도 이모는 내 사촌동생들의 엄마이고, 이모부의 아내이다. 가끔 들른, 시끄러운 그곳에서 이모는 예전처럼 피곤해 보였다. 이모를 보고 있자니 내가 했던 철없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왜 그랬을까. 무슨 잘난 마음으로.

 사실은 어쩌면 우리 엄마가 불쌍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모한테 그런 말을 했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엄마처럼 살기 싫었기 때문에. 희생하고 포기하면서. 이모라도 그러지 않길 바라면서 그런 말을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모는 종종, 아니 자주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에 웃고, 이모부의 농담에 생기가 얼굴에 일른다. 그런 이모를 보면서 나는 갑자기 스스로 부끄러웠다.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는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보기로 했다. 종종은, 아니 자주 행복한 이모를 보면서.




5.

 극이 끝날 때까지도 혜원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야속한 엄마를 혜원은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리고 이제 나 역시 그런 혜원을 이해한다. 혜원의 엄마가 왜 떠났는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지만, 엄마의 집에서 보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깊어진 그 시간에 엄마를 이해하는 혜원을 나는 이해할 수 있겠다, 가슴으로. 이제야.


'곶감이 맛있어졌다는 건 겨울이 깊어졌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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