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로 근무 발령이 날 예정이라고 하길래 나는 속으로 내가 왜 연길에 발령이 날까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당시 나의 근무부서와 별다른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듣게 된 사연은 내가 사무실에서 선배가 진행하는 아침체조 시간에 보조직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선배가 휴무나 출장으로 부재 상황이 생기면 내가 대신 대타로 나와서 체조를 진행하는 모습을 기특하게 보셨던 누군가께서 연길 지점장으로 추천하셨다고 한다.
그럼 나는 연길 지점장 발령을 기쁘게 받아들였을까? 솔직히 기쁨 2/3과 망설임 1/3.
왜냐하면 연길은 당시 중국 근무지 중 오지에 해당되었고 솔직히 시골스러운 분위기도 있었다.
그렇다고 회사의 인사명령을 내가 항명할 수는 없었는데 다만 어떻게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함께 부임할지 아니면 단신 부임할지를 상의를 해야만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와이프 이름에 延자가 들어가는데 연길의 延자와 동일하기에 나의 긍정으로 해석하기를 연길에서 근무하면 吉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당시 우리 아이 2명은 초교를 다니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와이프는 나에게 먼저 연길에 가서 상황을 살핀 후 상의하자고 했는데 당시 와이프는 마침 12년 육아를 마치고 아이들이 혼자 학교생활이 가능한 연령이 되어서 제2 직장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내가 와이프한테 ‘12년 만에 외출’ 이라는 덕담을 건네며 잘 적응할 수 있기를 응원했는데 그 와중에 내가 연길 발령이 난 것이다. 그러니 영락없이 혼자 연길에서 생활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결국 소속 팀장님과 팀원들의 축복 속에서 연길 근무를 위한 준비와 사전 조사에 들어갔다.
30대의 광조우 시절과는 다른 40대의 연길 시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연길은 예상한 대로 아담하고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졌다.
공항도 현대식 보다는 시골 대합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입국 수속을 하는데 입국 담당관이 내 여권을 보더니 한국 사람인 줄 알고 조선말로 이야기를 건네 온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외국에서 예상치 못한 한국어는 친근감보다는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여기는 어디인가?
공항에서 전임이 된 지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여기저기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그렇다. 여기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도이며 해방 전후 독립군들이 활동하던 곳이 아니던가?
윤동주 시인이 살던 곳이며 해란강에서 말을 달리던 선구자와 독립군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
지점장은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던 직장 후배로 서로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약 15분 정도가 걸리는 가까운 공간의 이동 후 도착한 시내 지점 사무실은 도심 한복판 호텔에 있었다. 신식 건물은 아니었지만 고객들의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여직원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남 3명, 여 1명, 기사 1명 등 총 5명과 내가 동고동락을 하게 된 지점 식구들이었다. 직원 중 한족 1명에 조선족 4명인데 한족 1명도 조선족들과 오랜 시간을 같이 한 결과인지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였다.
여기는 연길이다.
전임 지점장은 나와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저녁 비행기로 다른 신설 지점에 갈 계획이라고 한다. 내가 연길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12시 반, 공항에서 시내 지점에 와서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3시, 지점에서 업무에 대하여 인수인계를 하려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저녁식사도 같이 못 할 정도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니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었다. 후임자가 온 지 한 5시간도 안된 것 같은데 전임자는 다른 신설 지점으로 떠나야 한단다.
사정을 들어 보니 그럴 만한 이유로 설명을 하지만 이해가 전혀 안 되는 일정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회사가 설립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이러한 주먹구구식의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하여간 갈 사람은 가야만 하겠지만 새로 온 나는 무엇인가? 완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직원들은 퇴근시간이 되자 하나 둘 사라지고 나는 지점 사무실이 호텔에 있다 보니 사전 예약된 호텔 방 하나를 정한 후 투숙에 들어갔다. 잠이 바로 올 리가 없었다.
다행히 지점 사무실에는 인터넷처럼 사용할 수 있는 국제전화 회선이 있어서 한국과 통화는 문제가 없었기에 호텔 방에서 내려와 오늘 느꼈던 연길의 풍경과 사정을 와이프에게 요약해서 보고하고 아이들과 통화를 하는데 오늘 아침에 헤어진 가족들과 무슨 할 말이 많았겠는가?
가벼운 인사말을 하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를 않는다. 호텔 밖에서는 야외 노래방인지 사람들이 호텔 옆 광장에서 노래를 밤늦게까지 부르는데 공산당 간부들이 하는 노래인지 모르겠는데 늦은 밤까지 노랫소리가 들리는데 잠이 잘 올 리가 없었다. 저녁도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먹었으니 한가롭게 지점 사무실의 주변이나 산책하러 나와서 호텔 주변을 돌아보는데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인적도 많지 않았다. 호텔 1층과 2층은 백화점이고 3층 이상은 사무실과 호텔 방들로 채워져 있어서 사람이 늘 붐비는 요지에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첫날 밤은 그렇게 시끄러운 야외 노래방 덕분에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이 되어서 잠이 들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도이니 조선족들의 중심이다.
연길에서 1시간 정도 차로 가면 윤동주 시인이 다닌 용정중학교가 있고 3시간 정도 더 가면 백두산이 있는 곳이다.
‘백두산’은 그대에게 어떠한 산 인가?
우리 민족의 기원이 담긴 영험한 그 산. 동해물과 같이 마르고 닳도록 부른 애국가에서 그 산.
천지에서 가끔 확인 불명의 생명체를 보았다는 기이한 전설이 내려오는 그 산.
천상에서 살던 환웅이 아버지 환인에게 허락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온 후 곰이 변한 여인을 맞이하여 단군을 낳았으니 그분이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을 세우신 분이다.
그 중심에 백두산은 한 민족을 상징하는 산으로 한국말로는 백두산, 실제로 1년 중 9개월 정도는 정상에 눈이 남아 있으니 ‘흰머리 산’이고. 중국말로는 ‘길게 눈이 쌓인 산’으로 불린다.
우리들 가슴에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떠 올리면 가슴에 울림이 전해오지 않나? 나만 그런가?
그런 백두산이 차로 4시간 거리이니 백두산 신령님과 단군왕검의 기운이 어찌 나를 비켜가겠는가?
나는 백두산 기운을 받은 남자 올시다.
听说计划到延吉工作,我心里很疑惑,我为什么要在延吉工作呢? 因为和我的工作部门没有什么关联。后来听到的故事是,在前辈在办公室进行早操时,作为助理组织员进行活动,如果前辈因休息或出差出现缺勤情况,我代替前辈进行体操时,看到这种情形的某个人推荐我担任延吉支店长。
那么,我是否愉快地接受了延吉支店长的任命呢? 说实话,高兴2/3和犹豫1/3。
因为延吉当时在中国工作,属于偏远地区,说实话也有乡下氛围。
但是,我不能抗命公司的人事命令,只能讨论如何向家人传达并一起赴任还是只身赴任。
有趣的事实是,妻子名字中有延子,但与燕吉的延子相同,所以得出结论说,如果我在延吉工作就是吉祥的。
当时,我们的两名孩子正在上小学。 妻子对我说先去看看情况再商量,但当时妻子正好在12年育儿后,到了孩子们可以独自上学的年龄,开始第二职业没几个月。
我给妻子说"时隔12年外出"这样的话,并支持她能适应环境,但这时我却接到了连路命令。 因此,就生活在一个人在延吉有可能的经过。 结果,在所属组长和组员的祝福中,他们开始了为延吉工作的准备和事前调查。
与30多岁的廣州时代不同,40多岁的延吉时代在等着我。
在飞机上俯瞰的延吉一如预想地出现了雅静的风景。
机场也不再是现代风格,反而给人一种乡下候机楼的感觉。 办理入境手续时,负责入境的官员看到我的护照,以为我是韩国人,用朝鲜语跟他说。
"你是怎么来的?"
在外国意想不到的韩国语与其说是亲切感,不如说是异质感。 这是哪里?
在机场与前任支店长打招呼时,到处都能听到韩语。
是的。这里是延边朝鲜族自治州的首都,解放前后不是独立军活动的地方吗?
这里曾是尹东柱诗人居住的地方,也是在海兰江骑马的先驱者和独立军的后代生活的地方。
支店长很久以前就认识了彼此,作为公司后辈互相问候。
从机场到市内的近15分钟路程后抵达的市内支店办公室位于市中心的酒店。 虽然不是新式建筑,但人们还是很接近。
一进办公室,女职员就热情地迎接。 他们是男3名、女1名、司机1名等共5名和我同甘共苦的支店家属。职员中有1名汉族和4名朝鲜族,也许是1名汉族和朝鲜族长时间在一起的结果,用韩语沟通起来没有太大的不便。
这里是延吉。
前任支店长和我一起吃午饭,然后乘坐晚上的飞机去其他新设支店。 我到延吉的时候是下午1点半,从机场到市区吃了午饭,下午3点半,为了接手业务,正式开始聊天,但日程安排得连晚饭都不能一起吃。我心里想'怎么会有这样的公司呢'。 来到延吉不到5个小时,但前任者却要前往其他新设地店。
听完情况后,虽然说明了原因,但是看到以完全无法理解的日程进行的,公司成立已经很长时间了,但是还不知道是否还在进行这种粗枝大叶式的交接。
反正要去的人得去,新来的我是什么? 完全落到了洛东江鸭蛋的处境。
员工们一到下班时间就一个个回家,因为办公室在酒店,所以选定了一个预约好的酒店房间后,就住进了酒店。 不可能马上就睡着。
幸运的是,办公室里有可以使用的国际电话线路,与韩国通话没有问题,所以从酒店下来后,把今天感受到的延吉的风景和情况归结为妻子,与孩子们通话后,今天早上与家人分别的家人有什么话要说呢?
轻声问候后躺下,却睡不着。 在酒店外,不知是露天练歌房还是人们在酒店旁的广场上唱歌到深夜,不知道是不是共产党干部唱的歌,但直到深夜都能听到歌声,根本不可能睡着。 晚上也在附近的餐厅简单吃了点,所以悠闲地来到支店办公室周围或散步,在酒店周围转了一圈,可能是因为深夜,人也不多。 酒店的1楼和2楼是百货商店,3楼以上都是办公室和酒店房间,人总是拥挤在酒店,真是万幸。
第一天的夜晚,多亏了那么嘈杂的露天练歌房,睡得稀里哗啦,到了凌晨才睡着。
这里是延边朝鲜族自治州的首都,是朝鲜族的中心。
延吉一个小时左右车,诗人尹东柱在就读的龙井中学,3个小时左右,再走的是白头山。
‘白头山’任何在你的心里呢?
蕴含着我们民族起源的灵验的那座山。 一起唱的国歌的山。
从天池中偶尔看到不明生命体的奇异传说下的那座山。
生活在天上的桓雄在得到父亲的许可后来到地上,迎接熊变的女人并生下了檀君,他是我们民族最早的国家高朝鮮的祖先。
白头山在9个月左右有雪。 中国语被称为"积雪较长的山"。
我们心中的白头山,提高的话,会传来共鸣了呢? 只有我是这样吗?
4小时距离的白头山,白头山的神灵是檀君吗?
我是白头山的兒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