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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Feb 01. 2017

우린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 / 어쩌면 우린, 아주 천천히

그 순간 영원이나 마음, 영혼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 13년간 살아온 모든 것을 함께 나눠 가졌다고 느꼈고

그리고 다음 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퍼졌다.

아카리의 그 따스함을, 그 영혼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어디로 가져가면 좋을지 그걸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1.

 첫 키스의 그 날, 타카키는 아카리의 영혼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것은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 한다는 것은 정말로 그 사람의 영혼을 받아 그 사람으로서 사는 것은 아닐까. 영원 같은 시간을 건너, 악의에 찬 불운을 지나 타카키는 아카리를 만났다. 눈 내린 마을, 기차역 대합실의 아카리는 소복이 눈 쌓인 마을이 어두워 보일 만큼 순수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기차역을, 타카키 하나만으로 버텨낸 아카리의 순수함을 비길 것이 있을까. 타카키와 아카리는 가슴에 묻고 묻어도 덮이지 않을 만남을 끝내 이루었다. 그리고 영혼을 나누었다.

 첫눈이 내리던 밤이었을까. 아니 내리지 않아도 내렸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내렸다고 믿을 것이다. 내 영혼이나 마음, 영원 어떤 말로 표현해야 될지 모를 무언가가 내 머리를 울리고 그녀에게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것이 다시 내 머리를 울리고 마음인지 영원인지 모를 그것이 머물렀던 곳에 다시 내려와 앉았다. 유난히 춥다던 그 해 겨울, 바짝 말라비틀어진 영혼을 한 움큼 나누어가졌다. 내 영혼이 너에게 닿았을까, 네 영혼은 내게 닿고 넘쳐 이미 나를 물리치고 네가 되었는데. 내 영혼이 네 조금이라도 되지 않으면 섭섭할 것도 같았다. 아카리의 따스함은 타카키 안에서, 가슴 어딘가에서 서서히,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슬퍼질만큼 감당할 수 없이. 누군가의 첫 눈이 내리던 그날처럼.



내가 타카키에게 바라는 것은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분명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여전히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카키만을 생각하면서...... 나는 잠이 들었다.

2.

 <초속 5센티미터>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사랑은 무언가 가슴 아프다. 동감독 작품인 영화 <너의 이름은.> 속 미츠하와 타키의 사랑 역시 으레 고백하고 사귀는 그런 사랑은 아니다. 간절함의 기나긴 터널 속 어둠에서 한 줄기 빛을 쫓아 맺게 되는 사랑. 이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지난 첫사랑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신카이 마코토의 고질적인 취향 탓인지, 전작인 <초속 5센티미터> 역시 그러하다. 다른 점은, 초속 5센티미터는 첫사랑의 터널을 지나 온 이들에게 자꾸 뒤돌아 그때 보았던 빛을 찾게 한다. 터널 속에 빛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첫사랑이요? 첫사랑인지 짝사랑인지, 풋풋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그다지 머리에 남는 건 없다. 어렴풋 그때의 이미지만이 몇 개 떠오를 뿐. 터널 속에 우리는 한줄기 빛을 보았다. 우리가 아니어도 네 옆에 있으면, 나는 빛이 보였다. 너와 마주 보고 있다고 믿었지만, 뒷모습일지도 모르는 그 모습이 그땐 어찌나 좋았는지. 세상엔 둘로 아니 너로 가득 차, 다른 누군가는 모두 조명 밖으로 물러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카나에의 터널은, 타카키로 가득 빛나 눈이 부시고 가슴이 무너졌을 것이다. 무너져 눈물 흘릴지언정, 결국엔 타카키 역시 누군가의 카나에였고, 카나에 역시 누군가의 타카키였다. 어쩌면 우린 모두, 무너져 눈물을 흘려야할지도 모른다.



3.

 우리는 이제껏, 언젠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그것이 짝사랑일지라도.

 영혼을 수만 번 쪼개 언젠가 누군가에게 건넸고 받았다.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에서 수만 번 빛이 되고 빛에 무너졌다. 쪼개고 쪼개진, 닳고 닳아 나는 이제야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의자에 앉아있다. 영혼을 건네줄, 받을 터널의 빛인 너를 기다리며. 그리곤 다시 의자에 앉는다. 떨어진 벚꽃에 너를 저기 깊은 곳 어디에서 끌어올려 다시 추모하고, 그리고 추모 받을 나를 기리며.


https://youtu.be/Br7sY5vwBQk 

어떻게 하죠

우리는 서로

아파하네요

멀어지네요

어떻게 하죠

우리는 점점 더

슬퍼하네요

멀어지네요

어쩌면 우린

사랑이 아닌

집착이었을까요

어쩌면 우린

사랑이 아닌

욕심이었나 봐요

어떻게 하죠

우리는 서로

침묵하네요

멀어지네요

어쩌면 우린

사랑이 아닌

집착이었을까요

어쩌면 우린

사랑이 아닌

욕심이었나 봐요

어쩌면 우린

운명이 아닌

우연이었을까요

아마도 우린

영원이 아닌

여기 까진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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