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중학생 이야기 14

by 제이킴

사춘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의 자유로운 사춘기는 시작되었다.

반항의 사춘기가 아니라 성장의 사춘기라고 해두자. 딱히 반항할 만한 명분도 없었고 그렇다고 사춘기가 다 반항으로 점철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크게 탈선하는 기차처럼 큰 방황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냐구? 중학생 시절은 전체가 즐거운 나의 틴에이저 시절의 개막이었고 미션스쿨의 정돈된 학교 분위기와 즐거운 학교생활의 바탕이 된 좋은 친구들과 언제나 친절하게 나를 길러 주신 선생님들과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과 사랑으로 방황할 틈이 없었다고 기억된다.

딱이 반항을 했다면 엄마 잔소리에 투정을 부리거나 귓등으로 흘리기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 나 잘 되라고 하신 말씀인데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격이다. 그래서 인생은 미완성이다.

가수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그렇다. 쓰다가 포기한 편지일 수도 있고 부르다 멎는 노래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곱게 써내려 가야 한다.

“인생은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걸 그리운 가슴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나!


송창식


근식이 형이 송창식 카세트테이프를 사 가지고 왔는데 가수 '송창식'의 ‘골든 베스트 히트송’이었다.

앞에 10곡, 뒤에 10곡 등 약 20곡이 수록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b면 맨 마지막은 건전가요라고 해서 사회 계몽 또는 의식개조 차원의 군가 성격이거나 새마을 운동 노래가 말미를 장식한다.

이것도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국민계몽 활동의 일환으로 강조한 건전가요이지만 역시 군부독재의 영향으로 판단된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는 음반이나 카세트테이프에 왜 국가가 권장하는 노래를 실어야 하는가? 작곡가, 작사가, 가수가 혼신을 다해서 만드는 작품에 묻어가는 것 아닌가?

정서가 듬뿍 담긴 노래를 듣다가 생뚱맞게 정신개조 성향의 계몽가요가 나오면 웃슬픈 독재정부와 나라의 현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 같아서 지금도 생각하면 씁쓸하다. 북한에서도 그리할까? 그렇다면 동가상련同歌相戀으로 이해하련다.

‘골든 베스트 히트송’

이미 히트한 노래를 선곡해서 녹음을 했으니 베스트 히트송. 게다가 골든 까지 서두를 장식 하니 도대체 얼마나 좋은 노래인지 짐작이 가는가?

하여간 나는 저녁밥을 먹고 이동 수면방으로 오면 송창식의 노래를 틀어 놓고 형은 형대로 나는 나대로 하루를 마감하곤 했는데 그때 들은 노래 제목들은 대충 이렇다.

피리 부는 사나이, 왜 불러, 그대 있음에, 사랑이야, 상아의 노래, 슬픈 얼굴 짓지 말아요, 푸르른 날, 하얀 손수건, 고래사냥, 우리는, 한 번쯤, 왜 불러, 창밖에는 비 오고요, 내 나라 내 겨레, 가나다라 등 수없이 많은데 이 노래를 다 부를 수 있냐고?

당연히 노래방에서는 다 부를 수 있다. 안정된 반주와 가사가 있으니.

사실 가사 없이도 80% 이상을 기억하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약 10곡이 넘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밤마다 앞뒤 3번씩은 듣고 자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때는 이어폰 같은 개인적인 감상이 아니라 같은 방에 있으면 선택권이 없이 공개적으로 같이 들어야 하는 공동 음악 운명체였으니.

지금도 근식이 형과 겨울에 생강차를 끓여 마시며 송창식의 골든 베스트 히트송을 듣고 싶다.


大麻草 marijuana


마취 또는 환각 작용이 있는 대마의 잎이나 꽃을 말려서 담배처럼 말아서 피울 수 있도록 만든 마약의 일종으로 중앙아시아 원산의 삼과 식물로 한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삼베옷의 원료로 이용해 왔다.

문제는 옷의 원료로 쓰면서 다른 용도로 개발이 되었는데 환각작용을 가져온다는 마약 성분이 문제였다. 양귀비와 함께 민간요법으로 사용된 대마초 흡연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불법 금지 품목이다.

그런데 최근 유엔위원회에서 대마초와 대마초 수지(점액)를 위험한 범주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에 따라 세계 의료용 마리화나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의료용 완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당시 중학교 시절 유명 가수들이 대마초 흡연으로 가수 자격 박탈, 정지 등의 제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라에서 법으로 정한 선을 넘어서는 행위는 범법이 분명하지만 대마초 흡입과 관계없이 금지곡으로 분류된 가요들이 있었다.

그래서 금지곡으로 지정된 가수들 중 대마초 사건으로 자격이 정지된 가수들과 한 통속으로 비쳐 오해를 받게 된 가수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금지곡을 발표할 당시 대마초 연루된 가수들과 같이 발표를 했으니 이어지는 오해는 불가피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禁止曲


금지곡은 국가의 심의 및 검열을 통해 방송/음반 발매/공연 등이 제한된 노래들인데 유래를 찾아보니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나온다. 도대체 일제는 우리나라 정서에 다양한 해악을 끼쳐서 용서가 안 되는 대상이기도 하다. 최근 기사를 보니 10년 안에 일본의 수출액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부디 그러한 날이 빨리 와서 우리나라가 섬나라 일본의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부디 현명하게 극복하기를 바란다.

광복 이후 일제에 의한 노래의 통제를 사라졌으니 본격적인 가요 부흥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6.25 전후로 시작한 이념 간의 대립 속에서 노래의 통제가 다시 시작되었고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권은 방송윤리위원회 심의를 통하여 대중가요의 적합성을 검열하였다.

“금지곡의 설정 기준은 정치적인 요인과 사회적인 요인으로 구분된다. 즉, 국가의 존립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노래나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노래가 금지곡의 설정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기준은 정권과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했는데, 각자 추구하는 바 혹은 시대적 인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가사가 북한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신중현의 미인은 성적 묘사와 유신 정권을 비판할 여지가 있는 가사가 포함되었다고 하여 처음과 달리 발매 이후 금지곡이 되었다. 이러한 금지곡의 설정은 국민 기본권의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의 정권 유지를 위해 개개인의 의식을 통제하려 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순수 예술로 보아도 부족함이 없는 가사를 왜 자기식으로 다른 해석을 한 단 말인가?

동상이몽의 극치라고 생각된다.



思春期


上中学后,我的自由青春期开始了。

不要说是反抗的青春期,而是成长的青春期。 也没有什么可以反抗的名分,但青春期不都充满了反抗吗?

但我认为,没有像脱轨的火车那样彷徨过。

为什么呢?我记得初中时期是全体快乐的我的青少年时期的开幕,在任务学校整齐的学校氛围和成为愉快学校生活基础的好朋友和一直亲切地养育我的老师和家人的坚实支持和关爱下,没有时间彷徨。

如果说反抗的话,就是对妈妈的唠叨发牢骚或耳边风,但现在回想起来,都是为了我好才说的,这无异于搬起石头砸了自己的脚。 所以人生没有完成。

想起了歌手李真冠的《人生未完成》这首歌。

"人生是未完成写完的信 就算这样我们也要好好写 爱情是未完成唱完停唱的歌 就算这样我们也要唱得美美的"

是的。有可能是写着写着就放弃的信,也有可能是唱着唱着就停下来的歌,但是还是要写得漂亮一点。

"人生是画不完的画,但我们还是要画得美丽一点,朋友啊,朋友啊,我们都让思念旅客的心一起点燃篝火吧,人生是未完成的雕刻,即使这样我们也要刻得漂亮一点。"

我人生的主人公就是我呀我!


宋昌植


根植哥买来了宋昌植的盒式磁带,这是歌手"宋昌植"的"金最佳热门歌曲"

我记得前面收录了10首,后面收录了10首等约20首歌曲,b面最后是健康歌谣,具有社会启蒙或改造意识的军歌性质或新村运动歌曲作为结尾。

这也是当时作为自然国民启蒙活动的一环而强调的健康歌谣。但据判断,这也是受军部独裁的影响。 自由创作活动的唱片或盒式磁带为什么要收录国家推荐的歌曲? 作曲家、作词家、歌手们会不会全身心投入到创作的作品中呢?

听着充满情绪的歌曲,突然出现精神改造倾向的启蒙歌谣,似乎向全世界公开了令人哭笑不得的独裁政府和国家的现实,现在回想起来也觉得有些苦涩。 朝鲜也会这样吗? 既然如此,那我就理解为同床共霜,戀了。

"Golden Best热门歌曲"

因为已经选好了热门歌曲进行录音,所以是最佳热门歌曲。 再加上Golden开头,可想而知到底有多好听?

总之,我吃完晚饭来到睡眠房,就会放着宋昌植的歌,然后哥哥就按照自己的方式结束一天,那时听到的歌名大概是这样的。

吹笛人,为什么唱,因为有你,爱情啊,象牙之歌,不要愁眉苦脸,蓝天,白色手绢,捕鲸,我们,一次,为什么唱,窗外下雨,我的国家,我的同胞,我的歌,我的歌,我的歌,我的歌,我的歌,我的歌,你能唱完吗?

当然在练歌厅都能唱。 因为有稳定的伴奏和歌词。

事实上,即使没有歌词,也能记住80%以上的歌曲约有10首以上。

怎么能那样呢?每天晚上前后听3次睡觉,怎么能忘记呢?

当时不是像耳机一样的个人感想,而是在同一个房间的话,没有选择权,而是要公开一起听的共同音乐命运体。

现在也想和根植哥一起在冬天煮生姜茶喝,听宋昌植的"金最佳热门歌曲"


大麻草marijuana


将具有麻醉或幻觉作用的大麻的叶子或花晒干后,像香烟一样卷起来可以抽取的毒品的一种,是原产于中亚的杉科植物,是一年生的草。 在我国,麻布衣自古以来就被用作原料。

问题是,作为衣服的原料,被开发成其他用途,但问题是具有幻觉作用的毒品成分。 与罂粟一起作为民间疗法使用的大麻吸烟在我国还是非法禁止品种。

但是最近我看到联合国委员会决定把大麻和大麻树脂(粘液)排除在危险范畴之外的报道。 因此,预计将对世界医疗用大麻产业产生巨大影响,虽然我个人持反对立场,但很好奇医疗用缓解会如何进行。

当时中学时期,著名歌手曾因吸食大麻而受到剥夺歌手资格、停止歌手资格等制裁,虽然越过国家法律规定的界限的行为明显是违法行为,但也有与吸食大麻无关,被分类为禁曲的歌谣。

因此,在被指定为禁曲的歌手中,因大麻事件而被停止资格的歌手们被误认为是同伙而被误解的歌手们会感到无比委屈。 在发表禁曲的时候,和牵连到大麻的歌手们一起发表了禁曲,所以接下来的误会是不可避免的。

白鹭上乌鸦玩儿的地方,不要去!


禁止曲


禁曲是通过国家的审议及审查,限制播放/唱片发行/演出等的歌曲,寻找其由来后发现是从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开始的。 日本帝国主义到底对韩国的情绪造成了多种危害,是不可饶恕的对象。 看了最近的报道,看到了预计10年内会超过日本出口额的报道。 希望这样的日子早日到来,韩国能够明智地克服岛国日本强占时期的痛苦历史。

光复后,日本帝国主义对歌曲的控制消失,可以说是正式的歌曲复兴期,在6.25前后开始的理念对立中,歌曲的控制重新开始,516军事政变后,军事政权通过广播伦理委员会的审议,检查了大众歌曲的合理性。

"禁曲的设定标准分为政治因素和社会因素。 也就是说,有可能危害国家存亡的歌曲或有可能危害社会美风良俗的歌曲成为了禁止歌曲的设定因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추억 일기 : 초교 이야기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