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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May 20. 2017

줄곧 철학을 하고 싶었다.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메두사호의 뗏목' - 테오도르 제리코, 1819년작


'메두사호의 뗏목'(제리코)에 대해,

 그러나 문제는 배에 있던 구명보트에는 250명밖에 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400여 명이었기 때문에 그 중 150명 정도가 침몰하는 배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논의가 오가던 중 배에 있는 나무를 활용해 뗏목을 짓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는 그대로 실행에 옮겨졌다. 가로 7미터, 세로 20미터의 뗏목이 완성되자, 선장과 그 일행은 선원과 이주민들을 대부분 뗏목으로 내몬 채 정작 자신들은 구명보트로 향했다.
 이렇게 다급하게 만든 뗏목이 위험천만해 보였는지 17명이나 되는 선원들은 그냥 배에 남아있기를 택했고, 결국 이들을 제외한 총 147명이 뗏목에 오르게 되었다. 한편 구명보트에 탑승한 선장 일행은 대부분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당시 세네갈 총독으로 임명된 슈말츠(Julien-Désiré Schmaltz)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장은 모두가 육지에 안전히 도착할 것이라고 뗏목에 탄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총 6대의 구명보트가 서로 호송대를 이루어 뗏목을 끌어주겠다는 것이 선장의 굳은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상황이 어수선한 틈을 타 구명보트에 탄 누군가가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뗏목은 거친 바다 위에 홀로 남겨졌다. -오마이뉴스(링크) (뒤에 이어서)


 '줄곧 철학을 하고 싶었다.' 이 문장을 하나 적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말 오랜 시간이. 줄곧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끝내 난동을 부렸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뛰쳐나온 것이다. 줄곧은 온종일 답답했던 모양이다. 줄곧은 자기가 어디에라도 적히길 바랐다. 나는 어디에 그걸 적을지 몰라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를 어지럽게 찾아다녔다. 문장과 단어 속에서 '줄곧'을 찾다가 언제는 길을 잃어, 넋이 나간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짓을 되풀이하다가 이리 오래 걸렸다. 줄곧, 줄곧.

 왜 하필 줄곧이라는 단어였을까. 어쩌면 두 글자를 핑계로 내 삶의 이유를 묻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라는 어둡고 음침한 녀석이 별안간 내 멱살을 끌고 나를 생에 던져놓았을진대, 그 이유를 숨죽여 조용히 캐묻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엄마는 그냥 남들처럼 남들만큼만 평범하게 살자고 했다. 평범하게. 나도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삶엔 부침(浮沈)이 참으로 많았다. 구름 한 점 범접하지 않는 가을 하늘을 한아름 품은 호수에, 몸을 담가 몸을 잔잔히 띄워놓자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삶이었는데, 지독한 삶은 그러나 유독 나에게만 자신의 높낮이를, 시야가 닿지 않는 넓이를 자랑하는 것만 같았다. 언제는 저 높은 곳에 올려놓곤 위태위태한 나를 놀리다가도, 언제는 숨 하나 통하지 않는 심해 바닥에 가둬 황황한 나를 비웃기도 하였다. 허리춤에 끈 하나 매고, 잔잔한 호수가 아닌 망망한 대해에 머리만 내놓고 고작 부유하는 것이 삶이었다. 몸을 비틀어 허우적대도 흔적도 없는 대해의 끝에 고함을 질러봐도 구명보트는, 올 리가 없었다. 대신 파도, 태풍과 같은 삶의 요동 그리고 메스꺼움이었다. 구원이 아니었다. 나는 삶의 한가운데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줄곧, 나는 무엇을 바라 이 차갑고 끝없는 삶에 부유하는가. 정해진 이유가 없다면, 내가 그 이유를 정해볼 수도 있는 일이다. 와중에 철학이 눈에 들어왔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와 같은 생존전략 가이드북이 삶에도 있다면 그건 철학이라고, 나는 마치 구명튜브를 던져 받은 조난자처럼 무작정 그곳으로 헤엄쳤다. 영법은 중요하지 않았다. 살고만 싶었다. 관련된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시도해보았다. 책을 읽었고, 강의를 들었고, 토론을 했고, 교수님을 쫓아다녔다. 내 몸 같이 익숙해져서 이젠 삶의 높낮이도 잔잔해진 느낌이, 그리고 조만간 폭풍이 지나가고 가을 하늘이 나를 품어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들었다.


 철학한다는 그 젊은이는 칸트 얘기를 꺼냈다. 나는 어지러웠다. 술을 많이 먹은 탓도 아니고, 잠을 못 잔 탓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칸트가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인 것도 아니었다. 어지러웠지만 묻는 말엔 순순히 대답하였다. 그러다 보니 칸트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칸트도 꽤나 좋은 사람이구나 정도의 감상이 마다할 이유 없이 떠올랐다. 다른 감상은 없었다. 이번엔 상대방이 인식론 얘기를 꺼냈다. 어지러웠다. 불순하지만 온당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입 주변에 잠시 머물렀다. 나는 그것을 과감히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뱃속 깊은 곳 어딘가로 처박았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순순히 대답하였다. 그러다 보니 인식론을 좋아하진 않지만 인식론이 꽤나 좋은 이론이구나 정도의 가벼운 감상이 떠올랐다. 그 후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간단한 감상만 남았다. 칸트는 좋은 사람이고, 인식론은 좋은 이론이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는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앞에 이어서)오마이뉴스
 첫날 밤,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거나 파도에 떠내려가 목숨을 잃었고, 둘째 날 밤에는 엄청난 폭동이 일어나 무려 6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넷째 날에 이르자 뗏목에 남아있는 사람은 67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배고픔을 견딜 수 없었던 나머지 인육을 먹기 시작했다. 시체를 바로 뜯어먹는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인육을 얇게 썰어 밧줄에 걸어놓고 먹기 편하게 바람에 말렸다.


 구명튜브를 잡고 줄곧 버텨온 삶의 부침(浮沈)에, 구원인 줄 알았던 그 구명튜브라는 놈이 괜히 낯설어 보였다. 저도 참 좋아하는데 저랑은 맞지 않는 철학자예요라는 내 순순하고도 유순한 대답에, 학문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없겠냐는 무디고 눈먼 젊은이의 반응이 구명보트라고 부여잡고 있는 내 손을 무색하게 했다. 낯선, 철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필 그때였다. 불쑥, 못 보던 놈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이 망나니 같은 놈은 나와 젊은이의 대화 속에 떠도는 모든 문장과 낱말을 자와 칼을 대고 전부 자르고 나누었다. 철학, 사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사르트르, 인식론, 존재론, 의자, 나무, 책상, 소주, 맥주, 양주, 여자, 남자‥‥‥. 망나니 칼이 닿는 곳은 어디든 피가 흘렀다. 빨간색, 하얀색, 주황색, 검은색, 파란색, 파란색, 파란색, 파란색, 검은색, 검은. 겨우 붙잡고 있던 구명보트는 갈가리 찢겨나갔다. 낯선 건지 어떤 건지 다시 반성하기도 전에, 내 손에 악착같이 쥐어져 있던 그것은 가루가 되었다. 차갑고 어두운 삶의 대해(大海) 위에 보잘것없는 잔해가 되었다. 뭐라고요? 내 되물음조차 들릴 리 없었다. 이제는, 야이 씹새끼야.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다시 내놓으라고 악다구니를 질렀다. 이제 그만 닥치라는 듯 뒤따라온 파도는 평소대로 나를 집어삼켰고, 작은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바탕 시끄러운 푸닥거리가 끝나고 곰탕을 먹었다. 젯밥은 항상 맛이 없었다. 불어 터진 밥알을 쓸모없는 아가리에 욱여넣으면서 지나온 것을 떠올렸다. 그만 좀 설교하라고 울며불며 화내던 후배 녀석, 좋은 얘기 좀 해달라고 한 번 만나자는 친구들, 무슨 쓸데없는 말장난이냐며 그만 좀 하라는 아빠. 온갖 사람과 상황이 국밥 위에서 기름처럼 떴다가 가라앉기를 되풀이하였다. 무슨 말로, 어떤 문장이나 단어로 그것들을 모아잡아 구명튜브로 만들지 막막했다. 다시 삶은 나에게 자기의 높낮이를 일깨우려나보다. 잊었던 높이가, 깊이가 두려웠다.

 두려움은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의 깊이가 되어 어떤 다른 생각도 되뱉어주지 않았다. 줄곧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난 그냥 "줄곧 철학을 하고 싶었다." 다시 파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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