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올 Nov 07. 2019

근황

 이어령의 인터뷰를 읽었다. 거기에 물고기 얘기가 있었다. 물고기가 바다를 알게 되는 때는 바다 밖으로 나올 때라는 이야기였다. 그 사람 말로는 삶도 그러하단다. 죽기 전까지 누가 삶을 제대로 알랴.


 한 번 달리기 시작한 자전거는 관성이 있어 그다지 페달을 세게 밟지 않아도 앞으로 나간다. 그런 건 알기 쉽다. 무릎과 허벅지가 먼저 알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다. 그런 게 주변에도 정말 많다. 문득 삶이 그렇다고 느낀다. 서글픈 일이다. 살던 대로 살다 보니 그렇게 방향도 없이 앞으로만 내달리는 기분이 든다. 마음에도 무릎과 허벅지가 있어 '지금은 네 힘으로 가는 게 아니야' 같은 인식을 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 내 삶은 이 지경일 것이다. 작년과 내 삶은 똑같고, 십 년 전과 그리고 이십 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항상 같은 모습과 생각으로 오래전부터 살아왔고 아니 살아지고 있는, 그냥 그렇게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자전거처럼.


 그 여정에 몇몇의 좋은 사람들도 있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그렇더라도 삶이라는 자전거는 일인용인지라 그뿐이다. '좋은 사람이었지.'라는 말로 끝. 어려서부터 나는 이를 직감적으로 느끼고 두려워하고 있었던 걸까, 괜히 이인용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좋아 보이고 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앞으로 뒤로 나누는 정겨움이 부럽고 언젠가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자전거는 본디 일인용으로 만들어진 물건임을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알았다.


 알고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몰랐던 것들이 많다. 한 때는 손바닥 안처럼 훤히 느껴지던 친구의 마음이,  알아차릴 새도 없이 꽉 쥔 주먹으로 변해 각을 세운 적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똑같이 주먹을 쥐고 '그럼 우리 싸우자'하다가 얼굴을 붉히고 뒤돌아 멀어졌었다. 내가 그 사람에게서 느낀 게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먹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섣부른 나는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살아온 관성 탓에 쉽지 않다. 이런 식으로, 그저 그런 사람으로 휙 바다 밖으로 밀려날까 두렵다. 그리고 저절로 돌아가는 자전거 페달 위에 앉아있는 다른 이들을 자주 본다. 페달이 집어삼킬듯 고약한 소리를 내며 방향 없이 앞으로만 향하는 것을 그들은 알까.


 혹여 내 것도 그런가 하고 자꾸만 나는 아래를 본다. 그러나 알 수 없다, 이 또한 내 관성인지 아닌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보여주는 페미니즘, 말하는 페미니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