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고교 이야기 10

by 제이킴

고2+고3 담임 선생님


고 2가 되면서 내 인생의 은사님을 만나게 된다.

이해하기 쉬운 세계사 설명으로 역사의 맥을 짚어 주시던 선생님과 첫 대면은 그해 3월 학기초로 기억의 시계를 돌려야 한다. 즐거운 시간여행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타 학교에서 전근을 오셨다는데 첫인상이 가수 송창식을 닮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학교 시절 송창식 노래에 빠져서 그러한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

마른 체형에 푸근한 미소가 잘 어울리시던 선생님은 그 후 2년간 같은 반 담임선생님이 되셨는데 이 또한 운명 같은 인연의 끈이 이어져 지금까지도 여러모로 어설픈 제자를 위하여 다방면으로 신경을 써 주시는 고마운 분 이시다.

학기 초 선생님 생일날 케이크를 준비해서 선생님 수업 시간에 촛불을 밝혀 교탁에 올려놓고 선생님이 들어오시기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생일 축하 노래라도 급우들과 함께 부를 일이지 덩그러니 케이크만 주인을 맞이한 셈이 되었다.

방과 후 케이크를 가지고 집에 같이 가자고 하시는 데 선생님 댁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으니 다행스러운 경험이었다. 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자 사모님과 1남 2녀, 5명 가족들이 오손도손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가 참으로 좋았다.

사모님도 교육자로서 고2 같은 반 친구들 2-3명의 초교 담임선생님 이셨다고 하는데 그들에게는 초교시절은 사모님한테 고교에서는 선생님한테 배움을 받는 입장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인가?

선생님의 아이들은 초등생이 2명에 코흘리개가 1명인데 훗날 이 코흘리개는 같은 학과 후배가 되었고 더 훗날에는 회사 후배로 입사하여 다시 만나는 인연이 만들어지는데 세상에는 자연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만남의 조화가 존재한다.

만남은 불교에서 말하는 기준으로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세월이 쌓여야 현세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나긴 인연의 결과이겠는가?

선생님과의 인연에 먼저 감사드리고 모든 인연에 감사할 일이다.


싸다구


3월 초 종례 후 귀가를 하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싸다구로 악명이 높은 선생님이 나를 보시더니 그렇지 않아도 눈썹도 진한 분께서 두 눈을 부릅뜨고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싸다구를 날리셨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원인을 파악하려고 반문을 하려고 했으나 이미 발동 걸린 싸다구는 몇 차례 더 작렬했고 알고 보니 싸다구의 원인은 내가 모자를 안 쓰고 하교한다는 이유였다.

사실 교실에 놔두고 온 모자를 다시 쓰고 오면 될 일이었는데 막상 선생님의 심기가 좋지 않았는지 별다른 원인 파악 없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싸다구에 억울함이 넘쳐 났다.

이미 작렬된 싸다구는 내 정신을 확 깨어 버렸고 모자는 교실 책상 속에 있다는 실제 사실은 변명거리도 되지 않는 시점이니 내 원통함은 부질없는 하소연으로 마무리가 되어버렸다.

그 후 하교 때는 머리 위에 존재하는 모자를 확인하고 하교하는 버릇이 생겨났는데 며칠 후 교육부에서 두발 자율화를 한다는 발표가 있었으니 제도가 학기 초부터 시행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다시금 아쉬워하며 두발 자유화를 만끽하게 되는데.


두발 자유화


학기 초 싸다구 충격에서 벗어날 때쯤 낭보가 도착했다.

두발 자유화! 이게 웬 말인가? 교복은 입으면서 두발은 자율화를 한다고 한다.

그것도 어디인가? 우리나라 교육행정도 많이 개선이 되었구나 싶었고 일제 강점기를 포함하면 약 70년 동안 이어진 빡빡머리가 정상화되는 혜택을 고2 부터라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행운이었다. 내년에는 교복 자율화도 된다니 이 얼마나 설레는 변화인가?

내 개인사를 보더라도 중1 입학부터 바리깡과 인연을 맺은 후 물경 4년 동안 빡빡머리였는데 이제는 단정한 장발도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이때부터 학생들 가방에는 도끼빗이 등장하고 머리를 자주 감는 위생적인 습관이 생겨났다. 빡빡머리는 한 1주일 안 감아도 표시가 나지 않는데 장발은 하루를 지나면 베개 파마의 흔적이 생기고 이틀이 지나면 기름층이 생기며 사흘이 지나면

오히려 포마드를 바른 듯한 윤기가 흐른다. 결국에는 역설적으로 두발 자율화가 개인위생에는 더 효과를 발휘하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두발 자율화가 되면 학생들이 머리 손질하는데 시간을 많이 뺏기고 공부에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해 온 교육부 어르신들이 어떻게 두발 자율화를 결정하였는지 신통방통하다. 결국 시대 흐름이 민주화, 자유화 물결을 타고 일제 잔재인 두발과 교복이 자율화되고 있는 것이다. 독재정권의 붕괴 후 일어난 사회 전반적인 정서의 변화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사회 변화는 그렇다 치고 우리들의 머리는 준 장발 스타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기 초가 이른 봄이었으니 여름이 오기 전에 다들 대학생 수준의 장발들이 양성되기 시작했고 아마도 두발로 군기를 잡던 선도부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시대변화가 야속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내 머리카락에도 자율화 물결이 도도하게 들어왔고 대세를 맞이하는 우리들은 즐겁기만 하였다. 기본적으로 머리를 기르게 되면 초교 시절 모습의 가르마가 생기고 머리를 넘기는 동작이 일상화되면서 머리 기준으로만 보면 고교생인지 대학생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두발 자율화는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며 찾아온 선물같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수학과 이별


넘쳐나는 수학 시간이 이제는 힘겨운 수업으로 변하고 있었다.

두발은 자율화가 되었는데 수학은 자율화가 안 되었다. 노력과 집중력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결국은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이별 통보를 나 자신에게 하여야만 했다.

별로 슬프지도 억울할 것도 없었다. 자업자득이 아닌가?

콩을 심었는데 수박이 열리겠는가?

대학 학력고사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학과의 결별은 이미 대학입시의 불리함을 안고 시작하는 시합인데 그렇다고 벌써 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다른 과목으로 만회를 해야만 한다는 절박함보다는 수학이 멀어지는 시원함도 함께 느꼈으니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이기심인가?

자기 합리화도 이런 합리화가 없겠다. 그래도 전진은 해야 하고 집중해야만 하는데 사전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 나를 원망해야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중3 영어의 추억만 가지고 고2, 고3을 보내기에는 너무 유치했고 다른 과목에 대한 집중력을 길러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았다. 결국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진리가 왜 이리 시리게 다가오던지.

그래 공부는 때가 있었다. 특히 수학 공부는 나에게 더 때가 있었나 보다.



高2+高3班主任


到了高二,我遇到了我人生的恩师。

首次与用容易理解的世界史说明指明历史脉络的老师见面,应该把记忆的时钟拨回到当年3月初。 以愉快的时间旅行邀请你。

听说是从其他学校调来的,第一印象就是长得像歌手宋昌植。

我中学时期迷上了宋昌植的歌,所以可能产生了那样的影响。

身材干瘦、微笑很般配的老师在之后的2年里成为了同班的班主任,这也是命运般的缘分延续至今,为生疏的弟子多方面倾注心血的感谢的人。

学期初,老师生日那天准备了蛋糕,在老师上课时点亮蜡烛,放在课桌上等老师回来。 现在回想起来,即使是生日快乐歌,也应该和同学们一起唱,孤零零地迎接了主人。

放学后说带着蛋糕一起回家,有机会访问老师的家,真是万幸的经历。 回家问候后,看到夫人、1男2女、5名家人和睦生活的样子,真是太好了。

听说夫人也是教育者,是2-3名高二同班同学的小学班主任,但是对他们来说,小学时期是从夫人那里得到老师学习的立场,这是多么美好的相遇啊?

老师的孩子们有2名小学生,还有1名流鼻涕的孩子,后来这个流鼻涕的孩子成为了同一学科的后辈,以后作为公司后辈进入公司,形成了再次见面的缘分,世界上存在用自然科学很难说明的相遇的和谐。

相逢要以佛教所说的标准积累数不清的永劫岁月才能在现世相遇,这是多么漫长的缘分的结果啊?

首先感谢与老师的缘分,然后感谢所有的缘分。


巴掌


3月初结束婚礼后,为了回家下楼梯时,因"便宜货"而臭名昭著的老师看到我后,本来眉毛就浓的人睁大双眼,像蝴蝶一样飞起来,像蜜蜂一样便宜。 我莫名其妙地为了查明原因想反问,但是已经启动的"sadargu"又发火了几次,原来"sadargu"的原因是我不戴帽子放学。

事实上,原本放在教室里的帽子重新戴上就可以的事情,但不知是不是因为老师心情不好,在没有掌握其他原因的情况下,自动做出反应的"sada"字句充满了委屈。

已经闹得沸沸扬扬的"sadargu"一下子打碎了我的精神,母子俩在教室桌子上的实际事实已经成了无用辩解的借口,因此我的委屈最终以毫无意义的诉苦收场。

之后放学时出现了确认头顶上的帽子后下学的习惯,几天后教育部发表了头发自律化,如果制度从学期初开始实行就好了。

再次感到遗憾,尽情享受头发自由化。


头发自由化


在学期初摆脱廉价冲击的时候传来了喜讯。

头发自由化!这是怎么回事? 据说,穿校服的同时头发也要自律化。

那也是哪里? 韩国的教育行政也得到了很大的改善,包括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在内,从高二开始也能享受约70年的光头正常化优惠,这分明是幸运的。 明年校服可以自主化,这是多么激动人心的变化啊?

从我的个人经历来看,从初一入学开始就和朴利康结缘后,物镜4年来一直都是光头,现在迎来了可以留端庄长发的时代。 从此,学生书包里就出现了斧头梳子,并养成了经常洗头的卫生习惯。 光头1周不洗也看不出来 长发过一天就会有枕头烫的痕迹 过两天就会有油层 过三天的话

反而像涂了发蜡一样有光泽。 最终,反过来说,头发自律化对个人卫生发挥了更大的效果。 教育部老人一直主张,如果头发自律化,学生会占用很多时间整理头发,学习集中力也会下降,他们是如何决定头发自律化的呢? 最终,随着时代潮流,民主化、自由化浪潮,日本帝国主义残留的头发和校服正在自律化。 不可否认,这是独裁政权崩溃后社会整体情绪的变化。

虽然社会变化是那样,但我们的头发开始变成准长发,并没有花太长时间。 学期初是早春,夏天到来之前,大家都开始培养大学生水平的长发,也许在用头发掌握军纪的宣道部老师看来,时代变化无情。

就这样,我的头发也迎来了自律化浪潮,迎接大势的我们只有快乐。 因为,如果留长头发,就会出现小学时期的发缝,而且随着撩头发的手势日常化,仅从头发标准来看,已经到了分不清是高中生还是大学生的程度。

就这样,我们可以享受的头发自律化宣告了一个时代的终结,像礼物一样,留下了美丽而珍贵的回忆。


与数学的离别


过剩的数学课现在变成了艰难的课程。

头发是自律化的,数学却没有自律化。 在努力和集中力方面没有取得什么成果。

结果不得不对自己说出人生第一次经历的离别通报。

没有什么可悲伤的,也没有什么可委屈的。 这不是自作自受吗?

种了豆子能结西瓜吗?

大学学历考试中占很大比重的数学系决裂已经是带着高考不利因素开始的比赛,但也不能现在就放弃。 比起必须用其他科目挽回的迫切感,同时感受到了数学渐行渐远的清凉感,这是多么二律背反的自私心啊?

自我合理化也不会有这种合理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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