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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톰블리 낙서 작품의 진짜 의미

by 와이아트


칠판에 분필로 낙서를 한 듯한 이 그림, 얼마일까?



cy-twombly-untitled-new-york-city.jpg 사이 톰블리, Untitled (New York City), 1968. (출처: Sotheby's)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최고가 작품 중 하나인데, 2015년 소더비 경매에서 7,050만 달러(약 970억 원)에 낙찰되었다.


낙서 같은 그림이라 그리 뛰어나지 않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톰블리는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과 같은 화가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화가이다.




사이 톰블리 누구?


미국에서 출생한 사이 톰블리(1928-2011)는 활동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로 정착했다는 배경 때문에 배신자라는 낙인까지 찍힌 화가였다. 작품 또한 미국을 조롱하는 낙서 같다는 이유로 당대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그러다가 1977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1994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며 ‘재발견’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커다란 물결이 일면서 그의 작품도 다시금 주목을 받은 것인데,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cy-twombly-galleria-tommaso-calabro-1280x1280-q90.png 사이 톰블리, Roma, 1961. © Dondero/ Leemage


톰블리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부모 또한 생일 선물로 『근대 예술의 입문서』와 같은 책을 사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유년시절 계속해서 미술을 공부하던 그는 1950년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 입학했고, 이곳에서 아쉴 고르키, 윌렘 드 쿠닝, 존 그라함과 같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다 1951년 봄, 그는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권유로 블랙 마운틴 칼리지의 여름 학기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곳의 교수들은 프란츠 클라인, 로버트 마더웰, 존 케이지 등이었다. 마더웰은 톰블리에 대해 “자신이 만났던 젊은 화가들 중 가장 뛰어난 젊은 화가”라고 높게 평가했다.


사이 톰블리, <풍경>, 1951.


톰블리가 이때 제작한 작품들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는 않으나,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작품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는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프란츠 클라인 등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 화풍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톰블리 또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점차 추상표현주의에서 멀어지면서 자신만의 양식을 개발해 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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