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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Jul 17. 2016

선악과가 떨어질 때

 주말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말 그대로 주마등 같이. 죽음보다 주마등 같은 내 주말이 드디어 끝났다. 나는 이제 주말 이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내가 되었다. 적어도 살 이유가 조금이라도 줄어든 것이다. 내 세상의 신은 이제 자유를 갈망하는 이브가 되었다. 선악과를 뺏기는 것은 정말이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신을 잃은 나는 이제 어느 신전에 엎드려 쓰라린 가슴을 위로받으랴.


 정말, 사실 그녀는 헤어지자라는 말을 꺼낸 것도 아니었다. 작은 의심이었다. 어렴풋이 이별의 언질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사실, 나 권태기인 것 같아.'라는 말이 이별통보는 아니다. 나아가서 '나 자유롭고 싶을 수도 있어.'라는 말은 이별통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별통보 아닌듯한 이별통보에, 아니 혹은 이별 상담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태어날 때부터 말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사람처럼 어떤 단어도 입밖에 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있었던 일이라면 그나마 편하기라도 했을까.


 음, 무슨 말로도 그녀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을 어떤 수로 막을 수 있는지. 엄두도 안 났고 오히려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 역시 같은 이유로 이별을 통보한 적이 있었으니. 음, 듣고만 있었다. 그러고는 이어서 내가 잘못했어, 없던 일로 해줘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씻어보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쓰라리기만 할 뿐 하나도 씻기지 않았다. 이미 내 가슴엔 내 몸보다 두꺼운 둘레의 못이 구멍을 남겨놓았다. 찬바람이 비웃으며 드나들기만 할 뿐이었다. '사랑? 웃기시네.' '네 사랑은 뭐 다른 줄 알았냐.' 항변할 말도 기운도 없었다. 나는 우주에 던져진 미아 같았다.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보다 깊은 어둠이었다.


 날짜가 바뀌고 편지를 하나 받았다. 내 사랑을 확인했다는 너. 모든 게 명확해진 너와는 반대로 나는 모호해졌다. 나는 네게 무엇일까.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돼야 할까. 네 의심은 네 마음을 떠나면서 확신을 남겼지만 내게 들어왔다. 나는 도대체 무슨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다시 생각해보면 너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의심을 확인하는 것에 잘못이 있을 리가 없다. 단지 확인에서 나는 이별을 보았고 그 이별이 너무나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워서 선 채로 떨기만 한 것이다. 예전 같이 찬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모르겠다. 단지 요시코가 된 기분이다. 아, 맑고 순수한 믿음은 죄의 원천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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