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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Aug 10. 2017

누군가의 해탈

1.

 머리 밀고 절이나 가야지. 내가 상원의 일기장에서 가장 많이 읽었던 말일 것이다. 그 일기장은 상원이 일부러 보여주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상원은 주말에 여유가 나면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핑계로 자기 자취집에 나를 꾀어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항상 재료가 없다며 혼자서 장을 보러 나가곤 했다. 그럴 때면 자신의 일기장을 보여주고라도 싶은 듯이, 일기장이 책상 위에 떡 하니 펼쳐져있었다. 그 역시 내가 상원의 집에 놀러 가는 이유였다.

 일기는 말수가 적은 주인이 답답한 모양인지, 대신 발벗고 나섰다. 정말이지 수다스러운 대변인이었다. 상원은 감정 표현 하나 서툰 묵묵한 사람이었는데, 펼쳐진 일기장 속에 그려진 그는 명배우였다. 분노면 분노, 슬픔이면 슬픔 그는 일기장 속에서만큼은 감정표현 하나는 제일가는 배우였다. 덕분에 일기라도 보면서 상원의 속마음을 알 수 있어서 그나마 콱 막힌 속을 풀 수 있었다. 워낙 말이 없는 그였다. 가끔은 일기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는, 상원이 이렇게까지 생각했었나싶어 금세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투정부린 날들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도 종종 나는 혹시 이중인격자를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상원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친구들은 그런 의뭉스러운 상원을 마뜩찮아했다. 정식이는 그런 겉과 속이 다른 놈 말고 멀쩡한 놈을 소개시켜줄테니 언제든 연락만하라고 하기도 했었다. 언제나 내 편일 것만 같았던 세희마저도 남자친구로 그렇게 말수가 적고 자기표현이 없는 애는 별로지 않냐고 이번만은 내 편을 들어줄 수 없겠다고 했다. 정작 상원은 내 주변에서 그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정말 속이 좋은건지.

 일기를 쓰는 남자는 흔치 않았고 그런 남자는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상원을 만나왔다.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상원이 나긋한 목소리로 나왔어하고 들어와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뚝딱뚝딱 만들어 줄 것이다. 묵묵히. 그런 상원이 좋았다. 말주변이 없어 얄밉다가도, 말없이도 다정한 그가 좋았다. 감자를 써는 그를 뒤에서 와락 안아줄만큼.


 그는 평소에 걱정도 참 많았다. 그렇게 걱정을 한데 모아 일기에 적는 것도 부족할 정도로. 그래서 이번엔 또 다른 해소법을 만들었다고 내게 자랑을 했다. 그건 고작 절에 가서 108배를 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사서 고생일 뿐인 일을 그는 잘도 했다. 언제는 108배의 의미를 내게 설교하기도 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로 시작한 대화는, 상원의 무릎을 걱정하는 나를 위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상원이 절에 다녀온 날이면 몸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계단에서 다리를 절뚝이는 상원을 보면 마음이 정말이지 편치 않았다. 그를 그렇게 만든 고민이라도 몰래 덜어줘야 그가 108배를 그칠 것 같아, 그런 이유에서라도 일기장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언제는 가만 보고있기에는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고민도 일기장에 적혀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로써는 앙증맞은 일이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연구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내게 부탁을 할지 말지 그것이 상원에게 대단히도 망설여지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굳이 묻지 않아도, '민희도 석사논문으로 바쁠텐데 어떻게 부탁을 해.’라는 식으로 상원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뻔히 알고 있었다. 내게 그런 부탁도 쉽게 하지 못하는 상원에게 섭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내 스스로 먼저 상원에게 내가 돕는 게 낫지 않겠냐는 식으로 일기장의 우는 소리를 줄여나가기로 했었다. 그러고 보면 상원은 일기장을 일부러 책상 위에 올려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든, 상원이 좀 더 행복했으면 했다.

 그가 말수도 없고 괜한 걱정이 많은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미안, 아직은 안돼'라며 내 제안을 번번히 거절하였는데, 나는 더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마음에 추석날 그의 본가를 찾아갔다. 명절때마다 받기만 하는 것이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 상원이 여자친구 민희예요. 어머니 정말 뵙고 싶었어요."

 "교회 다니니?"

 "아, 아니요."


 순간, 현관문이 쾅하고 닫혔고 집안에선 어머니의 큰소리가 났다. 영문을 몰라 계단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굳게 닫힌 철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원이 나왔다. '미안, 아직은 안되겠다'라고 하더니 그 길로 우린 서울로 올라갔다. 명절 탓인지 우리는 고속버스에서 따로 앉게되었고, 자연스레 상원의 어린시절을 상상할 수 있었다. 8시간이나 갇혀있던 버스에서 내려 상원의 손을 잡고 나서야, 그 손의 온기가 내 손을 데워 이내 뒤죽박죽이 된 내 머리를 이해시켰다.


 상원이 석사논문으로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즈음 상원은 잊혀질만하면 찾아오는 명사초청 강연이 아무 의미 없다고 종종 말했었다. 유명 정치인, 교수 등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오기도 했는데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곱씹어보면 다들 비슷한 얘기만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다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들이 남기고 간, 특별한 것 같으면서도 흔해빠져 비슷한 말들이 오히려 상원에게 약을 진탕 올린다고.  열심하면 됩니다. 최선을 다 하십시오. 자기가 정말 바라는 것을 찾으세요. 무엇이 열심인지, 어느 정도가 최선인지. 그런 걸 알면 이러고 있겠나. 막막한 심정은 다 떠나고 텅 비어있는 대강당에, 너덜너덜해진 상원을 헐어버린 걸레짝처럼 홀로 남겨놓기도 일수였다. 경비아저씨가 와서 거 누구요. 안 가요하면 그제야 휴 한숨 쉬고, 타는 듯한 속을 억지로 식히고 털래털래 연구실로 상원은 올라가야했지만.


  그날도 상원이 빈 대강당에서 홀로 시커멓게 탄 속을 식혀야했던 날이 될 수도 있었다. 대강당은 다른 날보다 유난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뭐 별거 있겠어. 어차피 그저 그런 강연일 것이라고 상원은 일찌감치 포기를 했다. 이젠 상원도 발에 차이듯 뻔한 강연들에 무뎌져, 단지 답답한 연구실을 잠시라도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재수가 없는 건지, 머리 식히러 온 그곳에서 시야에 가로막은 빽빽한 사람들 탓에 속이 턱 막힌 답답함까지 느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하는 게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싫어서 강연 날이면 맨 앞자리에 앉던 상원이었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앞자리마저 넘겨주고 뒷자리로 밀려나고야 말았다. 그리고 무릎 위엔 죄책감과 함께 가져온 전공서적까지. 그야말로 상원에겐 엉망진창인 날이었을 것이다.


 법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스님이 무대 뒤편에서 걸어 나왔다. 스님의 부리부리한 외모는 상원에게도 인상적이었다. 저 맨 뒷줄에 앉아있었지만 얼굴의 눈코입이 다 보일 정도였다. 스님이 한걸음만 떼었는데도, 대강당의 모든 사람들은 금세 알아보기라도 했는지 관객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스님은 가히 스타라 불릴만했다.


 “와아.”

 “저분이 그분 맞아?”

 “TV에 나오는 그 사람?”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타스님을 맞이했다 스님스타라는 말이 더 어울릴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환영이 익숙한 듯 스타스님은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들어 미소로 화답하였다. 왼손은 강단 위의 삐죽 튀어나온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외모와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큰스님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스타를 만나게 되어 반가운 사람들은 활기차게도 대답했다.


 이윽고 스님은 자연스럽게 강연을 이어나가다가 단상 아래에서 화분을 하나 꺼냈다. 상원이 보기에 화분의 꽃은 아름다웠지만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전공시험 범위도 외우기 바쁜 상원이었다. 다시 눈은 전공책을 향했다.


 “꽃 예쁩니까?”

 “네!” 강의실에선 대답도 없던 사람들이 인기스타 앞에서는 고분고분도 하다.

 “이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저마다의 방식으로 앉아서 대답한다. 물을 줘야 한다. 햇빛을 받아야 한다. 등등. 상원은 깊은 관심이 없었다. 귀만 강연에 열려 있었을 뿐, 눈은 전공서적에 붙어있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도 제가 버려줘서 맺어질 열매도 아닙니다. 제가 꽃잎을 뗀다고 해서 열매를 맺을까요. 아닙니다. 또한, 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릅니다. 버려야 얻을 수 있어요. 무엇이든 내려놓아야 다른 것을 들어 올릴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어요.”


 상원은 붙어있던 눈을 전공서적에서 잠깐 떼어 큰스님을 보았다. 스님은 미소 짓고 있었다. 상원이 근 몇 년간 본적 없는, 모진 세상을 모두 품을 수 있다는 듯한 미소. 두툼한 입술의 입 꼬리가 미묘하게 초승달을 그리고 있었고 눈썹 역시 어울리게 늘여졌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모나리자의 미소가 온화하다는데, 이보다 온화할까 싶었다. 눈은 얼마나 힘 있으면서도 부드러운지. 그리고 남자다운 두툼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잔잔한 음성은 전공책에 얽매여있던 상원을 사로잡았다.

 꽃잎을 버려야 얻어질 열매와 온화한 미소. 그는 열매와 미소 사이의 관계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마음속 깊은 곳, 구체적으로 피부로 시작되어 지방, 혈관 다발들, 내장들을 지나쳐 심장까지 쑤셔오는, 그 어떤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그 어떤 무언가가. 그리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 무엇이라도 깨달은 듯이 말이다. 마침, 깨닫기가 무섭게 질문이라도 생겼는지, 상원은 손을 번쩍 들었다. 무릎에 있던 전공책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손을 내렸다.


 큰스님과의 첫만남은 상원의 거침없는 출가, 이어지는 승려 생활까지 그 대막을 열어젖혔다. 남들이 좋다는 유명 대학교의 유망하다는 전공 대학원생 신분을 버리고 절로 향하게 된 것도, 저 큰스님 탓이었다.

상원이 출가한지는 벌써 수년이 넘었을 때인데도 상원은 아침 기상을 견뎌내기엔 아직도 괴롭다고 느꼈다. 새벽 3시, 누가 생각해도 한밤중일 시간이, 출가한 상원에게 이제는 눈을 떠야 할 시간인 것이다. 시체가 몸을 일으킨 듯 벌떡, 누인 몸을 일으켜 손이 닿을 위치에 있을 스위치를 어림짐작으로 눌러 불을 켠다. 눈이 시리지만 이것 말고는 일어날 다른 방도가 없다는 걸 안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반쯤 들어 올린 상원은 주전자를 찾아 컵에 물을 아무렇게나 흘려보낸다. 마른 목에 물 한 모금을 넘기면서 문득 속세의 바빴던 시절을 떠올리다 서둘러 컵을 내려놓는다. 아직은 뻑뻑한 목을 돌려 하얀 벽에 대뜸 자리 잡은, 옷걸이에 매달린 승복을 내려 몸에 걸친다. 습관처럼 법당으로 발길을 향한다.


 법당 한가운데 가장 먼저 자리 잡은 큰스님은 아침 예불에 늦는 법이 없었다. 마치 법당의 일부인 것처럼 항상 그 자리, 그곳에 있었다. 외모 또한 어찌나 절에 어울리는지 마치 탱화의 주인공 중 한 명 같기도 했다. 굵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에 시원한 콧날, 굵직한 턱선, 물론 큰스님이 법당의 일부인 것 같다는 것은 아침 예불의 법당이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큰스님이 있어야 비로소 아침 예불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법당이 있는가 하면, 해가 질 무렵의 법당엔 큰스님이 없어야 비로소 저녁 예불의 법당이었다. 큰스님은 이 절에 주지로 온 날부터 지금까지 거의 저녁예불에 참석하지 않았다. 저녁예불에 드물게 앉아있는 큰스님을 보고 있노라면, 상원은 지금이 아침 예불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큰스님은 예의 스타스님이기 때문이다.

 그런 스님과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어떤 승려가 마다하랴. 상원이 비구계를 받고 처음 승려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운 좋게도 상원에게 큰스님과 마주할 자리가 있었다. 처음 온 승려를 신경 써야 할 의무감이 들었는지 큰스님은 나서서 차담(茶啖) 자리를 마련하였다.

 상원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속세 시절부터 존경해마지않던 큰스님이 본인이 있게 될 절의 주지라니. 그리고 내게 차담을 마련해주시다니. 다음으로는 다른 이유였다. 유쾌하지만은 않은.


 “제가 큰스님이 계시는 이 절에 오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손에는 큰스님이 건넨 모과차가 손을 데우고 있었다. 따뜻했다. 큰스님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응, 그래 뭐 별일은 없고?”

 “예. 그…….”

 “그런데 차에 대해서 좀 아나.”

 “모과차 말입니까?” 그는 묻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지만 큰스님의 궁금증이 앞섰다. 큰스님은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 차 말고 타는 차 있지 않나. 자동차.”

 “아, 제가 면허가 없어서 차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 차를 좀 바꾸려고 하는데 뭐 모르면 할 수 없고.” 큰스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모과차만 몇 번 홀짝였다.

 상원의 눈에 큰스님이 타고 온 차는 아직도 충분히 좋아 보였다. 차 앞에 붙어있는 마크로 보아 국산차는 아닌 듯했다.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외제차였다. 스타스님은 역시 달라도 다른 건가. 상원은 큰스님의 얼굴에서 서늘한 이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외제차와 스타스님을 번갈아서 보았다. 외제차, 큰스님. 외제차, 비싼 자동차는 속세 사람을 위한 것만은 아니리라.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니는 큰스님이 빠르고 안전하게 가면 좋은 것 아니겠나 믿기로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이어서 큰스님은 강연 다닐 때 이야기를 했다. 어디 무슨 대학교에서의 일, 어디 무슨 절에서의 일, 어디 무슨 구민회관 등등. 무슨 놈의 강연이 이렇게 많고 에피소드는 이렇게 많은지. 상원은 머릿속에서 빙빙 돌다 이제는 입 언저리에서 맴도는 그 말을 뱉고 싶었지만, 마른 혀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 사이 큰스님은 ‘내가 저 차를 샀을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저기 저 찬바람을 쐬고 있는 본인의 애마가 겪어온 삶의 풍파에 대해서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어디 무슨 대학교에서 차를 타고 간 일로 시작해서 그렇고 그런.

 마침내 큰스님도 지겨웠는지 잠깐 말을 쉬었다가, 끝내려는지 물었다.


 “그래. 질문은?” 그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굴리던 질문을 뱉었다.

 “큰스님, 혹시 가르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상원은 내면 깊은 곳부터 온몸으로 전율했다. 그가 지구라면 내핵부터 외핵, 맨틀, 지각까지 부르르 떨다가 지구 전체가 뒤집혔을 것이다. 출가한다고 머리를 민 후로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하였는가. 큰스님과 마주하는 일. 뿐만 아니라 큰스님에게 승려로서 가르침을 받는 일이 벌써 찾아오게 될 줄이야. 그는 해탈 아니 적어도 승려로서 남들보다 무량수불토에 가까워지리라 기대했다. 어떤 승려가 극락을 마다할까.


 “그래. 말해봐.” 방금 전과는 달리 무성의해 보이는 큰스님의 대답이었지만, 상원은 이때다 싶어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었음에 틀림없었다.

 “불도(佛道)에 이르는 법이 따로 있습니까.” 그는 자못 큰스님의 답변을 기대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스님에게 그는 직접 화두(話頭)를 받을 수 있다니.

 “무슨 소리야.” 큰스님은 듣는 둥 마는 둥 귀를 후비적거렸다.

 “부처가 되는 길에 왕도가 있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는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

 “부처가 아니고 부처, 님!이지 무슨 부처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았어.” 큰스님은 다소 짜증이 난 말투로 대답했다. 그는 생각지 못한 큰스님의 반응에 어쩔 줄 몰랐다. 묻고 싶은 건 부처나 부처님 같이 음절 하나가 붙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불도에 이르는 법이었다.

 “불도에 이르는 데 부처와 부처님이 또 무슨 차이입니까.” 출가 전이나 후나 그는 진리 앞에서 항상 간절했다.

 “그럼 아버지랑 형이랑 같은 거냐, 참나.” 큰스님은 기분이 잔뜩 상해서 들고 있던 찻잔을 덩그러니 나무 탁자 위에 툭 하고 올려놓고 벌떡 일어나서 ‘승려라는 놈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자리를 떠났다.

 그는 큰스님이 있던 자리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먹다 만 모과차만 내려다보았다. 노란 모과 알갱이만 몇 개 떠다니고 있었다. 알갱이들이 자기네끼리 어울려 찻잔 안에 이는 파도에 떠밀리다 찻잔의 벽에 부딪히면 다시 한가운데로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유영(遊泳)하는 알갱이를 보면서 그는 대강당에서 들었던, 다른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비슷한, 어떠한 위로도 되지 않는 헛헛한 명사들의 강연이 떠올랐다. ‘열심히 사세요.’, ‘최선을 다 하세요.’ 따위의 흔해 빠진 조언으로 범벅된 그런 강연. 모과 알갱이는 작은 파도에 다시 몇 번은 그렇게 뒤집어졌다.

 그는 적잖이 놀랐다. 가족, 학교, 연인… 속세의 길을 버리고 출가를 하는 사람이 나름대로의 다짐과 목표가 있음은 분명하다. 상원은 자기식으로 생각하기로, 사람은 누구나에게 ‘불자(佛子)의 나라’가 있다고 믿었다. 이 순간 상원의 마음속에 세운 불자의 나라에 균열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큰스님이 이렇게 매정 할리 없다고 고개를 저어봤다. 그럴수록 해탈에 가장 가까울 것이라 여겼던 큰스님이 어쩌면 가장 멀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의구심까지 좌우로 젓는 머리통에 옮겨 붙었다. 그는 마음에 산불처럼 번지는 생각을 억지로 누르려 했다. 머릿속엔 온화한, 자비로운 부처 모습의 큰스님만 끝까지 남기고 싶었다.

 이후 상원은 도통 큰스님과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큰스님의 그림자라도 보는 것은 아침 예불이 전부였고, 아침 예불에 나온 큰스님은 정해진 말 이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 예불이 끝나기 무섭게 큰스님은 항상 외제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전에 타던 것과는 다른 외제차로.

 그의 행방에 관하여 실은 어떤 스님들도 딱히 궁금해하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TV를 켜면 알 수 있는 것이 큰스님의 행방이었다. 상원 역시 궁금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무의식적으로 큰스님을 피하고 있었다. 큰스님과의 사소한 마주침이 가슴 깊이 고이 모셔놓은 불자의 나라에 재난만 일으킬 것이라고 느낀 탓이다. 상원의 불자의 나라엔 어떤 불행한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새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절 안엔 온화하고 해탈한 큰스님과 불도를 닦는 승려들 따위의 고매한 것들만이 어울렸다. 상원에겐 단순히 롤모델이라 부르기엔, 큰스님은 그보다 무언가 심오한 어떤 것이었다.


 그렇다한들 큰스님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인 것을 부정할 순 없었다. 예불이든 참선이든  매사에 솔선수범이었고 하고, 그 모습에서 조금의 흐트러짐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른 승려들이 큰스님 한 마디에 천지가 개벽할 듯 소스라치며 놀라 바쁘게 움직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그런 스님이었다. 그러면서도 큰스님은 스타스님의 명색에 어울리게 수많은 강연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큰스님의 몸이 열 개라고 해도 다른 스님들은 그럴 만도 하지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그뿐이랴 주말이면 큰스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절까지 우글우글 밀려서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어느 누구라도 큰스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눈에 천덕꾸러기 같은 승려 하나하나에 관여하기엔 몸은 기실 하나뿐이었다. 모두 지도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구계를 이제야 받은 상원도 역시, 큰스님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상원은 나름의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석사 시절에 그는 다른 동기들보다 조금 뒤떨어지는 편이었다. 상원은 스스로 항상 머리가 나쁘다고 자조하곤 하였다. 그런 이유인지 그는 남들보다 갑절은 노력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을  한 두권이 아닌 전공서적 앞 페이지마다 다 꼼꼼히 적어놓을 만큼, 노력을 믿는 그의 의지는 정말이지 대단하였다. 상원이 굳이 그런 촌스러운 좌우명을 적지 않아도 그는 다른 동료 대학원생들이 보기에노력하는 사람이 분명하였다. 그것도 병적으로. 아무도 적지 않는 일기를 매일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적는 것도 그렇다. 심지어는, 차키를 꽂고 돌리는 교수님 옆에 붙어 서서 전공서적을 들이밀고 강의 내용을 묻기까지하니. 몇 학기가 흐른 후엔, 수업이 끝난 후 주차장은 상원의 주무대가 되었다.


 속세의 것을 다 끊고 들어가는 곳이 절이라지만 그 습성까지는 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동료 승려들과 참선을 하는 날이었다. 점심 공양 후 사찰의 태양은 부처님 미소처럼 온화하였고, 천고의 계절 가을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그 높이를 자랑하였다. 그 드높은 상쾌함이란 박하사탕을 온몸으로 머금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파리한 머리를 한 승려들의 마음은 싱숭생숭하기만 하였다.

 승려들 사이에서도 막내였던 상원은 대웅전 앞에 늘어선 좌선의 대열에서, 가장 뒷줄에서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조용히.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승려들은 조금씩 엉덩이를 달싹 달싹거렸다. 어떤 승려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골반이 쑤시거나 집중력이 조금 흐려진다거나 뭐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상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숨조차 쉬지 않는 것처럼. 이 정도에 그쳤다면, 상원은 단지 여타 승려보다 인내심이 조금 나은 승려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해가 기울던 즈음에, 구름 한 점 없던 가을의 빈 하늘에서 빗줄기가 툭 떨어졌다. 그리고 금세 구름이 모여들었다.


 "자자, 이제 들어가자."


 큰스님의 마른 목소리로 말라비틀어져만 가는 승려들의 마음에 달콤한 봄비를 뿌렸다. 말하기가 무섭게 눈치 빠른 구름은 순식간에 몰려와 굵은 빗줄기를 쏴아아 하고 뿌려댔고, 승려들은 가부좌를 틀던 다리를 절뚝이며 하나 둘 들어갔다.

 한편 가부좌를 틀어 참선에 든 상원에게는 큰스님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빗물의 한기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매끈한 머리 위로 굵은 빗줄기들이 우수수 떨어져 눈썹에서 귀로, 귀에서 등과 가슴팍으로 흘러내렸다. 옅은 회색이었던 승복은 몸에 짙게도, 질기게도 들러붙었다. 그래도 상원은 혼자서 굵은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참선을 멈추지 않았다. 큰스님은 제법 쌀쌀한 날씨에 젖어가는 상원이 내심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헛기침을 하더니 큰스님은 뒷짐을 지고 느긋이 들어갔다.


 그게 상원에겐 계기가 되었을까. 비오는 날이면, 승려들이 잠자리에 든 밤이면 홀로 나와서 비를 맞으며 참선을 했다. 기상캐스터가 '오늘 밤은 가을장마가 기승을 부리고, 평년보다 몇 도가 낮은 추운 밤이 되겠다'고 겁을 주며 말려댔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상원은 가부좌를 튼 채 두세 시간은 거뜬히 버텨냈다. 물론 그것도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온몸을 비에 내놓으면서. 그럴 때엔 모두가 잠든, 비 오는 밤 이곳엔 이 세상과 상원, 상원과 이 세상 단 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 둘이 있는 곳에선 꼬장꼬장하기만 했던 세상도 관대했다. 특히 비 오는 밤의 세상은 맑은 낮보다 그에게 많은 것을 허락했다. 빗줄기가 어디서부터 어우러졌는지 모르게 대웅전 뒤의 바위틈에서 폭포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마치 폭포는 그에게 참선을 종용하는 듯, '지금이야. 지금'이라고 철썩였다. 손에 닿을 듯한 연등은 시야의 아득한 곳까지 일렬로 늘어서 멀고 멀기만 한 줄 알았던 무량수불토로 안내하는 듯도 하였다. 상원은 젖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아득하면서도 손에 닿을 듯 한 그곳을, 뜬 눈으로 뚫어질 듯 응시하였다. 배경을 집어삼킨 캄캄한 어둠에 줄줄이 이어지는, 꿋꿋한 연등의 행렬에서 마지막 그 마지막 빨간 점이 보일 듯, 안 보일 듯. 그것이 마치 극락을, 극락을 보여주려는 듯하였다. 그럴수록 상원은 그 먼곳을, 어쩌면 가까운 그 곳을 온 힘으로 응시했다. 그를 스스로 쏟아내어, 그곳에서 상원은 그곳 무량수불토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깨로, 머리 위로 떨어져 흐르는 빗줄기는 어떤 감각도 전할 수 없었다. 상원을 빗줄기가 피하는 것처럼. 그리고 시간이 피해 가는 것처럼. 상원은 이렇게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찰나로 알 것이며 찰나의 시간만 스쳐가도 억겁으로 알 것이었다. 엿가락 같은, 자유자재의 시간 속에서 어떤 것도 그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혹은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의 자녀였던가. 친구였던가. 형제였던가. 학생이었던가. 선생이었던가…… 상원을 규정하는, 수많은 단어로 된 기성복을 한 겹씩 한 겹씩 벗었다. 벗고 벗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아파야만 했던 날들. 성공하겠다고 전공서적에 파묻혀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꼬박 보내야했던 날들. 부정한 정치인들을 보며 밤잠을 설친 날들... 벗고 벗었다. 머릿속에 묶여있던, 엉켜있는 생각의 실타래에서 한 올이, 그리고 그다음 한 올이 풀려 스르르 빠져나가 점차, 점차 말끔해졌다. 상원은 다른 누군가의 어떤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자녀,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형제,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누군가의…… 누군가. 그는 그일 뿐이었다.


2.


 대학원 시절 친하게 지내던 세희한테서 연락이 왔다. 졸업하고서는 얼굴도 보기 힘든 친구였다. 그날도 내게는 내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세상으로 기어 나와 숨을 쉬며 사는 많은 날 중의 하나였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 날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삶의 줄넘기를 아래 위로 흔들면 생길 삶의 파동에서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도 가늠이 안 되는 어떤 지점이었던 것 같았다. 어. 웬일이야. 졸업하고 연락 하나 없더니로 시작한 내 대답은 반가운 대화로 이어졌다. 간만의 대화는 항상 산으로 가고 내려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세희는 목소리를 바꿨다. 결혼식장이나 성당에서나 들을 법한 엄숙한 목소리로.


 “기억나? 너 석사 때 걔 있잖아. 너한테 편지 한 통 달랑 주고 갑자기 사라졌던 네 남자친구 말이야. 상원이.”


 세희의 말은 언제부턴가 멈춘, 굵지만 단호히 끊긴 그 사고의 끈을 지금으로 이어와 붙여 놨다. 마취는 없었고 수술은 짧았다. 배신감, 분노 같은 후유증은 없었다. 대신 엉겨 붙은 궁금증만 남았다. 편지 한 통이 남긴, 평생 가실 줄 몰랐던 그때 그 충격도 이제는 물음표로만 남아 깊은 수심에서 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책상 서랍 속 어딘가의 그가 남긴 일기장과 누렇게 변한 반지 하나. 책상이 힘겹게 이고 있는 그 무거운 짐을 이제 덜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만나기로 한 날엔 운이 좋게도 날씨가 좋았다. 장마는 언제 겪어도 불편했다. 손 하나를 우산에게 내줘야만 했고 스타킹엔 자주 흙탕물이 묻었다. 등산복 차림이어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방은 젖기 십상이었다. 젖더라도 오늘만은 아니 일기장과 반지만이라도 지켜야 했다. 이제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등산복 차림의 세희는 예전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긴 세월은 아니지만 적은 세월도 아니었다. 그러나 밝은 건 여전했다.


 “어 먼저 왔네,  어떻게 벌써 왔어. 애 때문에 주말이 더 바쁘지 않아?”


 나는 남편이 출장 가서 애는 시댁에 맡겼다는 말을 하고 우리는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학과장이 되었다는 교수님, 박사를 마쳤다는 정식이, 시답지 않은 시댁 얘기. 다시 버스를 타고 산 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언제 몰려왔는지 구름은 자욱했다. 가볍게 밥을 먹고 우린 산을 올랐다. 결혼하고 운동을 못한 탓인지 조금만 올랐는데도 숨이 턱까지 찼다. 얼마쯤 지났을까. 약수를 마시고 생각해보니 아마 산중턱을 넘겼을 것 같았다. 구름의 텃새에 못 이겨, 해도 지쳐 건너 앞 산에 바짝 엎드려 옅은 숨을 겨우 내뱉고 있었다. 반대편엔 서서히 달이 기회를 엿보는 듯하였다. 땀이 났다. 그리고 한 방울이 어깨 위로 떨어졌다. 알고 보니 땀이 아니라 빗방울이었다. 각자의 우산을 펼치고 내다보니 저 멀리 절이 하나 콩알만 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는 뚝, 뚝 잦아지더니, 비와 빗소리는 풍경을 가장자리부터 지워나갔다. 우린 발걸음을 더 빠르게 옮겼다. 그럴수록 절은 더 멀게만 느껴졌지만 이내 숲도 나무도 비에 지워져 절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을씨년스럽게 까마귀가 까아까아 울며 비를 피하려는지 낮게 날았다. 왠지 그 음산한 소리가 지금에 어울렸다. 그래, 저 절 안엔 해결 못한 송사(訟事)가 남아있다.

 절 근처에 다다랐을 쯤, 비 오는 날의 해는 지쳤는지 온데간데없고 절의 연등과 대웅전이니 무슨무슨 전이라고 불리는 불교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만이 우리의 위치를 밝히고 있었다. 홀로 뜬 달은 온전한 둥근 모습 대신 부끄러운지 반만 내놓고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바위 위에 우뚝 선 짐승을 경계하고 있었다. 짐승은 눈을 번뜩였다. 그러더니 뒤돌아 껑충껑충 뛰어갔다. 고라니였다.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의문을 이제는 풀어야만 했다. 대학시절에서 석사 시절까지의 역사와 석사 시절에서 지금까지의 선사(先史)를 오늘이 아니면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라니는 멀리 가지 못했다. 저기 절을 에워싼 크고 작은 바위의 무리 중에서 가뿐히 올라갈만한 곳에 서있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오히려 학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요즘 산에 학이 살던가 싶었다. 학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울리게 그저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젖은 등산화를 조용히 한걸음 떼서 우리는 학이 모르게 지나가려 했을 쯤. 얼핏 나는 오른손에 든 우산 너머로 학을 보았다. 학은 고라니도 아니었지만, 학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상원이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머리가 민머리인 것과 그가 있는 곳이 절 근처인 것으로 보아 상원은 들은 대로 스님이 분명하였는데, 비 오는 이 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은 의아하였다. 더군다나 그는 알몸이었다.

 어서와. 상원은 어제 만난 사람처럼 인사했다. 아니면 시간을 건너온 사람처럼.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린 나도 그 인사가 낯설지 않았다. 자취방에 놀러 간 그날의 인사 같기도 했다. 한 무더기의 비를 온몸으로, 벌거벗은 몸으로 맞고 있는데도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반면에 나와 세희는 우산을 쓰고 등산복을 입고 있어도 불편하였다. 그리고 세희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 코도 덩달아 열렸다.

 상원은 우리를 자기가 산다는 절간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리고 볼품없는 깡마른, 비에 젖은 몸을 마른 수건으로 닦고는 뻣뻣한 법복을 입었다. 이제야 제법 스님 같았다. 어린 날의 자취방에서 지금의 절로 오기까지 상원은 내 안에서 원망으로 끓었다가 분노로 넘쳐서, 벚꽃으로 피고 낙엽으로 지고를 반복하였다. 이제 그는 의문으로 남아 마르고 굳어버린 그런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라도 상원은 못해도 젖은 수건으로 내 말라비틀어진 의문을 닦아줄 거라 믿었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물기를 닦던 젖은 손으로 모과차를 건네며, 마른 목소리로 마셔하고는 아무 말 없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왔는지, 어떻게 지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알려줄 것도 없는 사람처럼.

 모과차를 건네받으면서 상원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얼굴은 분명 그의 것이었지만 내 눈에 비치는 그의 얼굴은 내가 알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그의 얼굴은 고민 많은, 감정에 허덕이는 얼굴이었지만 지금 내 눈에 비치는 그의 얼굴은 마치, 불상(佛像) 바로 그 얼굴이었다. 상원은 이미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다른 류였다. 어찌 되었든 나는 계획대로 그가 내게 남기고 간 일기와 낡은 반지를 꺼내려했다.

 이젠 안녕이다 오랜 그대.


 다음날도 큰스님은 법당 한가운데에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부리부리한 얼굴의 큰스님은 탱화에 그려진 도깨비 얼굴처럼 화난 듯 보였다. 다른 스님들 모두 지옥 불에 떨어진 듯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큰스님은 불가의 도를 말했다. 그 도는 너무 크고 높아서 절을 담은 산(山)도 놀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마터면 절이 산에서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큰스님의 목소리는 천지를 흔들었다. 야밤에 알몸으로 여자를 맞이한 승려는 더 이상 승려가 아니라고 했다. 큰스님의 말씀은 어떤 승려에게나, 모두에게 너무나 지당한 말이어서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는 구름을 거니듯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그날은 까마귀와 학도 날지 않고, 고라니도 뛰지 않던 그런 날이었다. 그날의 숲은 글썽글썽 빗물을 머금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리고 다른 승려들은 그가 추방되어 파계승이 되었다고 수군댈 것이고 그들은 그날도 다리를 절며 절간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가진 일기장은 두 권이 되었다. 하나는 그가 속세를 떠날 때 책상 위에 남긴 감정과 번뇌였고, 다른 하나는 내가 그가 있던 절을 떠날 때 그가 내게 남긴 것이었다. 내게 그것을 남기면서 그는 불가의 도를 말했다. 그 도는 대단한 것일 수도, 어쩌면 너무 보잘것없는 것일 수도 있어서 그가 좋아했었던 일기를 적는 일조차 사치라고 했다. 그의 말은 너무 작아서 들릴 듯 말 듯했다. 나무도 바위도, 그가 몸을 담은 절도 부처도 그의 말을 자음 하나 모음 하나까지 새겨들어야만 했다.

 그 다른 하나를 마저 받고는, 나는 오랜 번뇌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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