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 오르는가?
광동 음식, 광동어, 아편전쟁, 손중산, 장개석, 황포 군관학교 등등. 설령 광동제약이 연상되어도 그대의 잘못은 아닙니다.
광동 음식이 유명한 것은 일반인들도 다 아는 사실이고 그 외 신해혁명 발상지로도 유명한 곳.
연말 인사발령에 내가 중국 광조우에 근무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중국 지점이 증가하고 있어서 중국어 자원이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당시 중국 주요 거점인 북경과 장춘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정작 발령은 광조우였고 나는 덤덤했다. 왜냐구? 내가 광조우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문학과 어학을 전공한 사람이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는가?
실제로 내가 아는 광조우는 홍콩 옆에 있고 경제특구인 심천과 가깝고 미국 화교들의 다수가 이 곳 출신이라는 수준의 정보였는데 막상 발령이 나고 보니 지역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기껏해야 홍콩 영화에서 주윤발, 류덕화, 장국영 그리고 예전에는 이소룡과 성룡이 알아들을 수 없는 광동식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정도의 이해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다른 홍콩 영화배우나 가수들도 사정도 비슷했고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력도 마찬가지였다. 즉 광동어는 북경어와는 다른 나라의 언어였던 것이다.
광조우에 근무하러 간다고 하니 지역적인 특색이 뭐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청나라 말기 중국에 판매하려고 인도에서 소량으로 수입하던 아편이 중국 전체로 퍼져 귀족들과 서민들의 소비가 쌍방향으로 급증한다. 결국 차 무역의 적자 해결방안을 마련하려던 영국은 제대로 타결책을 잡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중국과 아편 무역을 의회에서 승인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이해가 가지를 않았는데 결국에는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통과한 이유는 자국 무역 보호였다.
결론은 지금이나 그때나 강대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우방을 만들고 우방을 연합하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하는 성향은 별반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한 역사적인 개방과 아픔을 간직한 광조우에 첫 발을 내딛고자 긴장을 촘촘히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에 입성하는 설렘을 안고 청나라 왕조를 무너트린 신해혁명의 혼과 중국 근대사가 숨 쉬는 광조우를 향했다.
미지의 세계로 첫 발이었다.
광조우 발령을 받고 지점장님한테 전화로 인사를 드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중국 출장에서 홍콩 경유 광조우에 한 번 왔었던 기억이 스쳐갔다. 그때는 홍콩지점 소속 여직원이 업무가 있으면 광조우로 이동해서 업무를 수행하고 다시 홍콩으로 복귀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그 여직원의 업무량이 많아져서 광조우에 상주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같은 지점에 근무하게 될 운명이었다. 씩씩하고 명랑한 아가씨로 전공은 약학이라고 한다.
약학 전공이면 약국에서 약사를 하지 그랬냐고 물었더니 약사도 좋지만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사이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광조우 공항에 도착하자 떨리는 마음으로 입국 수속을 마쳤다. 생각보다 시골스러운 공항시설이었는데 갑자기 오래전 대만에서 입국 수속할 때 트라우마가 생각났다.
더위와 긴장으로 중국말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던 그 시절 애송이 시절.
다행히도 한국의 겨울에 출발해서 그런지 광조우는 온화한 가을 날씨로 느껴졌고 처음부터 광동말로 언어 소통은 어렵겠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나 보다.
빠른 포기는 곧 편안함을 의미한다.
사무실로 택시를 타고 오라는 지점장님의 제안에 따라 공항에 나오면서 택시 승강장 쪽으로 들어가는데 빨간 택시들이 즐비하게 대기 중이었다. 중국 빨간 택시의 기억은 약 5년쯤 북경 출장을 나왔을 때 경험한 적이 있었고 빨간색이 내뿜는 색감은 당시 우리나라 노란색 택시보다 오히려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의 노란색은 황제의 상징이다.
택시를 골라 타고 지점 사무실로 향하는데 해가 저무는 저녁시간 이었고 당시만 해도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았는데 시내로 향하던 택시 기사가 지름길을 선택해서 가자고 한다. 그러라고 대답은 했지만 초행 길인 내가 어디가 지름길 인지 어떻게 알았겠나? 그냥 기사가 지름길로 가자고 하니 나도 그러라고 했을 뿐. 공원 같은 옆길로 가는데 월수공원越秀公园 이정표가 슬쩍 눈에 들어온다.
광조우 온다고 사전 조사를 했더니 광조우를 상징하는 공원으로 중산 기념비와 명대 성벽이 있으며 고대 광조우에 5마리 양들이 곡식을 물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전설을 형상화한 오양석상五洋石像을 기억해냈다. 그럼 시내 쪽 방향은 맞는데 왠지 산길로 접어든 느낌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시내 가는 길 중 메인 도로가 자주 막혀서 우회도로를 이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내막을 알 길이 없는 나는 속으로 내가 외국인으로 보였다면 혹시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나? 괜한 걱정은 잠시 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는데 한 십오분쯤 택시 안에서 야경을 구경했더니 지점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세계무역센터에 도착해서 고층건물을 우러러 보니 쌍둥이 건물로 남, 북 방향으로 나란하게 서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건물로 들어서는데 주변 환경에 비하여 신축건물 이라서 세련된 느낌이 좋았다. 내가 앞으로 4년간 출근하게 될 건물이니 첫인상도 중요하다.
사무실 층까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지점장님이 나를 반겨주신다. 훤칠한 큰 키에 멋진 걸음 자세가 돋보이는 선비 스타일의 상사로 온화한 미소가 인자하게 다가왔다.
이 분과의 광조우 생활은 내 직장생활의 흐름상 초반에서 중반기로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우리가족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기게 된다.
음식은 광조우에 있다는 의미로 움직이는 것은 다 먹는다고 해석하면 큰 차이가 없겠다.
내륙 물산이 풍부하고 해산물도 풍족한 식재료가 즐비하니 다양한 음식들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개항도 빨라서 조계 지역에서는 다국적 음식들이 서로 경쟁하듯 조리가 되었으니 예로부터 음식은 광조우가 가장 발달해 있었던 것이다. 미주 화교의 80%가 광동성 출신들인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이 신대륙을 향해서 빨리 이동을 했는지 알 수가 있었고 그만큼 개방이 일찍 이루어졌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대륙의 중부는 상하이와 남부는 광조우를 중심으로 국제화가 일찌감치 이루어졌다. 결국 두 도시는 중국 개방을 상징하는 양대 축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아울러 광조우는 유명한 CANTON FAIR가 있는데 1년에 2회(봄/가을)가 열리는 데 국제적인 박람회로 참가 규모와 인원도 많고 역사가 100년 이상 되었다고 하니 그 유명세가 짐작이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의 무역상들이 광조우에 와서 일을 보고 식사를 하는데 다양한 식재료, 남방 특유의 향신료 등이 어우러진 맛의 천국을 경험한 후 다시 귀국하여 자기들이 맛본 요리의 추억을 이야기를 했을 텐데. 자연스럽게 광조우는 중국을 대표하는 맛의 고향으로 전설이 되는 것이다.
“다리 달린 것은 책상 빼고, 헤엄치는 것은 잠수함 빼고,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 빼고”
광조우에서는 모든 것을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다.
提起广东,你会想起什么?
广东饮食,广东话,鸦片战争,孙中山,蒋介石,黄浦军官学校等等。
广东的饮食有名,这是一般人都知道的事实,除此之外,这里还是辛亥革命的发祥地。
对于年末人事调动,我没想到会在中国广州工作。
只是,由于中国航线正在增加,需要汉语人才,所以当时预计只有中国主要据点北京和长春,但发令地却是广州,非常淡定。 为什么呢?因为我对广州知之甚少。 专攻中国文学和语言学的人如此之多,别人该如何是好?
实际上,我所知道的广州位于香港旁边,距离经济特区深圳很近,华侨大多都来自此地,但接到命令后,感觉对地区了解不足。
因为香港电影中周润发、柳德华、张国荣以及以前李小龙和成龙都听不懂的广东式汉语。
对地区文化的理解力也是一样的。 也就是说,广东话和北京话是不同国家的语言。
听说要去广州工作,就看看有什么地方特色。 清朝末期,为了向中国销售鸦片,从印度少量进口的鸦片在中国全境扩散,贵族和百姓的消费双向激增。 原本计划制定茶贸易赤字解决方案的英国,虽然制定了妥善的妥协方案,但是现在想想,在绅士之国英国,议会批准中国进行鸦片贸易本身就不难理解,但听起来却以微弱的票差通过,其理由是保护本国贸易。
无论是现在还是当时,强国为了本国的利益建立友邦,联合友邦,保护本国产业的倾向没有多大差别。
带着这样的历史性开放和伤痛,我准备迈出广州的第一步,登上了飞机。
我怀着正式进入中国的激动心情,走向了推翻清朝的辛亥革命灵魂正在呼吸的广州。
这是迈向未知世界的第一步。
接到广州的命令后,我给支店长打了电话。
这样看来,笔者想起了以前出差去中国时,路过香港的广州。 当时在香港工作地点所属女职员有了移动业务廣州,重新回到了香港的时期。
后来听说那个女职员的工作量多了,就常驻广州了,后来就注定要一起工作。 朝气蓬勃,开朗的姑娘,专业叫药学。
我问药学专业是不是应该去药店当药剂师,她说:"虽然药师也很好,但我对现在的生活很满意,以前在塞班岛工作过。"
到达广州机场后,怀着激动的心情办理了入境手续。 机场设施比想象中的还要乡村,但突然想起了很久以前从台湾办理入境手续时的心理创伤。
由于酷暑和紧张,汉语比想象中难得多,是那个毛孩子时期。
幸好是在冬天出发的韩国,感觉是温暖的秋天天气,从一开始想到很难用广东话进行语言交流,心情反而变得舒畅了。
快速放弃意味着舒适。
支店长建议叫我坐出租车到办公室,我走出机场后走进出租车站台,看到红色出租车林立,正在等待。 中国红色出租车的记忆中,大约5年前来北京出差时有过经历,红色出租车带给人的感觉反而比韩国黄色出租车更强烈。 中国的黄色是皇帝的象征。
我选择乘坐出租车去支店办公室,但时间已经很晚了,在接近当时,从机场到市内的路并不远,在去市内的路上,司机说"选择捷径再走",我回答说"是那样",但是怎么知道初行的我哪是捷径呢? 只是因为司机说走捷径,所以我也说了。 在像公园一样的道路上,一眼就能看到越秀公园的里程碑。
象征广州的公园有中山纪念碑和明代城墙,还记得古代光州有5只羊叼着粮食从天而降的传说五洋石像。 那么,市内方向是对的,不知为什么感觉像走山路一样。 后来才知道,在去市内的道路中主路经常被堵,所以选择了迂回道路。
但是,不知内幕的我,内心是否觉得自己是外国人,万一被带到僻静的地方遭殃怎么办? 无谓的担心在稍后得到了解决,但大约过了20分钟就到了支店办公室大楼前。 到达世界贸易中心后,看到建筑物是双子座,向南、向北排列。
舒了一口气走进建筑物,与周围环境相比,这是新建建筑,给人以干练的感觉。 因为是我今后4年上班的建筑,所以第一印象也很重要。
乘电梯到达办公室楼层后进入支行办公室,支行领导欢迎我。 修长的身材和帅气的走路姿势的儒生风格的上司,慈祥的微笑迎面而来。
广州作为从职场初期到中期进入的信号弹,给家人留下了很多回忆。
如果解释为食物在广州,移动的东西都会吃,应该不会有太大的差异。
内陆物产丰富,海产品丰富,食材林立,具备多种饮食发达的条件,而且开港也很快,因此,曹溪地区多国饮食互相竞争,自古以来,饮食就是光照宇最发达的地方。 美洲华侨的80%都是广东省出身,由此可见移民移民对新大陆移动的速度有多快,而且说明开放进程非常早。
从20世纪初开始,中部正式将上海和南部视为以广州为中心、国际化较早的地区。 同时,广州有著名的CANTON FAIR,每年举办2次,春季/秋季举办国际博览会,参展规模和人员众多,历史长达100年以上,其名气可想而知。
世界各国的贸易商来到广州办事吃饭,经历了多种食材、南方特有的香料等融合在一起的美味天国后,再次回国谈起了自己品尝过的美食的回忆,这自然而然地成为了代表中国的美食故乡。
"带腿的除了桌子,游泳的除了潜水艇,飞的除了飞机" 实际上,在广州所有的东西都能吃得津津有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