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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Apr 05. 2017

선녀와 나, 무튼

영화 <패신저스 passengers 2016>

스포 자제 하였음.


 영화 <패신저스>는  제니퍼 로렌스와 크리스 프랫 주연으로 유명해진 영화죠. 둘 다 영화계에서는 엄청난 거물인데요. 과연 영화 내용이 기대에 부응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하다'입니다.


 영화는 다른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을 배경으로 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는 우주선을 벗어나지 못하죠. 아무래도 비싼 배우들 탓이었을까요. 우주선 내부만 주구장창 나옵니다.


 120년이 걸리는 긴긴 여정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동면기에 듭니다. 냉동인간으로 120년을 버티면 새로운 곳에 정착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짐 프레스턴(크리스 프랫이 연기한)은 기기 고장으로, 도착을 90년이나 남겨두고 깨어나게 됩니다. 동면기가 끝난 짐은 이제 늙어가는 것이죠. 과연 90년을 버텨서 새로운 곳까지 갈 수나 있을까요. 가더라도 한 110살은 될 것입니다. 다시 잠에 들 수 없던 짐은 2년을 혼자 지내다, 자고 있는 오로라 레인(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을 우연히 보게 됩니다. 딱, 짐의 스타일인가 봅니다.

그렇죠. 사실 오로라는 누가 봐도 아름답습니다. 어느 누가 봐도 가만 둘리가 없죠. 짐은 그녀를 깨우기로 결심합니다. 같이 늙어 죽자는 거죠. 사실 그렇기 때문에, 짐은 2년 동안 아무도 깨우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외로워 죽을지언정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물론, 오로라는 예외입니다. (예쁜게 죄?)

 짐은 오로라를 억지로 깨우고 맙니다. 어때요. 이해할만한가요. 이쯤에서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그림과 마주합니다.


나무꾼은 나무를 하다가 숲 속에서 도망치는 사슴을 만나게 된다. 사슴은 사냥꾼이 쫓아오고 있으니 자신을 숨겨달라고 말한다. 말하는 사슴을 신기하게 여긴 나무꾼은 사슴을 숨겨주고 뒤쫓아 온 사냥꾼은 다른 곳으로 보내서 구해준다.
 사슴은 은혜를 갚겠다고 하면서, 나무꾼에게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목욕하는 선녀탕이라는 샘을 가르쳐준 다음 선녀를 아내로 삼는 법을 나무꾼에게 알려준다. 나무꾼은 사슴이 가르쳐준 때에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있는 샘으로 갔더니 과연,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날개옷을 벗고 선녀탕에서 목욕을 하자 나무꾼은 사슴이 가르쳐준 대로 날개옷을 하나 훔쳤다. 날개옷이 없어진 탓에 한 명의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으며 다른 선녀들은 날개옷이 없는 선녀를 내버려두고 간다. 나무꾼이 선녀에게 자신의 부인이 되어달라고 하자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게 된 선녀는 할 수 없이 나무꾼의 아내가 된다.
 이후는 버전이 좀 나뉘는데 하나는 선녀가 아이를 세 명 낳았을 때쯤, 나무꾼이 선녀의 애원에 못 이겨서 날개옷을 돌려주자 선녀는 애 둘은 팔로 들고 애 하나는 등에 업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 나무위키(링크)


 어렸을 때 접했던 전래동화, 나무꾼과 선녀. 선녀와 나무꾼입니다. 선녀가 떠나 홀아비가 된 나무꾼이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예요. 그러나 지금은 마지못해 남게 된 선녀가 불쌍합니다. 선녀는 왜, 아무 죄도 없이, 눈먼 음탕함의 피해자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우리는 살면서 많은 '눈먼 악의'를 마주해왔습니다. 잊을만하면 신문에 등장하는 묻지마 살인사건, 불특정 다수로 하는 공공시설 방화범죄 등이 그렇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서초동_화장실_살인사건


 선녀는 무참히 희생됩니다. 눈먼 악의에 끌려가 아이 셋을 낳고, 온갖 살림을 도맡습니다. 폭력에 대한 물음 한 음절도 뱉을 수 없는 피해자는 갈기갈기 찢기는 거죠.



 짐은 말해요. 너무 외로워서 그랬다고.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고. 짐은 구구절절하게 오로라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합니다. 방법도 가지가지였죠. 하지만 오로라는 쉬이 그의 사연을 받아들이지 않죠. 사실, 이유가 합당하다고 해서 폭력이 합당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신질환이 있어서 사람을 죽였다? 너무너무 바빠서 과속을 해서 뺑소니를 했다? 어떤 이유로든 폭력을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그러면 짐은 평생의 죄인으로 살아야 할까요. 대답은 '네'입니다. 오로라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내가 빌었잖아. 용서해줘.' 따위는 사죄가 아니에요. 용서를 구했으나 받을 수 없다면, 가해자는 언제나 죄인인거죠. 영화는 영영 짐을 죄책감의 감옥에 무기징역수로 남게 할 것만 같았어요. 사실 저도 그러길 바랐고요. 왜냐하면, 짐이 아는 건 지 뿐이거든요. 아무튼, 지 밖에 몰라. 감독은 천사인가 봅니다. 짐을 용서하기로 해요.


 그게 억지인지 영화는 급속도로 식어갑니다. 짐과 오로라 사이에 고조되었던 긴장감을 그렇게 쉽게도 풀어버리다니. 많은 재료들이 있었어요. 혼자 남은 짐이 과연 살 수 있었을까. 개인과 사회의 문제. 나와 타자의 문제. 뭐 어찌저찌 해결했어요. 오로라의 선녀옷을 훔치면서요! 그렇다면, 용서와 사죄의 관계에서의 긴장감을 더 극적으로 그려냈어야했는데. 휴, 공든 탑을 알아서 무너뜨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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