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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Apr 30. 2017

욕망의 평행선에서

영화 <화장>, 임권택 감독


일명 '은교류'의 영화, 화장

 안성기 주연의 영화 '화장'을 보았다. 임권택 감독이 연출해서 기대가 더 컸다.는 개뿔 임권택은 예전에 쿵쿵따 게임에서 몇번 쳐봤을 뿐,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저 명감독 중에 하나겠거니 어딘가 주워들어 본 것도 같다. 처음부터 화장을 보려던 의도도 아니다. 위플래쉬를 보러 영화관에 갔지만 당일 상영관이 없어서 그냥 화장을 보았다. 아무 이유 없이 본 건 아니다. 박해일 주연의 영화 '은교'를 본 이후, 나 스스로 나름 '은교물' 혹은 '은교류'의 예술작품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 계기로 영화 은교의 원작인 박범신이 쓴 소설 '은교'를 보았다. 관심은 이어져 내가 화장을 보는데에 이르렀다.  


화장의 의미

 제목부터 나에게 적잖은 혼란을 주었다. 화장이 얼굴을 곱게 꾸민다는 화장(化粧)인지 죽은 사람의 몸을 불에 태워 제사를 지낸다는 화장(火葬)인지. 영화의 다른 이름이 Revivre인 것을 보면 그 혼란이 의도적인 것이 분명하다. Revivre는 프랑스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이다. 또한 프랑스 말 그대로는 소생하다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선 죽은 이가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죽은 이의 몸을 태웠다. 제목은 고의적인 장치다. 



 제목대로 내용은 양면을 갖고 있다. 그 양면의 대표가 각각 추은주, 오정석의 아내이다. 추은주는 주인공인 오정석(안성기)이 상무로 있는 화장품 회사의 신입사원이다. 은주는 사원들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이다. 젊다. 정석은 은주에게 끌린다. 사랑이라하기엔 민망한, 그런거. 돌아서면 떠오르고, 앞에 서면 신경쓰이는. 정석은 그게 여간 거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병상에 있는 아내를 둔 그에게는 더욱. 여기까지가 극 중에 표현된 은주와 정석의 관계이다. 정석은 이러면 안되지. 안되지하지만 오히려 금기는 욕망을 낳을 뿐이다. 해서는 안되는 것을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을리가 없다. 그냥 해버리면 되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은주를 욕망하는 정석은 마치 젊음의 봄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딸보다 어릴지모를 신입사원의 싱그러운 젊음을 보면서 가슴 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석은 장년층 남성들이 더러 겪는 전립선비대증으로 오줌 하나 제대로 누지 못한다. 지나가는 개도 전봇대에 시원하게 일을 보거늘. 젊음의 한 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그녀가 그의 가슴을 뛰게 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그를 젊게 만들 수 있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그에게도 드디어 화장(化粧)이 찾아왔다. 



 한편, 아내는 과거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재발한 아내는 입원하고 정석은 밤을 새서 간호한다. 병원과 회사를 반복에 반복. 그의 정성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딸 아이를 시집보낼 나이까지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았기에. 그래도 부인할 수 없는 건 그와 아내, 딸 모두 그 결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내는 분명 죽을 것이다. 그와 가족들에게 병원에서 일어나는 아내의 고통, 의료진의 억제, 치료, 주사 등의 일련의 과정은 그저 화장(火葬)의 일환이다. 관에 불을 붙이는 중이다. 틱틱, 잘 켜지지 않는 라이터를 손에 쥐고. 뻑뻑한 엄지손가락으로 부싯돌을 천천히. 천천히 그녀의 관은 던져지고 있다.



맞닿는 욕망의 평행선

 여기까지 화장이 가진 두가지 의미이다. 마치 영화는 두 영화로 쪼갤 수 있을 것처럼, 서로 다른 영화인 것 처럼 두 장면을 대비해서 보여준다. 접점이란 영원히 없을 듯이. 마침내 두 영화는 우연히 필연적으로 맞닿는다. 정석의 추천서를 통해 은주는 중국회사로 이직한다. 은주는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정석의 별장을 찾는다. 정석은 그런 그녀가 부담스럽다. 그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석은 은주에게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괜히 부담스럽다. 아내를 잃은 뒤 그녀를 이렇게 좋아해도 되나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것만 같다. 그리고 별장은 은주를 위한 곳이 아니다. 그 곳은 그와 아내가 즐겨 여가를 즐기던, 사랑을 나누던 그런 곳이다. 아내의 사랑이 깃든 별장과 은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정석은 차마 은주를 그 곳에서 맞이하지 못한다. 그저 은주가 선물로 주었던 종류의, 그의 아내가 준 포도주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집을 나온다. 과일과 잔 두개를 놓고 마치 그녀를 맞이하는 것처럼. 그녀를 맞이할 수도 맞이하지 않을 수 없는 그는 미친 듯 슬리퍼를 끌고 거리를 배회한다.



 정석은 마지막으로 아내가 키우던 개 '보리'를 안락사한다. 주인인 아내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의사는 직접 키우거나 입양을 권유하지만 어떤 설득도 정석을 회유할 수 없다. 이 장면은 마치 재혼, 혹은 다른 사랑(화장化粧)을 거부하는 정석이 겹쳐져 보인다. 한편, 정석은 사람으로 환생하라는 뜻을 가진 이름 '보리'를 안락사하면서 화장(火葬)의 길을 걷는다.



 영화 '화장'은 내용은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적절한 장치와 내용 구성이 지루하지 않았다. 어색한 두 부분(화장과 화장)이 교차해서 보여지는 것, 화장품 광고를 고르는 것 역시 화장과 화장을 선택하는 문제 등등. 아쉬웠던 점은 연출이다. 임권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되고 유명한 감독이라는 건 안다. 그래서일까 올드한 연출이 약간 촌스러웠다. 정석이 지방에 내려가 무용을 감상하는 장면에서 은주를 떠올리는 연출은 정말 올드했다. 내용 구성이 좋았던 반면 내용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화장(火葬)을  선택하는 정석은 유교문화, 한국적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과 같아 답답하다. 혹은 그렇게 밖에 영화를 그려낼 수 밖에 없는 한국 관객의 의식이 그런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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