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고교 이야기 11

by 제이킴

음악 경연대회


고교시절 아름다운 음악의 앞선 기억은 '고교 이야기 9편'을 살펴보면 ‘칸초네의 추억’으로 아실 테고 두 번째 음악 추억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등학교에 마에스트로 음악 선생님이 계셨다. 성악 전공으로 알고 있는데 교실을 울리던 발성의 공명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분의 주장으로 선택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반 대항 음악 경연대회를 한단다. 가뜩이나 수학에 눌린 내 정서와 감각 중 청각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반장한테 내가 지휘를 해 보고 싶다고 제안을 했다. 고맙게도 반장의 지원 하에 시작했는데 지휘를 배워 보기를 했나? 막상 하려니 이런 게 바로 ‘맨땅에 헤딩’이다.

지휘야 테레비에서 보았던 ‘카라얀’이나 명지휘자를 흉내를 되면 되려니 했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피아노 반주자를 구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쉬웠다. 친구 사촌 누나를 섭외해서 반주와 합창에 대한 4-5회 연습과 경연 대회 전 날 리허설도 했는데 급우들과 연습한 외국민요나 반주자의 피아노 실력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작 지휘를 한다고 나선 내가 문제였다. 과연 대회 날 잘 해낼 수 있을까?

드디어 설레는 마음으로 날은 밝았고 경연대회가 열리는 강당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무대 맞은편 강당에 자리한 전 학년, 아니다 당시에는 우리가 1회였고 1학년이라서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우리 1학년이 전부였다.

지휘봉은 아침에 아버지가 쓰시던 은 젓가락을 치약으로 깨끗하게 닦아서 준비를 했고 지휘자용 흰 장갑의 검지 손가락 부위에 비밀스러운 구멍을 뚫어 젓가락을 끼워서 길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우리 반 보다 한차례 앞선 다른 반 지휘자는 어디서 구했는지 정식 지휘봉으로 참가를 하는 게 보였다.

아차! 싶었다. 그러나 이미 다른 지휘봉을 구하기에는 불가항력이니 나는 나대로 은 젓가락으로 최선을 다했다. 지휘 도중에 젓가락이 빠져나갈까 봐 엄지와 검지에 신공을 모았다.

우리 반 급우들의 노력과 반주자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화음은 순수한 감성과 수려한 피아노 선율을 만나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 냈다. 이미 다른 반의 경연대회 참가자 노래와 더 이상의 비교는 의미가 없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으로 다가왔고 경연대회가 끝나자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느낀 긴장과 급우들과 함께 만들어 낸 보람과 허탈감으로 폭풍의 눈물이 쏟아졌다.

최소한 나만이 아닌 우리들의 노력들의 결정체이었기에.


고2+고3 짝꿍 (1)


고2에 올라가서 하락하는 성적을 탓하기보다는 다시 전환점을 찾아야 했다.

물론 학창 시절에 제일 중요한 덕목은 성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행복이 성적 순은 아닐 진데.

문과를 선택한 이유도 다분히 수학 성적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누구를 탓하랴?

짝꿍이 정해졌는데 아버님이 영어 교수님 막내 아드님 되시겠다.

형이 두 분에 누나도 두 분 그리고 짝꿍 그리고 막내 여동생의 구성인데 잘 지켜진 남녀 순서도 환상적인 순열로 배치가 되었는데 마치 영어 악센트처럼 강약 조절이 잘 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유쾌한 녀석이 영어 공부를 안 한다. 내가 수학 공부를 안 하는 것처럼.

원인을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대답하기를 아버지도 영어 교수, 형도 영어과 조교, 누나도 영어 선생님 등 집 식구들의 인생이 영어와 너무 세게들 연관이 되어 있다가 보니 어릴 적부터 질겁을 한 경우였다. 어쩜! 내가 수학을 멀리 하게 된 이유와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네가 영어가 멀어지듯이 내가 수학이 멀어졌으니 동병 상병相病 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이 친구와 함께 나의 고2+고3을 관통한다.

크고 작은 추억은 추억일기를 통해서 풀어 내릴 테니 잘 살펴주시옵기를.


사랑의 매


고2 문과의 특성상 수학을 잘하는 친구와 못하는 친구가 극명하게 갈린다.

물론 나는 후자였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있었다. 성적이 신통치 않아도 수학 시간을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수학을 내 수준만큼 어려운 경지로 해석하던 급우가 수학 시간에 딴짓을 하다가 선생님에게 적발이 되어서 교탁에 나와서 빳다를 맞게 되었다.

당시 수학선생님은 20십대 후반 아니면 많아야 30대 초반으로 기억되는 열혈남아님께서 내가 보기에 온 힘을 다해서 그 녀석 엉덩이를 후려갈겼다.

잘 된 빳다의 소리는 엉덩이에 작렬하는 소리가 틀리다. 소리가 다르다.

처음 몇 대는 잘 받아내던 녀석이지만 한 다섯 대가 넘어가자 몸의 중심이 흔들린다.

그러더니 추가로 몇 대가 계속되자 몸을 뒤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선생님의 빳다존을 벗어났다. 선생님도 이미 정상적인 체벌이 아닌 선도를 빙자한 본인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 임마. 똑바로 안서? 똑바로 잡아!”

“선생님. 저는 더 이상 못 맞겠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액션씬에서 주인공이 죽느냐 사느냐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녀석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선생님. 이것은 사랑의 매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제자를 훈계하려는 매가 아닙니다.”

상황이 그리 되어가면 체벌의 원인과 중요성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출발 단계에서부터 흔들린다.

이 친구의 진솔한 반항으로 선생님의 탈선된 흥분은 제자리로 찾아 들어갔고 사태는 조기 종영이 되었다. 이 녀석의 용기와 정당한 반항을 받아들인 선생님의 포용력에도 우리들은 내심 감탄을 했다.

정의와 진실은 살아있었다.



音乐比赛


高中时期美丽音乐的先记,从《高中故事9篇》来看,应该是"Canchone的回忆",开始讲述第二个音乐回忆。

高中时有一位指挥家音乐老师。 原以为是声乐专业,但响彻教室的发声共鸣至今仍留在耳边。 也许是因为他的主张才被选中的,但据说举行了反对音乐比赛。 我的情绪和感觉本来就被数学压垮了,感觉听觉被打通了。

我向班长提议我想指挥一下。 谢天谢地,是在班长的支持下开始的,你学过指挥吗? 真正开始做起来,这样的就是"向大地头球"。

本以为模仿指挥家电视上看到的"卡拉扬"或名指挥家就可以,但这并不容易。 而且还要找钢琴伴奏者,这个过程相对来说比较简单。 邀请朋友表姐进行了4-5次伴奏和合唱的练习和比赛前一天的彩排,和同学们一起练习的外国民谣和伴奏者的钢琴实力没有任何问题。 真正出面指挥的我才是问题所在。 究竟能否在大赛当天做好呢?

终于,怀着激动的心情,天亮了,进入了举行比赛的礼堂。

我们是在舞台对面礼堂的全年级,不是,当时我们是第一届,因为是1年级,所以就算是全校学生,也只有我们1年级。

指挥棒早上用牙膏擦干净了父亲使用的银筷子,在指挥家用白手套的食指部位打上秘密的洞,努力把筷子夹起来,看起来更长。

不知道是从哪里找来的比我们班先一步的其他班指挥家,看到他们作为正式指挥棒参加。

真是的!我想起来了。 但是已经很难找到其他的指挥棒,所以我用银筷子尽了最大的努力。 怕指挥途中筷子漏掉,将神功集中到了拇指和食指上。

在我们班同学的努力和伴奏者的支持下创造的和声,融合了纯真的感性和优美的钢琴旋律,形成了美丽的和谐。 已经与其他班级的参赛歌曲进行进一步的比较没有意义。

我感到无比的满足感,比赛结束后,我人生第一次在舞台上感受到的紧张和和同学们一起创造的意义和空虚感让我流下了暴风眼泪。

至少不只是我,而是我们努力的结晶。


高2+高3搭档(1)


与其埋怨高二成绩下滑,不如重新找回转折点。

当然,学生时代最重要的品德是成绩。 但是幸福并不是成绩的顺序。

选择文科的理由中数学成绩起到了决定性的作用。 怪谁呢?

已经定好搭档了,爸爸要成为英语教授的小儿子了。

两位哥哥、两位姐姐、搭档和小妹妹组成,遵守的男女顺序也排成了梦幻般的排列,可以说像英语重音一样强弱调节得很好。

但是这个快乐的家伙不学习英语。 就像我不学数学一样。

悄悄地问了一下原因。 结果,这位朋友回答说,父亲也是英语教授,哥哥也是英语系助教,姐姐也是英语老师等,家人的人生与英语有很大的关联,所以从小就很害怕。 怎么办!虽然和我远离数学的理由有些差异,但感觉不是很远。 就像你英语越来越差一样,我的数学越来越差,应该叫同病相怜病吗?

反正和这位朋友一起贯穿我的高二+高三。

大大小小的回忆会通过回忆日记来解开,希望大家好好看。


爱的体罚


高二文科的特性上数学好的朋友和数学不好的朋友截然不同。

当然我是后者,但我还是有自尊心的。 即使成绩不理想,也没有忽视数学课。 但是有一天,将数学解释为和我水平一样难的同学在数学课上做别的事情时被老师揭发,在讲桌上被拒绝。

当时的数学老师不是20岁后半期,就是最多30岁出头的热血男儿,在我看来,用尽全力打了那个家伙的屁股。

好棒的声音是屁股炸裂的声音。 其声音不同。

虽然刚开始几代都是很能接受的孩子,但是过了五代后,身体的重心开始动摇。

接着又继续了几下,他开始扭动身体,最终离开了老师的紧身区。 老师已经不是正常的体罚,而是以引导为借口,表现出了自己的暴力性。

"你这家伙,站稳了? 好好抓住!"

"老师,我再也打不下去了。"

看着这一幕的我们屏住呼吸,等待着动作戏中主人公是死是活的结局,这小子用稳重的声音说道。

"老师,这不是爱的鞭打。 老师不是要教训学生的鹰。"

如果情况发展到这种地步,体罚的原因和重要性从出发阶段就开始动摇。

由于这位朋友的真诚反抗,老师的脱轨兴奋回到了原位,事态提前结束。 对于这个家伙的勇气和老师接受正当反抗的包容力,我们内心也赞叹不已。

正义和真实依然存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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