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고교 이야기 8

by 제이킴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의 사촌 형


손위 고모 아들로 생일이 빠른 사촌 형이 같은 고교에 다니면서 생겨난 이야기들이 있었다.

다행히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일부 친구들이 나와 형의 인척관계를 알고 자신은 형의 친구이니 형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물론 진담 같은 농담이었다.

형은 중학생 시절부터 체격이 다부지고 공부도 줄곧 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소한 나보다는.

당시 고1 임시 반장 친구와 같은 고향 출신이지만 3명이 같이 어울렸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해의 혼선을 피하기 위하여 임시 반장은 ‘임 반장’으로 정식 반장은 ‘반장’으로 호칭을 통일한다.

임 반장은 중2 때 성장이 멈췄다고 하는데 중학교 기준으로는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고 씨름도 잘했다고 한다. 임 반장의 이러한 무용담은 옆에서 지켜본 사촌 형도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한 부분이다.

임 반장은 학기초부터 절친 모드로 돌입해서 우리 집과 절친들 집에서 자주 만났다.

공부도 상위권이었고 운동신경도 좋았고 은근히 나랑 맞는 유머 코드가 있었다. 내 기억을 돌이켜 보면 1학년 때 자주 어울렸던 임 반장과 나를 보고 누군가 그랬다.

너희 둘은 성적과 성격, 체형, 외모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 친한 것을 보면 신기하다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배려가 있다면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갈 수 있는 힘이 우정에게는 담아져 있다. 그러니 천리도 마다하지 않을 우정에 무슨 장애물이 있었겠는가?


가수 조덕배를 아시나요?


어느 겨울날. 임 반장이 조덕배를 좋아하게 되었다며 카세트테이프를 가지고 집으로 왔다.

당시 임 반장이 집에 오면 당일치기가 아니라 최소 1박 2일 이상을 같이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노래를 종알거리듯 흥얼거리듯 약간의 비음도 섞여 있었고 새로운 음색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꿈에’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 ‘나의 옛날이야기’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꺼야’ ‘노란 버스를 타고 간 여인’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내 가슴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아마도 그 겨울방학 때 앞뒤로 돌려가며 한 100번씩은 듣고 나서 이제는 조덕배를 놓아주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서로 합의하에 그의 테이프는 꺼내어졌고 다시는 일부러 듣지 않았다.

그 겨울에는 어떠한 감성으로 임 반장과 내가 이 가수에게 빠져들었을까?

앞으로도 이처럼 누군가의 노래에 빠져들 수 있을까?

그렇지만 약 10년 후 다른 가수를 운명처럼 만나서 다시 빠져들었는데.


쌍둥이 형제 1


우리 학교에 일란성쌍둥이 중 동생이 다닌다.

일란성쌍둥이 특징상 외모는 거의 판박이 수준이고 체형과 미소, 심지어 버드렁니가 난 위치까지 비슷하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 쌍둥이 형과 한 반이 아니었으면 내가 그 둘을 헛갈릴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친하게 어울린 형은 동생보다 더 개구장이었고 중학생 시절 가을에 ‘벼 베기 지원’을 친구 집으로 나가기도 했었다.

얼굴은 판박이지만 얼굴에 남은 미소 자국이 약간 다르다. 나는 알아차렸지만 다른 친구들 특히 다른 고교에 다니던 형의 모습을 보지 못한 동창생들은 형과 동생의 구분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아버지도 쌍둥이 형인데 어릴 적 사진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같은 얼굴이지만 성장하면서 삶의 각도와 성장의 각도 차이로 지금은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다.

선천적 요인보다는 후천적 환경과 식생활의 영향으로 보이며 유전학자의 용불용설이 아니더라도 결국 많이 사용하는 얼굴 근육과 삶의 질곡에서 새겨진 주름들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쌍둥이 동창들은 교육공무원으로 맹활약 중이며 활발한 성격으로 소속 학교에서도 인기 선생님이라고 들린다.

부디 좋은 형제애로 함께 롱런하기를 기원한다.


복조리福笊籬


복조리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부엌이나 마루에 걸어 놓는데 그해의 복을 조리로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걸어 놓는 민속전통 풍습이다.

겨울방학 동안 새해를 맞이해서 복조리를 집 앞에 놓아두면 집주인들이 집으로 가져가서 벽이나 옷장에 걸어 놓는데 우리는 며칠 후 복조리를 놓아둔 집에 가서 조리 값을 회수하는 판매영업을 하기로 불친들과 의기를 투합했다.

복조리를 사러 시장에 들렀다. 아마도 나의 대량 구매를 통한 판매영업의 첫 경험이었는데 준비과정은 신선한 경험이었고 제작과정에서 반영된 붉은색 꽃리본으로 매듭을 만들어 마무리를 하였다. 당시 우리들이 볼 때 리본 활용에 대한 신선미가 있었고 시각적으로 차별화를 두고자 했다.

약 50개를 지금의 5,000원으로 판매 가격을 정했는데 당시 제작비는 복조리 2개 2,000원+리본 값으로 200원 수준이었다. 순조롭게 판매를 했는데 집 앞에 놓아둔 조리가 없으면 구매 의사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초인종을 눌러서 설레는 마음으로 주인장이 문을 열고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일부 주인들은 집에 없어서 다음 날 다시 가서 수금을 하기도 했었다.

나의 첫 복조리 판매영업 활동은 그렇게 또 한 추억을 만들어 놓았다.



同校同年级表哥


作为长辈姑姑的儿子,生日早的表哥上同一所高中时发生了这样的故事。

幸运的是,虽然不是同班同学,但部分朋友知道我和哥哥的姻亲关系,说自己是哥哥的朋友,请叫我哥哥。 当然,这是一句真诚的玩笑话。

据我所知,哥哥从初中开始体格强壮,学习也一直很好。 至少比我。

当时,虽然与高一临时班长的朋友是同乡出身,但三个人好像很少在一起。

为了避免利害混乱,临时班长统一称呼为"林班长",正式班长统一称呼为"班长"

据说林班长在初二时停止了成长,但是以初中标准来看,学习好、足球好、摔跤也好。 在旁边观看的表哥也在一定程度上认可了林班长的这种勇猛。

林班长从学期初开始进入至亲模式,经常在我家和至亲家见面。

学习也名列前茅,运动神经也很好,而且还有适合我的幽默元素。 回想我的记忆,看到1年级时经常和林班长交往的我,有人这样说过。

你们俩的成绩、性格、体型、外貌都有很大的差异,但是看到关系很好就觉得很神奇。 UJUNG身上蕴含着如果彼此有理解之意,不久就会千里不离遠千里寻找的力量。 所以千里挑一的友谊又有什么阻碍呢?


认识歌手赵德培吗?


某个冬日。 林班长说喜欢上了赵德培,带着盒式磁带回家了。

当时,林班长回家后,不是当天的事情,而是至少一起度过2天1夜以上的时期的故事。

就像哼唱歌曲一样,还夹杂着一些鼻音,新的音色带来了新鲜的冲击。

《梦里》、《如果你走进我的心》、《我的往事》、《我不会唱悲伤的歌曲》、《乘坐黄色巴士的女人》等珠玉般的歌曲流入了我的内心。

也许在那个寒假前后轮流听了100次左右,现在一致同意放赵德培。 经双方同意,他的录音带被取了出来,并故意不听.

在那个冬天,林班长和我以怎样的感情迷上了这位歌手呢?

以后也会像这样沉迷于某人的歌曲吗?

但是大约10年后,像命运一样遇到了其他歌手,再次陷入其中。


双胞胎兄弟1


我们学校有同卵双胞胎中的弟弟。

同卵双胞胎的特点是外貌几乎一模一样,体型、微笑,甚至长出柳牙的位置都相似。 也许初中时期,如果不是和双胞胎哥哥一个班,我可能会混淆他们俩,但是当时关系很好的哥哥比弟弟更调皮,初中时期秋天还参加了"割稻支援"的朋友家。

虽然脸长得一模一样,但脸上留下的微笑痕迹略有不同。 虽然我察觉到了,但是其他同学,特别是没有看到哥哥在其他高中上学的同窗们,哥哥和弟弟的区分应该很困难。 事实上,我父亲也是双胞胎哥哥,小时候的照片几乎无法区分,虽然是一样的脸,但是随着成长,生活的角度和成长的角度差异,现在不难区分。

比起先天因素,更像是后天环境和饮食生活的影响,即使不是遗传学家的容与容与容错说,最终经常使用的脸部肌肉和生活中刻着的皱纹也是没有办法的。

双胞胎同学作为教育公务员非常活跃,性格活泼,在所属学校也是人气老师。

祝你们兄弟情谊深厚,长长久久。


福笊篱


福笊篱是农历正月初一凌晨挂在厨房或地板上的民俗传统风俗,意为把当年的福通过烹饪站起来获得。

寒假期间,为了迎接新年,如果把福笊篱放在家门口,房东们就会拿回家挂在墙上或衣柜里,而我们几天后就会去放福笊篱的房子进行回收烹饪费的销售营业,与不亲们意气相投。

到市场买福笊篱。 这可能是我通过大量购买销售销售的第一手经验,准备过程是新鲜的经验,在制作过程中用反映的红色花丝带打结收尾。 当时在我们看来,丝带的使用很有新鲜感,想在视觉上有所差别。

约50个的销售价格定为现在的5000韩元,当时的制作费是福笊篱2个2000韩元+丝带价格200韩元。 顺利销售后,如果没有放在家门口的料理,就判断有购买意向,所以按下门铃,怀着激动的心情等待主人开门出现。

有些业主因为不在家,第二天又去收款了。

我的第一次福笊篱销售营业活动就这样又留下了回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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