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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Apr 17. 2018

꿈에 열정 붓기

이채욱의 <백만 불자리 열정>

 살면서 열정을 다 쏟았다고 자부했던 때가 있었나 생각해보니, 뚜렷하게 떠오르는 일이 없다. 좋은 대학에 간다고 식음을 전폐하진 못해도, 컴퓨터 게임을 전폐하고 공부를 했던 때를 말하자면 우습다. 누구나 하는 일인데 무엇이 자랑이라고. 대학을 다니면서 나쁘지 않은 학점으로 졸업했어도, 그다지 열정을 다했다고 하기엔 마뜩잖다. 그냥 그것들이 내게 할만하였고 딱 그만큼만 하였을 뿐이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군대 때 할 거 없이 무언가를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은 항상 창대하였다. 그러나 끝은 부끄럽게도 미약하기만 했었다. 고등학교 땐 일류 대학을 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대학교 땐 전공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지만 그리고 군대 땐 국민이 주는 월급이 아깝지 않은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의욕만 앞서고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탓에 그냥 그저 '그러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막 회사원이 되었다. 그러니까 요즘은 아침마다 셔츠 구멍에 단추를 어색하게 끼워 넣으며 출근하는 참이다. 이번에도 역시 각오는 남다르다. 내가 맡은 분야의 무엇 무엇이 되겠다. 언제까지는 어느 정도까지 해내겠다. 뭐 그럴듯하지만 뻔한 목표다. 이미 알고 있듯이, 겪어왔듯이 그러나 어차피 말만 앞선 고만고만한 사람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그것도 그런 것이, 벌써부터 일요일 밤이면 다음날 아침이 두렵고, 금요일 오후면 다가올 주말이 너무나 반갑기 때문이다.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되풀이되는 일상과 너무나 익숙해진 직장 생활 속에 맥없이 묻히지 말고, 나를 그토록 벅차게 했던 첫 마음을 기억하라'라고 이채욱 저의 <백만 불짜리 열정>은 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읽는 내내 몰아치는 훌륭한 사람들의 멋진 일화는 본받을 만 하지만, 내게 더 와 닿는 것은 마지막에 적힌 바로 이 말이었다. 무용한 격식을 없애 회사의 효율성을 제고했다는 이야기보다, 거듭한 도전으로 회사의 역경을 이겨냈다는 얘기보다, 내게 필요한 건 입사할 때 가슴속에 품었던 꿈을 잃지 말자는 조언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곳에 발을 디딘 지가 한 달이 겨우 지난 요즘,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이 기억에 벌써 가물하다. 이제는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목표만 남아있지 첫 출근날 넥타이를 매던 그때의 두근거림이 요원한 듯하다. 그저 어떤 위치에 오르고 싶은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로 요약되는 꿈만 갖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고 싶은 게 나는 아니다. 아니 그런 건 꿈이 아니다. 수십 년 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버티는 삶, 끙끙 앓으며 인내하는 삶을 꿈을 꾸며 산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출근길이 발 가볍게 나아가 내 삶이 삶답도록, 매일을 꿈을 꾸며 살고 싶다. 사무실에 앉아 사소한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나는 과거부터 그것을 바라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이다. 간절히 바라왔던 자리에 드디어 도달했다하여 그 가치를 폄하하지 않게. 그리고 꿈이 아니라 생활에 매몰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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