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무 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올 May 17. 2018

재능에서 그릿, 자가당착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 GRIT>


 신은 죽었다.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언급한, 유명한 이 말의 저의는 분명치 않다. 이 세상의 모든 신이 한 번에 죽었을 리는 만무하므로, 표면적인 뜻이 아닌 내포한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릿>에서 앤젤라 더크워스는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을 이른바 '재능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풀이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열풍의 끝을 알 수 없는, 우리나라의 과열된 성적 만능주의 풍토에서 '신'의 존재감은 가히 압도적이다. 자녀를 일류 대학을 보내고 싶은 부모들은 온갖 신들에게 그들의 자녀를 바친다. 언어, 수학, 외국어의 신 등 갖갖의 신들은 신도가 가진 열렬한 소망에 부응하기 위하여 신성(神性) 전수에 지성으로 열심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예전부터 '강남 엄마 따라잡기', '공부의 신'과 같은 TV 드라마가 방영될 정도로 재능 시대를 온몸으로 앓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도 공부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웹사이트 공신닷컴 대표인 강성태 씨가 TV 화면과 웹사이트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공부의 신'으로 부르며 공부 비법을 설파하는데, 그것이 대중의 성원 속에서 화려하게 비추어지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다른 한 편에선, 한 초등학생이 성적을 비관하며 생을 스스로 끊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이 시대의 재능 발굴을 위한 몸부림이 극에 달했음을 단번에 보여준다. 공부라는 재능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을 확인하는 절차는 이미 목숨을 건 전투가 되어버린 결과이다. 또한, 굳이 공부가 아니더라도 K팝스타, 슈퍼스타K, 쇼미더머니 등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 시대에, 우리 세대는 무엇이든 '잘하면 장땡'이라는 재능 만능주의의 중심에 있다.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 가선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온다. 결국 이 열등생이 되기 위하여 꾸준히 고생해온 셈이다. 차라리 천재이었을 때 삼십 리 산골짝으로 들어가서 땔나무꾼이 되었던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천재라고 하는 화려한 단어가 결국 촌놈들의 무식한 소견에서 나온 허사였음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못된다.'
 
- 서정인의 소설 <강>


 '잘하는 사람' 만들기와 같은 재능 발굴 노력 혹은 프로젝트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테다. 그러나 그보단 폐해가 적지 않다고 <그릿>의 저자는 말한다. 먼저, 재능이 없는 다수를 소외한다. 세상에 재능을 가진 사람은 소수이다. 많은 사람이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재능으로 불릴 이유도 없기 때문에 자명하다. 이에 따라 자연히 소수는 '어떠한' 능력을 가진 신처럼 여겨지고, 재능이 없는 다수는 소외된다. 다수의 사람들은 재능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스스로의 계발에 손을 놓게 된다. 몇 년간 잡아온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수학책을 붙잡는 것도, 자라난 몸이 적합지 않아 좋아하는 수영을 그만두는 것도 그런 예다. (그러나 수영 천재라 불리는 펠프스는 수영에 적합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피해는 소수의 재능 있는 사람으로 불리는 이들에게도 돌아간다. 남들보다 훌륭한 재능을 보여주는 그들은 '신', '천재' 등 가뿐한 몇 단어로 요약될 뿐. 피와 땀이 섞인 인고의 시간은 납작하게 눌린 평평한 세상 속으로 잊힌다.


 하지만 세상은 그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박지성, 김연아, 펠프스, 칸트, 코페르니쿠스 등과 같이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으로 빛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숱한 연습에 짓물린 발, 갈라진 굳은살로 피가 고인 손, 이런 것들이야 말로 재능이라는 말 뒤에 감추어진 진짜 성공의 요소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릿>은 재능이라는 우상(偶像)은 더 이상 우리들에게 신(神)이 되어선 안된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숭배해온 재능의 이면에는 그릿(열정적 끈기)이 있으며, 우리는 그릿을 키워야 한다고.


 그러나 '열심히 하고 싶은데 안되는 걸 어쩌라고'하고 반문할 수 있다. 열정과 끈기를 붙들고 있는 일은 <그릿>의 저자에 따르면 자기 의지로 채워나가야하는 부분일 것이다.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릿(열정적 끈기)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마이클 샌델은 본인의 가장 유명한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후반부에서 '노력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닌 것마저 재능'이라고 말한다. 즉, 노력할 수 있는 의지도 타고나는 재능(지적 능력과 같이 정신적 능력 중의 하나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릿>도 재능을 숭상하는 신전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입사원의 두려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