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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Feb 26. 2018

마블 영화는 게토를 나갈 수 없다

영화 <블랙팬서 Black Panther, 2017>

 <블랙팬서>는 여러모로 섬뜩한 영화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블랙팬서>는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백인 영화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만적인 <블랙팬서>의 섬뜩함을 돕는 몇 가지를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킬몽거의 게토 탈출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게토는 미국의 빈민 거주지역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지만, 흑인 힙합 문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면서 일종의 '어렵게 살던 시절'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스웨그 힙합도 게토 시절을 극복한 자신의 노력을 어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킬몽거(마이클 B 조던이 연기한)는 그런 게토를 겪어낸 사람이다.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 살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삼촌에게 아버지를 살해당한 킬몽거는 '성공'을 꿈꾼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버지가 살았던 고향에 돌아가 아버지가 당했던 서러움을 풀고, 부모 없이 살아야만 했던 삶을 토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한 킬몽거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다. 고향에 돌아가 왕위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킬몽거는 왕족의 후손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전 자격만 충족한다면 언제든 왕위 도전이 자유로운 와칸다가 섬뜩할 정도로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킬몽거는 티찰라와의 결투에서 승리하였고 와칸다의 왕이 되었다. 그가 결투에서 티찰라를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고 표효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게토를 벗어난 스웨그 힙합의 뮤직비디오라도 되는 듯 보였다. 그런 면에서 <블랙팬서>가 역사적으로 소외받은 인종인 흑인의 사회를 주무대로 한 것을 단적으로 잘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장면이 무안하게도, 적법한 왕위 계승의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킬몽거는 기성 정치세력의 '음모'로 다시 게토로 쫓겨나 죽음에 이른다. (티찰라가 살아있다면 정당히 킬몽거에게 끝나지 않은 결투를 다시 요청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 기성 세력은 이미 죽음 직전의 티찰라에게 규정 외로 하트 모양의 약초를 먹인다.) 게토에 있던 소외인은 결코 게토를 벗어나 주류로 합류할 수는 없는 것인가. 노예로 사느니 자유로운 죽음을 달라는 킬몽거의 절규가 귓가에 남는다.




 둘째로 '마블의 가장 혁신적인 히어로'라는 기만적인 영화 콘셉트이다. 블랙팬서는 주인공만 흑인일 뿐, 어떤 서사적인 면에서도 주인공의 내면 동기에서도 그 '혁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존 백인 히어로 무비보다 더 '백인'스러웠다.



 서사적으로 정말이지 지리멸렬하였다. 외부 장애에 의해 좌절된 히어로가 '정신 차리고' 빌런을 처치하는 서사는 거의 모든 히어로 무비에서 볼 수 있는 서사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배트맨이 베인에게 허리가 꺾긴 뒤 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나타나 베인을 무찌르는 것처럼.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트레인지가 끔찍한 사고 이후, 수련을 통하여 세상을 구하는 것처럼. 물론, 히어로 무비가 성장 모티브를 택해선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블랙팬서>가 혁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티찰라의 동기 역시 지극히 단편적이다. 왕족으로 태어나 왕위를 이어받을 티찰라는 일말의 '내적 갈등'없는 고결한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왕자에 지나지 않는 인물로 표현된다. 물론 극 중간중간 와칸다의 문호를 다른 나라에 개방해야 하는가 등 작은 갈등이 있지만 무시할 정도로 왕위를 이어받을 그에겐 사소하다. 티찰라의 동기는 단지 하나다. '와칸다를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티찰라는 다른 어떤 백인 주인공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오히려 기존의 기득권처럼 권력 존속 욕구의 화신이 아닌가. 죽음을 앞둔 킬몽거에게, 널 노예로 만들 생각이 없다고 말해줄 수 없었던 것일까.




 결론적으로, 흑인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부분에서 <블랙팬서>는 흑인을 이용한 '백인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마블 역시 지루한 영화 문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토에 갇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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