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발언하며 논란을 촉발시킨 적이 있다. 사실 보드리야르의 이러한 언급은 걸프전이라는 사건 자체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전쟁이라는 사건을 간접적이고 가상적으로만 체험한다는 뜻에 가깝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레이션’ 이론으로도 유명한데, 시뮬레이션된 상황이 원본보다 더 진짜 같아진 상황을 이론적으로 풀어내면서 명성을 얻었다. 아무리 ‘전쟁’이라는 심각한 상황이 일어났더라도 전쟁 영상이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해지면서 전쟁은 실제 상황이 아닌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텔레비전 방송국이 제공해주는 영상을 통해서만 걸프전을 접하기 때문에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주장이었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적 논의를 예술적으로 실천한 작가로는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1944-2014)를 들 수 있다. 파로키는 비디오 작업을 통해 미디어 환경의 시뮬레이션화를 보여준다. 특히 전쟁을 포함한 군사적 영역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현실에 침투하는지를 그려낸 작가이다. 현대미술은 사회와 떨어져 순수하게 존재하는 장르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 비추어봤을 때 파로키의 작업을 통해 오늘날 전쟁과 미디어, 예술 사이의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룬 파로키는 1960년대부터 ‘전쟁’과 ‘게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전쟁과 게임이라니, 전혀 관련 없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현대의 전쟁은 마치 게임 시뮬레이션처럼 작동한다는 것이 파로키가 보여주고자 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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