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고교 이야기 1

by 제이킴

고등학교 입학


고등학교 배정 추첨을 했는데 신설된 학교라고 한다.

어디에 있냐고 선생님한테 물었더니 잘 모르고 하신다. 내가 1회로 입학하니까 열심히 공부를 잘하라고 하시며 그런데 위치는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114로 학교 전화번호를 물어서 학교에 전화를 걸었더니 언덕넘어 사거리에서 좌측에 가다 보면 학교가 보인다고 하는데 기쁜 소식은 학교가 집에서 멀어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고 슬픈 소식은 학교를 찾아가려니 답답하다.

결국 신설된 우리 학교 주변에 다른 신설 고교에 당첨된 불친과 같이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를 가면서 먼저 불친 학교를 들렸다가 우리 학교에 같이 가기로 했다.

신설 학교라서 덩그런한 건물과 을씨년스러운 주변 환경이 별다른 특색 없이 눈앞에 펼쳐진다.

학교를 나와서 정거장으로 향하는데 자가용이 지나가다가 정차 후 우리에게 같이 타고 나가면 정거장에 내려 주겠다고 한다. 불친 학교에서 정거장까지 걸으면 10분 남짓 걸린다.

친절한 아저씨로 생각하고 자동차에 타려고 하는데 고마운 아저씨의 정체가 궁금했다.

당시는 자가용이 귀했고 특히 학교에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던 시절이니 더욱 궁금했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이 학교와 어떻게 되시는 분 이십니까?”

“응. 지역사회에 학교가 부족한 것 같아서 이번에 학교를 설립했어.”

학교 설립? 그럼 이사장님이 아니신가? 한의원을 했는데 용하다는 소문이 나서 큰돈을 벌었다는 한의사가 불친 학교 이사장님인데 바로 그 이사장님의 차를 타고 학교를 나선 것이다.

결국 불친에 입장에서 보자면 학교에 온 첫날 이사장님과 만나서 이사장님의 차량으로 정거장까지 오게 된 인연이 생긴 셈이다. 나중에 보니 불친이 졸업 후 동창회장을 했다고 하는데 다 그게 그때 이사장의 차를 탔던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불친 학교를 나와서 다음에는 우리 학교를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시골스러운 풍경이 주위에 펼쳐졌고 내가 3년간 다녀야 할 학교도 신설 고교이니 참으로 고생을 하겠구나 생각했다.

학교 근처 정거장에서 내려서 언덕 위의 학교로 들어가는데 건물이 아직 미완성 상태였고 언뜻 보니 운동장이 없었다. 나는 학교 건물도 미비하고 운동장도 없이 어떻게 신입생을 받았는지 당시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결국 건물 4층에 임시 강당을 준비해서 이사장님과 선생님들이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 첫 대면이 이루어진 셈이다.

새로운 역사가 펼쳐졌다.


버스 통학


집에서 걸러서 5분 정도 가면 학교에 가는 버스 정거장이 있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노선은 2종류. 여고를 거쳐가는 노선과 안 거쳐가는 노선.

내가 무엇을 선택했을 것 같은가? 당연히 여고를 거쳐가는 노선을 선호했는데 여고가 기준이 아니라 버스 내 혼잡도를 감안한 선택이었다. 여고를 거쳐 가는 버스는 안 거쳐 가는 버스보다 덜 붐볐다. 이 당시 등교 시간에 버스는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버스 안에 콩나물 같은 학생들이 빼곡하게 들어갔고 버스 여차장이 있던 시절이라서 뒤에서 힘 좋은 여차장이 밀어 대면 남학생들도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버스 안 쪽으로 밀려들어가야만 버스는 출발을 했다.

좀 과장을 보태면 50인승 버스에 한 80명은 탄 것 같았고 전후좌우 중압감이 상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전은 둘째였고 최대 인원의 탑승이 중요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뒤섞여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수시로 일어났다.

지금 같으면 성희롱급. 밀착이 수시로 일어났던 버스는 학교길을 힘들게 만드는 등교 전투의 현장이었다.


오라이All Right


차장들은 탑승 완료 및 출발신호로 버스 차체를 두드려 기사한테 출발 준비 완료의 신호를 보내거나 구두 신호로 ‘오라이’라는 구호를 힘차게 외쳐야 기사들이 출발할 수 있었다.

오라이all right라는 표현은 일본을 들려서 한국에 왔다가 해방 후 남아서 지금까지 사용되는 대표적인 일본식 영어 외래어인데 올롸잇의 영어 표현의 어감도 좋지만 그 시절 한국에서는 오라이를 사용해야 귀가 편하고 안전운행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해방된 지 어언 75년이 지난 시점인데도 일본식 언어는 우리 생활 전반에 아직 남아 있어서 국어순화운동을 통하여 올바른 국어사용 습관을 유도하고 있기에 많았던 일본식 표현이 정제가 되어간다.

벤또, 우와기, 쓰봉, 소지, 단스, 쓰메끼리, 바께쓰, 덴푸라, 아이스께끼 등

도시락, 상의, 바지, 청소, 서랍장, 손톱깎이, 양동이, 튀김, 아이스크림 등

해방이 되면서 일본어를, 6.25 이후에는 영어로 사용된 외래어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남아서 스며든 것인데 당시 우리나라는 강대국 언어의 사용에 이리도 자연스러워야 했을까?

결국 언어는 국력이다.


회수권


영화 ‘친구’를 보면 배우 정운택이 회수권을 오려서 10장을 11장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우리도 사용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차장들이라고 왜 몰랐겠는가?

우리들하고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넘어간 것이다.

회수권을 현금처럼 빌려서 쓰기도 했고 빌려주기도 했다. 한 달 등교일에 맞추어 회수권을 사면 전월 말에 미리 칼로 잘라서 준비하던 부지런한 까까머리들이 있었다.

회수권을 한 번에 다 자르겠다고 무리하게 힘을 주다가 칼날이 손 등으로 올라온 적도 있었다.

그 시절의 즐거움이고 아픔이고 추억이다.



高中入学


据说是进行了高中分配抽签后新设立的学校。

问老师在哪里,老师说不太清楚。 因为我是第一届入学,所以让我好好学习,但是他说不知道位置。

拨打114询问学校电话号码后,拨打了学校电话,翻过山坡,在十字路口向左走就能看到学校,但好消息是学校离家远,要坐公交车上学,悲伤的消息是想去学校,真是郁闷。

结果在新设的我们学校周围,和被选中其他新高中的佛父一起离开了家。

乘坐1个小时左右的公交车,先去一趟不愉快的学校,然后再一起去我们学校。

因为是新学校,所以空荡荡的建筑和冷清的周边环境没有什么特色,展现在眼前。

从学校出来后走向车站,听说私家车经过时停车后和我们一起乘车出去的话,就会在车站下车。 从学校到车站走10多分钟。

我把它当成亲切的大叔,想坐上汽车,很好奇感激的大叔的真实身份。

当时私家车非常珍贵,特别是当时几乎没有乘坐私家车上学的人,所以更加令人好奇。

"请问您和这所学校怎么样?"

"嗯,社区好像缺学校,所以这次建了学校。

办学? 那不是理事长吗? 曾当过韩医院,却听说很有用,赚了大钱的韩医师是佛亲学校理事长,但他就是乘坐理事长的车离开了学校。

结果,从不亲的立场来看,在来学校的第一天就和理事长见面,乘坐理事长的车辆来到了车站。 后来才知道,据说父亲毕业后担任了同学会会长,这可能就是当时乘坐理事长车的缘分。

从这样不友好的学校出来后,为了下次我们学校坐了公交车,周围出现了乡村的风景,我想我要上3年的学校也是新建高中,应该会很辛苦吧。

从学校附近的车站下车,进入山坡上的学校,建筑物还没有完工,乍一看没有运动场。 我当时不太理解学校建筑物不完善,也没有运动场如何招收新生,结果在建筑物4楼准备了临时讲堂,在理事长和老师们欢迎的气氛中进行了第一次见面。

开启了新的历史。


公共汽车走读


从家里过滤5分钟左右就能到学校的公交车站。

我可以选择的路线有2种。 经过女子高中的路线和不经过的路线。

你觉得我选了什么? 当然喜欢经过女子高中的路线,但不是以女子高中为标准,而是考虑到公交车内的混乱度而做出的选择。 经过女子高中的公交车比没有经过的公交车少拥挤。 当时上学时间,公交车简直就是豆芽蒸笼。 当时巴士里挤满了像豆芽一样的学生,而且当时有巴士女车长,所以只要后面有力量强大的女车长推搡,男生们也不得不最大限度地挤进巴士里,巴士才会出发。

再夸张一点,50人座的大巴上好像坐了80人,前后左右的重压感相当大。

现在回想起来,安全是第二位的,乘坐最大人员是非常重要的时期。

男学生和女学生混杂在一起,随时发生不必要的身体接触。

现在就是性骚扰级。 经常发生贴身事件的公交车是让学校路变得艰难的上学战斗现场。


All Right


次长们必须用完成乘坐和出发的信号敲打公交车车身,向司机发出准备出发的信号,或者用口头信号大声喊出"来"的口号,司机们才能出发。

"All Right"一词是从日本来到韩国的,解放后留下来使用的代表性日式英语外来语,虽然"All Right"的英语表达语感很好,但在当时的韩国,使用"All Right"才能使双耳更加舒适,安全运行。

解放已经75年了,但日式语言仍然保留在我们生活的方方面面,通过国语净化运动引导正确的国语使用习惯,因此很多日式表达逐渐被提炼。

Bento, 呜哇吉, 津峰, 昭志, 丹斯, 津间, 百吉, 天妇罗, 冰盖等

便当,上衣,裤子,清扫,抽屉,指甲刀,铁桶,油炸食品,冰淇淋等

解放后,日语、6.25以后使用英语的外来语表达自然地留下来并渗入其中,当时我国在使用强国语言时应该如此自然吗?

归根结底,语言是国力。


回收


电影《朋友》中出现了演员郑云泽剪下回收券,将10张制作成11张的场面。

这是实际发生过的事情,我们也有使用过,但为什么次长们不知道呢?

不想和我们发生争执,所以就过去了。

回收权可以当作现金借来使用,也可以借给别人使用。 如果按照一个月的上学日购买回收券,上个月末就会有提前用刀切好准备好的勤劳的光头。

为了一次性剪掉回收权,强行用力时,刀刃还伸到了手背上。

是那个时期的快乐、痛苦、回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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