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에 진학하니 오래전 소중했던 초교의 추억이 묻어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초1 과 초2 방과 후 축구를 하면서 일몰을 같이 지켜보던 친구들. 초3 전학 가기 전과 전학 후에 친했던 친구들.
공부를 잘하면 공부로, 운동을 잘하면 운동으로, 음악과 미술을 잘하면 특별활동으로 기억되는 친구들이 있었다. 누군가를 짝사랑했었고 누군가에게는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나에 대한 기억들은 비교적 좋은 것들만 추려서 들려주는데 고맙게도 아름다운 추억들이 묻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좋은 인연은 또 다른 반가운 만남을 기약한다더니.
초1/2/3 이면 8/9/10살 시절인데 서로를 지켜보면 세월은 그리도 무상하게 흘러갔음을 알게 된다.
부디 늘 건강하게 앞으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들 인생의 연주자로서 무대에 오를 수 있기를 응원 하마.
고교 시절에 기독학생모임이 있었다.
다른 학교 다른 학년 다른 학생들 신분으로 만났으며 고교시절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건물에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든 '흥사단'의 정기적인 활동이 있었다.
이성의 교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건전한 만남의 장터였고 우리를 지도해주는 대학생 형이나 선배들이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의식화 과정이라고 하기에는 강한 메시지도 없었다.
봄가을로 수련회도 가졌으며 주로 교회 수련관을 빌려서 하루 밤을 보내고 나왔다.
인생에 대하여, 앞으로 미래에 대하여 많은 토론을 하며 거친 생각을 다듬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는 것은 진한 동지애가 생기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만들어진다.
선배들의 건강한 호흡과 눈빛들이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 보여주셨던 순백의 감성처럼 선배님들의 건강한 삶을 기원드립니다.
고1 봄 소풍을 가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담임선생님을 인기 스타로 설정하여 영어 인터뷰를 하는 코믹 즉석 연극이 있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콩글리쉬 영어를 섞어 가면서 사전 준비도 없이 진행을 하다 보니 대화의 흐름도 정해 놓은 주제도 없이 산으로 올라가다가 소재는 금방 고갈되었고 마무리도 임팩트 없이 끝났던 기억이 있다.
한 번은 중2 담임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노래와 동작들을 소풍에 가서 친구들 앞에서 시연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내 기억에 남은 ‘앞 마을 순이’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앞 마을에 순이 뒷마을에 용팔이. 열일곱 열아홉 처녀 총각.
빨래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두 눈이 마주쳤네 (중략)
아하하 아하 나는 나는 어쩌나, 이럴 땐 이럴 땐 어쩌나.
푸른 저 하늘엔 흰구름이 두둥실 두둥실 흘러가네.”
그렇게 고1 좋은 날들은 두둥실 흘러갔다.
수많은 사촌들과 나이가 같으면 진학하는 학교가 일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고약한 상황이 발생한다. 한 명은 공부를 잘하고 다른 한 명이 상대적으로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번에는 후자가 내 이야기 되시겠다.
고모 아들은 나보다 생일이 1달 정도 빠른데 동갑내기 사촌들이 많다 보니 서열의 구분이 확실해야 했다. 같은 나이지만 생일이 빨라서 학교를 1년 먼저 들어간 작은 집 쌍둥이 형들과 나보다 생일이 1-2달씩 빠른 사촌 형과 사촌 조카가 있었다.
여자 사촌이나 여자 조카가 있었으면 어느 정도 정서적으로 순화가 되었겠지만 남자 강세의 유전학적 지원을 받아서 딸들이 귀했던 연령층이었기도 했다.
쌍둥이 사촌 형들은 학년이 빨라서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했고 동갑내기 이면서 같은 학년의 고모 아들과 조카는 직접적인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초교 시절은 다들 비슷한 상위권이었는데 중학교 입학 후 내가 처지면서 나머지 두 사람인 형과 조카는 상대적인 비교우위에서 친척들의 긍정적인 시선을 받았다. 그 이후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점점 하락하는 내 성적이 화제가 될 가능성은 희박했고 그러한 경우도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도 부모님들이 친척모임에 가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식들의 성적 자랑, 표창 자랑에 나를 내세워 이야기할 만 것이 없어서 민망하셨으리라.
다행히 여동생은 생일이 빨라서 7살에 입학했고 나와는 학년 차가 1년으로 줄어들어 나를 대신해서 성적과 피아노로 우리 집 체면을 세워주는 형국이었다.
정말 여동생은 학창 시절 내내 최상위권을 유지하였고 피아노도 틈틈이 연습하여 같은 집에 사는 나 자신도 부여받은 달란트가 있었을 텐데 여동생은 자신의 노력으로 가족들과 주위 친척들의 인정을 받았으니 얼마나 대견한가?
급기야는 고모 아들인 사촌 형과 같은 고교에 진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발생한다.
升入高中后,看到了埋藏着很久以前珍贵的小学回忆的朋友们。
小学1年级和小学2年级放学后一起踢足球观看日落的朋友。 小学3年级转学前和转学后的好朋友。
有些朋友记得学习好就是学习,运动好就是运动,音乐和美术好就是特别活动。 曾经暗恋过某个人,也曾经暗恋过某个人。
他们所说的关于我的记忆只选了比较好的东西讲给大家听,但很感谢的是,有这么美好的回忆,真是万幸。 好姻缘相约,相约另一次欢聚。
小学1/2/3是8/9/10岁的时候,但是相互观察就会发现岁月是那样无常的。
希望以后也能一直健康地以美丽的面貌登上自己人生的演奏者的舞台。
高中时期曾有过基督教学生会。
以其他学校、其他年级、其他学生的身份见面,在高中时期起到了一种解放区的作用。
在不远的建筑物里,岛山安昌浩先生创建的"兴师团"定期活动。
与其说是异性交往,不如说是健康的见面场所,还有指导我们的大学生哥哥和前辈们。 也不能说是当时流行的意识化过程。
春秋两季还举行了修炼会,主要租用教会修炼馆过夜。
我认为这是对人生、对未来进行很多讨论,整理粗糙想法的机会。
学生时代一起度过一晚会产生深厚的同志情谊,形成对彼此的信任。
前辈们健康的呼吸和眼神在我记忆中历历在目。
就像当时展现的纯白感性一样,希望前辈们健康地生活。
高一春游时,有一个喜剧即兴话剧,谁都没让,就站出来把班主任设定为人气明星,进行英语采访。
事实上,我记得混合着不像话的韩式英语,在没有事先准备的情况下进行,所以在没有确定对话主题的情况下上山,素材很快就枯竭了,结尾也没有冲击性。
还记得有一次,我去郊游,在朋友面前演示了初二班主任教我的歌曲和动作。 我印象深刻的《前村顺》的歌词如下。
"前村顺后村龙八。 十七十九姑娘的小伙子。
从洗衣处回来的路上 双眼对视了 (中略)
啊哈哈啊哈,我怎么办,这时候该怎么办。
蓝蓝的天空中白云飘飘悠悠地飘着。"
就这样,高一的好日子一晃一晃地过去了。
和许多堂兄弟年龄相仿,升学的学校就会一致,但会发生非常恶劣的情况。 一个人学习好,另一个人相对较差的情况。
这次后者将成为我的故事。
姑姑的儿子生日比我早1个月左右,但由于同龄的堂兄弟很多,所以要明确区分排名。 虽然年龄相同,但生日早,所以有比自己早1年的小家双胞胎哥哥和比我生日早1-2个月的表哥和表侄。
如果有女表亲或女侄子,在情绪上会有所缓解,但是得到男性强势的遗传学支援,是女儿们珍贵的年龄层。
双胞胎表兄们因为年级早,无法进行直接比较,同龄人、同年级姑姑的儿子和侄子成为了直接比较的对象。
小学时期都处于相似的上游水平,但初中入学后我落后了,剩下的两个人哥哥和侄子在相对比较优势上受到了亲戚们的肯定。 此后,升入高中后,我的成绩逐渐下降成为话题的可能性很小,也没有发生这种情况。
也许父母们去亲戚聚会时,自然而然就会出现的子女们的成绩炫耀、飞镖炫耀等,因为没有什么可说的,所以感到很尴尬。
幸好妹妹生日快,7岁入学,和我的年级差距缩小到1年,代替我用成绩和钢琴给我们家争了脸。
妹妹在学生时代一直保持最高水平,钢琴也抽空练习,住在同一所房子的我自己也有被赋予的达兰特,妹妹通过自己的努力得到了家人和周围亲戚们的认可,该有多欣慰啊?
最终,她和姑姑的儿子表哥升入同一所高中,发生了很多小插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