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에 자전거 가게가 있었다. 그때는 ‘자전거포’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舖를 붙이면 전문성이 살짝 들어간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반 친구의 형님이 하시는 가게였는데 당시 자전거포는 나름 성업이었다.
일단 자전거도 주요 이동수단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자전거로 통학을 하거나 자전거를 아끼는 친구들은 정기적으로 깨끗하게 세거洗車를 하면서 자신들의 애마를 챙겼다.
빵구도 자주 났는데 아마도 당시에 고무튜브의 품질이 좋지 않아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일반 자전거들은 빵구가 잘 나지 않는 것을 보면 품질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자전거포의 주요 역할은 ‘자전거 바람 넣기’와 ‘빵구 때우기’ 그리고 '자전거 구매하기'인데 앞 1,2번은 자주 있었던 반면 3번 구매는 부모님들을 조르거나 좋은 성적을 옵션으로 내세우고 학업성적을 올리려 노력했던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자전거 바람 넣기는 탑승자 자신이 펌프를 가져다 바람을 빵빵하게 넣고 다니면 기분도 함께 팽창한다.
빵구는 기술이 들어가는 경우인데 자전거포 주인들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빵구는 적당하게 잘린 고무 쪼가리를 본드로 덧붙이는 형태로 마무리가 되는데 당시 솜씨가 좋은 장인들이 있었고 중/고교 학교 근처에 두 개의 자전거포가 있었다면 경쟁적으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물론 자전거의 제동력도 좋아야 하는데 당시 앞, 뒤 바퀴에 성능이 좋은 브레이크를 장착하고 두 바퀴에 바람마저 빵빵하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길 이어도 좋고 아니라도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 올시다.
어느 좋은 봄날.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면 자전거가 있는 친구는 자신의 자전거로, 없는 친구는 자전거포에 일일 대여를 한다. 지금 기준으로 환산하면 1만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전거포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중학생 체격에는 성인 자전거가 어울리는데 간혹 대여용 성인 자전거가 없으면 초등생용 미니 자전거를 대여해서 근교로 하이킹을 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성인 자전거야 정상적인 속도와 체력으로 전진이 가능하지만 초등생용 자전거가 성인용을 따라가려면 일단 힘이 든다. 같은 노력에 비해서 적은 회전력이 생산되기 때문인데 성인 자전거족들이 배려 차원에서 속도를 줄이거나 앞선 장소에서 잠시 기다려 주는 센스를 필요로 한다.
만일 이러한 배려가 없다면 한마디로 똥을 싸도록 발 품을 팔아야 한다.
그날도 내 기억에 5명 정도가 햇볕 좋은 교외로 출발을 했는데 기분 좋은 바람은 같이 간 우정들의 하이킹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아동용 자전거를 대여한 주인공 친구를 위하여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땀을 식히면서 기다려주고 다시 멀찌감치 앞서 가다가 기다려 주고를 반복했는데. 앞으로 살면서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뒤쳐지는 친구들을 기다려주고 다른 어려움으로 한 차례 쉬고 있는 친구를 함께 기다려 주며 즐거운 인생을 같이 맞이해야지 않겠는가?
우정은 기다림 일 수 있기에.
중학교 시절 스낵 코너가 처음 시내에 들어왔다.
스낵코너는 다양한 스타일의 분식, 중식, 한식을 한 곳에서 골라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음식 백화점인데 그때는 매우 선진 스타일의 맛 집 집합체였다.
지금이야 배달음식이 정착되어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국적별 분야별 음식이 단시간 내 도착하지만 당시 배달음식은 중국집 정도였다. 일반적인 중국집은 배달의 매상이 아마도 전체 매상의 2/3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지금의 백화점 음식코너 같은 분위기인데 당시에는 센세이셔널한 느낌이었다.
여기저기서 주문을 받는 소리와 음식이 나오는 소리가 버물려졌고 음식을 주문자가 직접 자신들이 주문한 음식을 가지러 가는 스타일도 획기적이었다. 당시 음식점 서비스는 식당 종업원이 가져다주는 형태가 통례였던 시절이다. 음식의 맛은 그다지 인상에 남았지 않은 것을 보면 맛은 별로 신통치 않았나 보다.
그러한 분위기. 새로운 분위기가 맛보다 강렬하게 남은 사례이다.
역시 식당은 맛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그대는 돈가스에 대한 추억이 있는가?
중학생 시절에 처음 접했던 돈가스. 그런데 왜 이름이 돈가스 일까?
돼지고기를 써서 ‘돈’은 알겠는데 ‘가스’는 도대체 어떤 연유일까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은 7세기경 천황이 불교 율법의 영향으로 약 1,200년 동안 육식을 금지해 오다가 서양의 문화가 일본에 유입되면서 육식을 권장을 위하여 개발된 일본식 커틀릿이었다.
그래서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 도쿄 긴자銀座의 한 일본인 요리사가 처음 만들면서 커틀릿 발음이 일본식 가쓰레쓰 カツレツ 로 불리다가 줄어들어 かつ 로 개명된 서양에 뿌리를 둔 일본식 튀김음식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은 선진 문명에 대한 빠른 도입과 자체 응용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마도 섬나라 특성상 다문화를 접하지 못했던 일본인들의 숨어있는 민족성들이 음식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돈가스를 우리가 한 번 맛을 보자고 불친들과 시식코너에 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돈가스가 나오는 순서는 크림수프가 나오면 돈가스를 튀겨서 준비하는데 중학생이 보기에 상당히 큰 접시 위에 돈가스 2-3조각과 양배추를 촘촘하게 썰어서 만든 사라다 위에 마요네즈를 얹고 밥도 양은 많지 않지만 먹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챙겨져 나온다.
즉, 돈가스와 샐러드와 백반이 접시 화면을 3 등분한다.
그런데 돈가스를 처음 먹으러 가는 불친이 있었다. 나의 장난꾸러기 악동 모드가 발동을 걸었다.
크림수프가 나오고 다 먹을 때쯤 내가 말했다.
“돈가스라고 와서 먹어봤더니 역시 서양 놈들 음식은 먹 잘게 없구나. 가자!”
“엉. 이게 다야? 아직 배도 한참 고프구만.”
“야. 가자. 가다가 빠나나빵 먹고 가자.”
우리는 미리 입을 맞춘 덕분에 자리에서 하나, 둘 일어나 집에 가자고 하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같이 일어난 불친도 별다른 이의 없이 집에 가려고 같이 일어났다.
시식코너 입구를 나오려던 순간 안에서 외침이 들여온다.
“학생들? 어디가? 돈가스 먹고 가야지!”
우리들의 ‘불친 놀리기’ 놀이는 여기에서 중단되었고 우리들은 ‘와’하며 웃음보따리가 터졌다.
그 날 따라 돈가스 맛이 하늘로 날았다.
从学校回家的路上有一家自行车店。 当时被称为"自行车炮"。
一般来说,如果加上舖的话,会觉得有点专业性。
后来才知道,这是同班同学的哥哥开的店,当时自行车店生意还不错。
首先,自行车作为出行的主要工具,占据着重要的位置,骑自行车走读或者爱护自行车的同学都会定期清点洗車,照顾好自己的爱车。
面包也经常出炉,推测可能是因为当时橡胶管的质量不好。
现在一般自行车都不怎么出面包车,我认为品质已经相当好了,自行车铺的主要作用是"给自行车充气"和"给面包车补气"以及"购买自行车",前1、2次经常出现,而前3次是缠着父母或把好成绩作为选项努力提高学习成绩的回忆。
给自行车充气是乘坐者自己拿着水泵充气的话,心情也会一起膨胀。
面包店采用的是技术,是自行车铺老板的主要收入来源。
面包区以适当切割的橡胶片作为粘合剂收尾,如果当时有手艺好的工匠,而且初中/高中附近有两家自行车店,那么就会竞争性地提供优质的服务。
当然,自行车的制动力也要好,如果当时的前后轮都安装了性能好的刹车,而且两轮的风也很大,那就再好不过了。
这是一段路途上也好,不是也好地时期地故事。
一个好春天。
周六上午下课后,有自行车的朋友用自己的自行车,没有自行车的朋友用自行车包每日出租。 如果换算成现在的标准,估计是1万韩元左右,作为自行车铺的主要收入来源之一,中学生的体格适合成人自行车,但偶尔如果没有租赁用成人自行车,就会发生租借小学生迷你自行车到近郊徒步旅行的情况。
成人自行车可以以正常的速度和体力前进,但小学生用自行车要想跟上成人用自行车,首先会很费劲。 因为与同样的努力相比,可以生产出较少的旋转力,所以成人自行车族为了照顾需要减速或在前面场所暂时等待的Sense。
如果没有这种关怀,一句话,就要跑腿拉屎。
那天我记得有5个人出发去阳光明媚的郊区,心情好的风让一起去的UJUNG们的徒步旅行更加光彩照人。 为了租借儿童用自行车的主人公朋友,先到的朋友们一边冷汗一边等待,然后又走在最远的地方,反复等待。 以后不管遇到什么困难,都要等待落后的朋友,一起等待因其他困难而休息的朋友,一起迎接快乐的人生,不是吗?
友情也许就是等待。
中学时期,快餐店第一次进城。
小吃区是一类食品百货商店,各种风格的面食、中餐、韩餐可以一选一,那时是一个非常先进的特色美食集聚区。
现在外卖已经稳定下来,只要打个电话,所有国籍、各领域的食物都会在短时间内到达,但当时外卖只有中餐馆。 据了解,一般的中餐馆,外卖的营业额可能超过总营业额的2/3。
入口处就像现在百货商店的饮食柜台一样,当时给人一种轰动的感觉。
到处都有接单的声音和食物的声音,订餐者亲自去拿自己点的食物的风格也具有划时代的意义。 当时餐厅服务是餐厅服务员带来的形态是惯例的时期。 食物的味道并没有给人留下深刻的印象,看来味道不是很新鲜。
那种气氛。 这是新氛围比味道更浓烈的事例。
果然餐厅要用味道来决胜负。
你有对炸猪排的回忆吗?
初中时第一次接触到的炸猪排。 但是为什么叫炸猪排呢?
因为用猪肉,所以知道"钱",但很好奇"煤气"到底是什么原因。
后来才知道,日本在7世纪左右,天皇受佛教律法的影响,禁止了约1200年的肉食,但随着西方文化传入日本,为了鼓励肉食而开发的日式切糕。
所以19世纪末明治时代,东京银座銀座的一位日本厨师首次制作,Curtlet的发音从日式垃圾カツレツ开始减少,改名为かつ,是一种根植于西方的日式油炸食品。
无论是当时还是现在,日本对先进文明的快速引进和自身应用能力都是无人能及的。
也许是因为岛国的特性,日本人没有接触到多文化的隐藏的民族性反映在饮食上。
我们为了尝尝那样的炸猪排,和火热的朋友们一起去了试吃柜台。
我们所知道的炸猪排上来的顺序是奶油汤出来后炸猪排,在中学生看来,在相当大的盘子上放上2-3块炸猪排和把卷心菜切细的沙拉上放上蛋黄酱,虽然饭量不多,但为了让人感觉吃到了。
即炸猪排、沙拉和家常套餐将盘子画面分成三等份。
但是有一个第一次去吃炸猪排的不亲。 我的淘气鬼恶童模式发动了。
奶油汤出来后快吃完的时候我说。
"来吃炸猪排,果然西方人的食物很少。 走吧!"
"嗯,这就是全部吗? 现在肚子也还很饿呢。"
"喂。走吧。路上吃完香蕉面包再走吧。"
由于我们事先统一了口径,所以从座位上接二连三地站起来说"回家吧"时,脸上带着不情愿的表情一起起床的"不亲"也没有什么异议,只是想回家就一起起来了。
想从试吃柜台入口出来的瞬间,从里面传来了喊声。
"学生们?去哪儿? 吃完炸猪排再走!"
我们的"玩火"游戏就此中断,我们"哇"地爆发出笑声。
那天炸猪排的味道飞上天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