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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Apr 23. 2018

인생 설명서

임규남 <회사가 키워주는 신입사원의 비밀>

 주문한 조립식 선반이 집에 배달되었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구별도 안 되는 나무판자들이며, 갖가지의 쇠 막대기는 내 손으로는 도무지 선반으로 만들어낼 수 없어 보였다.  손재주도 없었거니와, 번잡한 부품들은 나를 혼란스럽게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 부품들은 어엿하게 선반이 되어 화장실 옆에 우뚝 서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택배에 딸린 한 장의 설명서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이처럼 인생에도 한 장의 설명서는 아니더라도 한 권, 아니 몇 권이라도 좋으니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그럴지는 몰라도, 내게 설명서 없이 사는 삶은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다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기 일수였다. 진작에 열심히 하면 좋았을 대입 준비도 그러지 못해 남들보다 일 년 더 했어야 했고, 남들 다 일찍 다녀오는 군대도 나이 들어서야 남들보다 오래 다녀왔어야 했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그리고 잊힐 다짐을 하는 일을 반복하기가 무색하게 벌써 회사원이 되었다. 어렸을 때엔, 말쑥한 정장을 빼입고 한 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어른' 같아 보였다. 그 '어른' 같은 일을 아침마다 하는 나는 그러나 전혀 '어른'과 가까운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어수룩하다. 명함을 주고받는 법조차 어려워 거래처 앞에서도 허둥지둥 대기 바쁘다. 시간이 자연스럽게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주진 않았다.


 임규남 저의 <회사가 키워주는 신입사원의 비밀>은 회사에 처음 입사한 내게 그럭저럭 괜찮은 설명서이다. 어려워하던 명함 활용법부터 보고서 작성, 프레젠테이션 기술 등 신입사원으로 알아야 할 내용을 잘 간추려 놓았다. 그래서 기억하고 싶어 접어놓은 부분, 밑줄 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완벽한 설명서는 아니었다.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남의 탓을 하는 태도'를 시의적절하게 가지라니, 납득하기 어려웠다. 저자의 의도가 지나친 겸손에 따를 부작용을 경계하자는 것임을 알겠다. 그러나 지나쳐서 좋은 것은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없다는 점에서 저자의 조언은 공허하기만 하다. 또 굳이 남의 탓을 할 필요까지 있을까.


 책에 쓰인 대로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거래처와 노련하게 명함을 꺼내 주고받고 실수 없이 척척척 일을 처리하는, 하지만 책에서처럼 자기 실수에 큰소리치는 어른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꿈꾸는 인생의 모습이 서로 달라, 다른 사람이 작성한 인생의 완벽한 설명서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결국 내 인생의 설명서는 나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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