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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Apr 14. 2017

분실

상실감을 메우는 것

 모자를 잃어버렸다. 처음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는 유치원생때 고모를 보러가던 시내버스 안이었던 것 같다. 공룡알과 공룡으로 변신 가능한 장남감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잃어버린 것을 알게되었는데, 그날은 고모고 뭐고 하루종일 엄마 옆에서 잡도리했다. 상실은 처음 그렇게 요란하게 찾아왔다. 있었던 자리에 습관처럼 잡히는 물건이 없다는 것, 바지 주머니엔 이제 내 살 말고는 만져지는게 없다는 것. 어린 나이에 그건 견디기 힘든 것이었나. 그때부터 내 것에 악착 떨듯 집착하였던 것 같다. 샤프 하나를 잃어버려 빈 강의실을 두 시간 동안 몸 내리깔고 훑었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한동안은 좋아하는 물건을 손에 항상 쥐고 다녔다.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하나 정해놓고, 손에서 놓질 않았다. 그것이 도망갈까 그리도 무서웠나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나서는 손에 쥐고 다니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라고 정해놓는 경우도 없었지만. 하지만, 상실은 방심을 가만보지 않고 찾아왔다. 대학교 입학 선물로 엄마가 준 지갑을 그만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날 하루 내내, 단과대 건물을 들쑤셨던 것 같다. 그날 다녔던 길을 복기하면서 시선 닿는 곳이라면 화장실, 쓰레기통 가리지 않고 뒤졌다. 혹시라도 현금을 빼고 쓰레기통에 넣진 않았을까, 제발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무런 성과없이 집에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아 다시 그 상실을 돌이켰다. 처음엔 상실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내가 다닌 동선에 없었다면 누군가 집어갔을 거라고, 얼굴 없는 도둑놈을 욕했다. 분노는 금방 자책으로 모습을 바꿨다. 자기 물건 하나 간수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자책은 미안함이 되었다. 얼마 안되는 시간, 바보 같은 주인 만나서 수고 많이 했다고 그렇게 보내주자 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전화가 오고 나는 지갑을 다시 찾게되었다.


 얼마전엔 모자를 잃어버렸다. 버스에 놓고 내린 것이다. 학교도 아닌 시외버스에. 지갑을 잃어버렸을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또 빠르게 흘렀다. 분노, 자책 그리고 미안함. 미안한 마음에, 찾기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어, 버스 회사에 전화를 했다. 버스 회사는 터미널에 전화하라고 했다. 터미널은 버스 청소 용역 사무실에 전화하라고 했다. 용역 사무실은 근로자 사무실에 전화하라고 했다. 마침내 근로자 아줌마는 내 모자를 잘 간수하고 있으니 가져가라했다. 잃어버렸던 모자를 다시 손에 쥔 나는 정말이지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제, 나는 다시 그 모자를 잃어버렸다. 취객의 객기로는 모자가 있을만한 곳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나를 한껏 취하게한 술집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했다.


 우여곡절을 겪어온 모자가 이제는, 정말 이제는 떠난 것이다. 회자정리라던가. 왠지 모르게 이번엔 후련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우리의 인연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도 내가 싫었구나 싶기도 하고. (본인이 잃어버리고 모자 탓을 하는 내가 우습다.)


 근무하는 지방에서 본가로, 본가에서 지방으로 가는 고속열차 창문엔 종종 익숙한 나무들이 삭삭 지나간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저 나무만큼 많이, 빨리 지나갔었다. 어떤 아름다운 나무는 다시 내 풍경을 밝히기도 했지만, 어떤 그리운 나무는 상경하는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볼 수 없었다. 그리운 나무를 마음에 그리면서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봐도, 다시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생각해보면 눈 깜짝할 새로 지나가는 게 열차고, 삶인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고속열차 창밖의 풍경처럼 지나갔었다. 돌이키며 미어지는 가슴부여 잡기보단, 네 나무 서있던 그 자리에서 좋은 햇살과 상쾌한 비 맞으면서 살아줬으면. 행복했으면. 잃어버린 모자가 누군가의 머리 위를 환히 밝혀줬으면. 안녕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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