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대학 이야기 3

by 제이킴

칼국수


대학교 1학년 어느 좋은 봄날.

과대표 형과 몇 명 여동기들도 함께 칼국수를 먹으러 시내로 향했다.

그런데 누군가 제안을 했다. 내가 했었나? 식당에서 중국말만 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음식값을 내기로. 1학년 초이므로 중국어 구사능력이 도진개진 시절이다.

중국어 중국문학과 출신인 우리들은 어설픈 중국어에 식대를 걸었다.

주문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주문을 받으러 온 아가씨가 난데없는 중국어 구사자들을 보더니 당황한다. 어차피 우리들은 작심을 하고 중국어만 사용했으니 문법과 구사 어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국말 단어 몇 개로 우리들끼리는 의사소통이 가능했기에.

여 종업원이 주문 진행은 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자 안절부절. 지원병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가 주문판에 적힌 메뉴 음식 글자를 가르치며 손가락으로 주문 수량을 전하자 아가씨는 안도의 표정으로 주방을 향한다. 식사야 어차피 ‘중국어로만 말하기’ 놀이의 일환이었으니 맛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식사 시간이니 맛있게 먹지 않았을까 싶은데.

또 다른 문제는 계산할 때 생긴다. 우리가 먹은 칼국수 값을 종업원이 다시 와서 받아가야 하는데 멀리서 중국어로 희희낙락 거리며 칼국수를 먹고 있는 우리들을 보더니 난감해한다.

그러나 어쩌겠나? 우리가 계산을 하고 일어나야 다음 손님이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 아닌가?

멀리서 걸어오는 아가씨를 보고 우리들은 더 큰소리로 중국말을 시작한다. 완전 고의성 소란이다.

아가씨가 테이블 근처로 오더니 우리가 먹은 칼국수 숫자인 5개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이때 작동한 나의 장난기. 오백 원을 아가씨 손에 쥐어 주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가씨 얼굴은 빨개지고 말은 안 통하고 계산금액은 터무니없고 동시다발적인 상황에 적응이 안될 수밖에. 결국 우리는 끝까지 중국말로 마무리하며 정상적인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섰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거리에서 오랫동안 참았고 터지는 웃음으로 한참 동안 배꼽을 잡았다.

우리는 그때 식대로 중국어를 걸었는데 당신이라면 지금 무엇을 걸라요?


볼털


지금이야 사회인으로 그나마 단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1 모습은 현재와 많이 달랐다.

일단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서 '나만의 개성 찾기'에 나섰다. 어차피 양아치 같은 장발에 청바지만 주구장창 입고 다니던 나는 색다른 결론에 다다른다.

내가 유전학적으로 털이 많은 다모인多毛人인데 어릴 적에는 고민도 많았지만 내 정체성을 알리는 도구로 활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거울을 보고 연구를 하다가 이른바 볼에 난 털을 기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인문대 볼털’이다.

지금 생각하면 엽기적인 인문대생으로 불릴 만한 황당함의 극치였으나 당시 한 번 '나만의 개성 찾기'에 나선 나로선 최상의 선택으로 여기며 볼털을 기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꼿꼿하게 출발하던 볼털이 일정 길이를 넘어서자 꼬부랑 해지면서 고추 털과 같은 형태로 자란다. 안 길러 봤거나 안 본 사람들은 상상이 힘들 것이다.

나중에 볼털을 기르고 찍은 사진을 찾아서 별도로 올릴 테니 그때 감상하기로 하자.

당시 볼털을 기르기 시작하자 집에서도 별일이라며 훈계의 말씀이 있을 법한데 무사히 넘어갔다.

드디어 목표치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하면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도 없을 텐데 그때는 뭐! 나만의 개성이라고 넘어갔으니 사람은 분명 자의적인 해석으로 자신을 미화하려는 속성이 있는 동물임이 확실하다.

볼털이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하면 오백원. 아니 훗날의 후속 편과 사진을 기대하시라.


파랑새


이문세의 파랑새가 먼저 인지 내가 청바지를 즐겨 입기 시작한 게 먼저 인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청바지를 즐겨 입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왜냐구? 일단 질기다. 잘 안 떨어진다. 그리고 세탁을 자주 하지 않아도 표시가 덜 난다. 아니 안 난다. 청바지 특성상 세탁을 할수록 푸른빛이 그윽해진다. 오래 묵은 좋은 술 같은 느낌이라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려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입을 바지가 별로 없었다. 특히나 교복자율화가 된 고3 시절부터 단벌 또는 2벌로 버티던 내가 아닌가. 그러니 청바지에 애정이 없을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대학시절 별명 중 내가 제일 듣기 좋아라 했던 것이 ‘파랑새’였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를 그리워하는 노래도 있지만 나는 나대로 청바지에 내 청춘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청바지도 시대별 스타일별 변천사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판타롱 스타일로 허벅지 쪽보다 종아리 쪽 폭이 더 넓은 나팔바지 스타일이었고

고교 시절에는 일자 바지 스타일이었는데 당시 일부러 청바지 허벅지 부위를 잘라내고 다른 색상의 청바지 천으로 덧대어 입는 것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나는 어려서 그러한 시도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불친 중 한 명이 아마도 대학생 형들이 입다가 전수한 그 당시 최신 유행의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내가 참 많이 부러워했다. 나의 청바지에 대한 사랑이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는 기억이다. 최근에 가족들에게 생일선물이나 기념일에 선물 구입에 대한 부담도 줄이고 나만의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선물에 대한 나의 바램을 한 가지로 강조했다.

청바지나 청 칼라가 들어간 바지든 남방이든 자켓이든 청바지 스타일로 선물을 해달라고 말이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한 차원이 아니다. 사실 청바지나 남방도 백화점 세일이든 대형 의류 마트에 가면 1-2만 원 제품들도 흔하다. 나는 단지 나의 중년의 정체성을 청바지에서 찾기로 했을 뿐이다.

사실 이번 생일에서도 가족들이 나의 바램을 들어주어 근사한 청바지를 선물로 받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선물을 입고 파랑새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한 파랑새가 되어 저 하늘로 날아가고프다.



刀削面


大学一年级的某个好春天。

科大哥和几位女同学也一起赶往市区吃刀削面。

但是有人提议了。 我做过吗? 在餐厅只说中文,说韩语的人付餐费。 因为是1年级初,所以是汉语运用能力不断进步的时期。

毕业于汉语中国文学系的韩国把饭桌放在了蹩脚的汉语上。

订单就会出现问题。 前来接单的姑娘看到突如其来的中国语使用者,不禁惊慌失措。 反正我们下定决心只使用汉语,语法和运用词汇并不是问题。 因为用几个中文单词,我们之间可以进行沟通。

女服务员没有点菜,时间一长就坐立不安。 现在正是需要志愿兵的时候。

我一边教着菜单上的菜单上的食物字,一边用手指传达了订购数量,小姐以安心的表情走向了厨房。 吃饭反正是"只说中文"游戏的一环,所以对味道没什么记忆。 现在是吃饭时间,应该吃得很香吧。

另一个问题在计算时出现。 我们吃过的刀削面钱需要服务员再来拿,但是看到我们远远地用中文欢欢喜喜地吃着刀削面,感到非常为难。

但又能怎样呢? 我们是不是该结完账起来,才能让下一位客人占座?

看着远方走来的姑娘,我们更大声地讲起中文来。 这完全是故意的骚乱。

小姐来到桌子附近,向我们伸出了我们吃的刀削面数字5个手指。

这时启动的我的调皮劲。 把五百块钱放到小姐手里,大家都从座位上站了起来,小姐脸红了,语言不通,结账金额离谱,同时多发的情况,难免不适应。 最终,我们以汉语结束了最后一场比赛,算了一笔正常的账,走出了餐厅。

我们走出饭店,在街上憋了很久,笑得合不拢嘴。

我们当时按仪式打中文,如果是你,现在打什么?


腮帮子


虽然现在还算是社会人,保持着端庄的样子,但是1对1的样子和现在有很大的不同。

首先,随着春天的过去和夏天的到来,开始"寻找属于自己的个性" 反正留着像流氓一样的长发,只穿牛仔裤的我,得出了与众不同的结论。

我是遗传学上多毛的多毛人,小时候虽然有很多苦恼,但是决定把它作为宣传我认同感的工具。

看着镜子进行研究后,决定留所谓的脸颊上的毛。

因此诞生了"人文大学的脸颊毛"。

现在回想起来,当时被誉为猎奇的人文大学学生的荒唐之极,但对于当时"寻找属于自己的个性"的我来说,这是最好的选择,开始蓄起了腮毛。

最终,原本笔直出发的脸颊毛超过一定长度后变得弯曲,成长为与辣椒毛相同的形态。 没养过或没养过的人很难想象。

以后会留起腮毛,找到拍的照片单独上传,到时候再欣赏吧。

当时开始养腮毛后,家里应该也有训斥的话说"没什么大不了的",但最后安然无恙地过去了。

终于达到了目标值。 现在回想起来,那时候应该没有不好看的模样。 既然已经过渡到属于自己的个性,那么人肯定是具有用任意解释美化自己的属性的动物。

想知道脸颊上的毛怎么样的话,五百韩元。 不,请期待以后的后续篇和照片。


青鸟


记不清是李文世的青鸟先开始,还是我开始喜欢穿牛仔裤。

没什么。不怎么重要。 我记得我从中学时期开始就喜欢穿牛仔裤。

为什么?首先很硬。 不容易掉下来。 而且即使不经常洗涤,也不会太明显。 不,没有。 牛仔裤的特性是越洗越绿。 如果是陈年好酒的感觉,会有助于理解吗?

而且没有多少裤子穿。 特别是从校服自律化的高三时期开始,我就只穿一件或两件支撑着。 所以对牛仔裤不可能没有感情。

难怪大学时期的外号中我最喜欢听的就是《青鸟》。

虽然也有怀念适合牛仔裤的女生的歌曲,但我认为牛仔裤里蕴含着我的青春。

牛仔裤也有过不同时代、不同风格的变迁史。

中学时期是Fanta Long风格 小腿宽度比大腿更宽的喇叭裤风格

高中时期是一字裤风格,当时还流行故意剪掉牛仔裤大腿部位,用其他颜色的牛仔裤布套上穿。

我小时候不敢尝试这种尝试,但其中一位父亲穿着可能是大学生哥哥们穿过的当时最新流行的牛仔裤,我非常羡慕。 这是间接证明我对牛仔裤的热爱的记忆。 最近,为了减轻生日礼物或纪念日购买礼物的负担,并珍藏为属于自己的回忆,我向家人强调了自己对礼物的愿望之一。

无论是牛仔裤、有牛仔领的裤子、衬衫还是夹克,都要以牛仔裤的风格作为礼物。

反而觉得给家人带来了负担吗?

不是那样的层面。 事实上,无论是牛仔裤还是南方,无论是百货商店打折,只要去大型服装超市,1~2万韩元的产品也随处可见。 我只是决定从牛仔裤中寻找我中年的身份。

事实上,在这次生日,家人也满足了我的愿望,收到了不错的牛仔裤作为礼物。

此时此刻也穿着那件礼物,化作一只青鸟在写作。

我以后也想成为永远的青鸟,飞向天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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