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 <샘>이 예술인 이유

by 와이아트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화가처럼 멍청하다’는 표현이 있었다. 그 말은 옳은 표현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대로 옮겨놓은 화가는 어리석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작품 활동 초기부터 전통적인 회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가 기존의 미술 맥락을 잘 몰랐던 것은 아니다. 뒤샹은 15살 때 처음으로 유화를 그렸는데, 인상파와 야수파, 입체파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대가들의 양식을 두루 섭렵했다.


하지만 뒤샹은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데, 그가 활동할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시기이기도 했고, 그에게 기존의 예술은 너무 고루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fullsizeoutput_1f87.jpeg 마르셀 뒤샹, Walker Art Center, 1965. ⓒPhoto: Eric Sutherland


뒤샹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20세기 조각의 혁신이라 할 수 있는 ‘모빌’을 제작한다. 최초의 ‘레디메이드’ 작품이라 볼 수 있는 <자전거 바퀴>(1913)가 탄생한 것이다. 레디메이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기성품을 새로운 맥락에 놓아둠으로써 의미를 생성하는 미술을 말한다. 당시 레디메이드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뒤샹은 일상의 물건을 전시함으로써 예술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나는 그것을 만들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전시할 의도도, 설명할 생각도 없었다. 전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 마르셀 뒤샹

T07573_9.jpg 마르셀 뒤샹, <샘>, 1917/1964. (출처: TATE)


계속해서 오브제를 전시하던 뒤샹은 1917년 <샘>이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남성 소변기를 90도로 회전해 배치하고, 검정 물감으로 ‘R. Mutt 1917’라고 서명한 뒤,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뉴욕 앙데팡당전’에 출품했다. 사실 뒤샹은 이 협회의 심사위원이었는데, 우선은 가명으로 출품을 한다.


‘뉴욕 앙데팡당전’는 전시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가비를 내고 작품을 제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Mutt 씨의 이 작품만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샘>을 전시장 한 구석의 보이지 않는 곳에 방치한다. 뒤샹은 <샘>이 거부당하자 심사위원을 사임했다. 물론 가명으로 제출했기에 뒤샹의 작품인지는 아무도 몰랐었다.


duschamp.jpg <샘>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마르셀 뒤샹, Pasadena Art Museum, 1963. (출처: hammockmagazine.ge)


<샘>의 출품을 거절당한 뒤샹은 “리차드 무트 사건(Richard Mutt case)”이라는 글을 싣고 작품을 변호하는데, 이 글에서 ‘레디메이드’라는 개념과 뒤샹의 예술적 의도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무트 씨가 직접 <샘>을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는 단지 변기를 오브제로 발견해서 선택했을 뿐이다. 평범한 일상 용품을 택하여 새로운 이름을 명명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기능적 의미인 유용성을 상실시키는 장소에 갖다 놓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 오브제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낸 것이다. 이 작품이 변기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은 부당하다. 미국이 만들어 낸 예술품들이라고는 이런 배관시설과 교량들 밖에 없기 때문이다.”

- 마르셀 뒤샹, 「리차드 무트 사건」 中


이 글에는 현대미술의 시작을 뒤샹으로 보는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뒤샹이 굳이 남성용 소변기를 택한 이유는 예술 작품의 개념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시장에 혐오스러운 변기를 가져다 놓았다는 사실만으로 사물의 원래 기능은 전도되고, 미술가의 개입은 최소화되며, 예술 작품의 의미는 해체되기 때문이다. <샘>에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것을 해체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기게 된 것이다.




레디메이드(Ready-Made)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와이아트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당신을 위한 현대미술 감상 가이드 (*멤버십 콘텐츠 매주 화, 금, 일 발행)

44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6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