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0일 공식적인 입사로 내 사회인의 첫 발이 시작된다.
사실 말이 사회인이지 아직 졸업도 남아 있었고 논문 제출도 해야 한다.
우선 재학 중 합격이어서 2학기 수업의 불참은 부득이한 상황이었는데 학과의 배려로 원만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보통 신입직원 생활은 급조한 연극처럼 시작된다.
어제는 학생인데 오늘은 직장인이다. 졸업까지는 결국 반반 치킨이다.
어느 날은 학생처럼 어느 날은 직장인처럼 또는 닭 가슴살로 또는 윙 봉으로 신분이 수시로 변하는 느낌이다.
숙소는 대학 선배의 배려로 같이 사용하므로 큰 짐을 덜었다. 사실 제일 큰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살아보니 사람은 먹고 자는 문제만 해결되면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더라.
신입 직원이니 양복도 필요해서 춘추복으로 2벌을 장만하고 세미 정장용 구두도 장착했으니 제법 폼이 난다.
낮에는 교육받고 밤에는 선배와 인생사를 논한다. 어떨 때는 새벽 1-2시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잠에 든다. 세탁물은 주인집 세탁기를 사용하고 와이셔츠 다림질은 스스로 한다.
처음에는 어설픈 다리미질로 시간이 꽤 걸렸지만 1주일 정도 해보니 요령이 생겨서 한 3분이면 오케이. 불과 며칠 전 만해도 청바지를 입던 파랑새가 이번에는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백조로 변신한 것이다.
그럼 백조 다음은 뭐가 될까?
그 해 여름 경기 어느 교외에 있는 연수원에서 3박 4일 신입사원 입사 기본교육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다.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과정으로 조를 편성했고 애사심과 단합심을 기르자는 취지였다.
나는 7조로 기억된다. 약 10명 정도 젊은이들이 7조의 명예를 걸고 조별 활동에 들어갔다.
지금도 같이 만나는 동기들이 있는데 늘 든든한 힘이 되어 주고 함께 보게 되면 그 시절로 시계가 되돌아간다. 같이 인생을 관조하는 여유와 긴 세월을 같이 한 동지애가 느껴진다.
지금이 성숙미라면 당시는 신선미가 있었고 지금이 주황색이라면 당시는 초록색 시절이다.
한 번은 산행하다가 여 동기가 탈진되는 어려움이 발생했다.
산행을 포기하려고 하길래 어디서 구했는지 백화유를 정수리에 발라주고 정신을 환기시킨 후 손을 맞잡고 끝까지 마무리를 했었다.
사심이 있었느냐고? 젊은 청춘에 무슨 사심이 없었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사심이 없었다. 초등학교 동창을 대하는 기분이라면 이해를 하실려나.
그리고 조별 구호와 집단 액션을 정하는 시간도 있었고 쉬는 시간에 무서운 이야기의 실감나는 전달을 위하여 긴장된 표정과 목소리 톤으로 조율하던 동기들의 감성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당시 7조 멤버 중 투문정선과 킴 베이싱어 별명의 여동기들은 여전히 현직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나는 연수원 교육 동안 점심 이후 졸음이 쏟아져 고생을 했는데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신입사원 연수교육을 마치고 이어서 3개월 서비스 교육과 직무 교육을 함께 병행한다고 한다.
동기들은 남 15명에 여 35명, 총 50명이 2개로 분반하여 교육일정을 시작했다.
8월 초 작렬하는 태양은 오히려 우리들의 젊은 피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던 그 시절.
가끔 50명이 거리로 나서면 뭇 행인들의 시선들이 모아졌는데 우리가 우리를 봐도 눈이 부시던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3개월간 교육을 받으면서 내 기억으로는 여 짝꿍 4명이 있었다.
지금도 만나면 오래된 동창생을 만난 듯한 반가움과 유쾌함이 유지된다. 모두 내가 교육기간 너무 졸아서 나를 깨운다고 고생들을 한 동기들이다.
특히 점심 이후 병에 걸린 병아리처럼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고생을 했다.
변명을 찾자면 퇴근 후 새벽까지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늦게 잔 영향이나 술을 먹고 숙취로 인한 나른함 등등. 그래도 내가 봐도 정도가 너무 심했다.
분 반별 담당 선배들이 교관으로 편성되어 담임 선생님처럼 우리들을 보살펴주고 교육과정을 진행하느라 고생들을 하는데 내가 오후만 되면 적극적으로 졸고 있으니 얼마나 불편하고 못 마땅했겠는가? 급기야는 교육기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월간 성적을 발표하는데 거의 바닥 수준이었으니 할 말을 다한 경우다. 성적도 꼴찌에 졸기나 하고 교관들이 지적하면 대꾸나 하고 수업시간에 시답지 않은 농담이나 하려고 하는 ‘조직생활 부적응성 교육생’ 의미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당시 외국어 과목이 영어와 일본어가 있었는데 동기 중 한 명이 쉬는 시간 우리들에게 일본어 기초에 대하여 강의를 하던 고마운 모습도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억들은 모든 게 싱싱하고 생생하다.
여름철 수영장 교육은 매력있는 과정이다.
일단 시원하고 그다음 여 동기들의 몸매를 볼 수가 있기에.
사심이 들어갔냐고 물어보면 긍정도 부정도 안 할란다.
20대 중반 50명의 청춘들이 모였는데 그 가운데 젊은 사심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남성은 하반신 한 개만 가리면 되지만 여성은 위아래를 한 개로 가리던지 두 개로 가려야 한다.
남 동기들은 이미 수영장에 들어가 몸을 풀고 있는데 여 동기들이 등장을 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여 탈의실에서 수영장 교육장소까지 걸어오는 구조였는데 약 30미터를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하는 것처럼 들어와야 했는데 여 동기들이 입장을 안 하고 있었다. 아니다. 당시 그 시절 수영장으로 돌아가서 상상하자면 외로운 그 길이 남 동기들의 시선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었겠다. 남자도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서 여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를 지나치려면 태연한 척하지만 걸음걸이나 시선처리가 부자연스러워진다.
하물며 남 동기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여 동기들의 수영복 입장을 눈으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빤히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첫 번째 입장은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수영 교관이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여성 탈의실 쪽으로 어서 들어오라며 재촉을 한다.
드디어 누군가 첫 스타트로 들어오는데 한눈에 봐도 남성들의 시선이 몰리자 어색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다음은 양 떼들이 리더를 따라서 들어오듯 순식간에 수영장으로 들어왔다.
그 첫 번째 여 동기의 당당함은 멋진 여성의 건강미로 기억된다.
7月30日正式进入公司后,我的社会人士将迈出第一步。
其实话虽说是社会人,但还剩下毕业时间,还要提交论文。
首先,因为在校期间合格,所以不得不不参加第二学期的课程,但在学科的关怀下圆满结束。 一般新职员的生活就像一场急功近利的话剧一样开始。
昨天是学生,今天是上班族。 到毕业为止,还是半半炸鸡。
有时像学生,有时像上班族,有时像鸡胸肉或鸡翅棒,感觉身份随时发生变化。
宿舍是在大学前辈的关怀下一起使用的,因此减轻了很大的负担。 其实最大的问题已经解决了。 过了一辈子,人只要解决了吃住问题,无论在哪里都能过上好日子。
因为是新职员,所以需要西服,所以准备了2套春秋服,还穿了半正装皮鞋,很有范儿。
白天接受教育,晚上与前辈谈论人生。 有时候聊到凌晨1-2点才睡着。 洗衣物要使用主人家的洗衣机,衬衫要自己熨。
刚开始因为不熟练的熨斗需要很长时间,但是做了一周左右,有了窍门,大概3分钟就OK了。 就在几天前还穿着牛仔裤的青鸟这次变成了穿着白色衬衫的天鹅。
那么天鹅之后会是什么呢?
那年夏天,他在京畿某郊外的研修院参加了4天3夜的新职员入社基础教育项目。 从组合的角度出发,分组进行,其宗旨是培养爱社心和团结心。
我记得是第七条。 约10名年轻人以第7条的名誉进入了小组活动。
现在也有一起见面的同期,经常成为坚实的力量,一起见面的话,时钟会回到那个时期。 可以感受到一起观照人生的悠闲和一起度过漫长岁月的同志情谊。
如果说现在是成熟美,那么当时就是新鲜美,如果说现在是橘黄色,那么当时就是绿色时期。
有一次爬山时,女同学出现了精疲力竭的困难。
因为要放弃登山,所以不知道是从哪里弄来的,用白花油涂抹在头顶上,唤起精神后,手牵手坚持到最后。
有没有私心? 年轻轻的时节能没有什么私心吗?虽然可能会这样想,但当时真的没有私心。 如果是对待小学同学的心情,会理解吗?
还有决定小组口号和集体动作的时间,休息时间为了真实地传达恐怖故事,用紧张的表情和声音调节的同届们的感性至今还记得。
当时7组成员中,涂文静仙和金贝辛格绰号的女同学仍在现职辛勤工作。
我在研修院教育期间,午饭后困意袭来,这只不过是前哨战而已。
据悉,结束新职员研修教育后,将同时进行3个月的服务教育和职务教育。
同期,15名男35名女35名,共50名分成了2个班,开始了教育日程。
8月初火辣辣的太阳反而与我们年轻的血液相比,显得无所谓。
偶尔有50人走上街头,就会聚集很多行人的视线,这是我们看到我们也觉得耀眼的那个时期的故事。
经过3个月的教育,我记得有4个同桌。
现在见面的话,就像见到了老同学一样,保持喜悦和愉快。 他们都是因为我教育期间太困而叫醒我的同期。
特别是中午以后,像得病的小鸡一样犯困,吃了不少苦头。
如果要找借口的话,下班后一直和前辈聊到凌晨,受到晚睡的影响,或者喝酒后宿醉引起的乏力等等。 但在我看来,这也太过分了。
各班负责的前辈们被编成教官,像班主任一样照顾我们,进行教育课程,非常辛苦,而我一到下午就积极打瞌睡,该有多不方便啊? 最终,在教育期间每月发表一次月度成绩,几乎处于最低水平,所以该说的都说了。 这可以定义为,成绩也是倒数第一打瞌睡,如果教官们指出的话,就顶嘴,在课堂上开不愉快的玩笑的"组织生活不适应性教育生"的意思。 我记得当时外语课有英语和日语,其中一名同学在休息时间给我们讲日语基础课。
那时的记忆,一切都是鲜活的。
暑期游泳池教育是一个很有吸引力的课程。
首先很凉爽,然后可以看到女同学的身材。
如果问有没有私心,我不会肯定也不会否定。
20岁中期聚集了50名年轻人,如果其中没有年轻人的私心,那不是更奇怪吗?
男性只要遮住下半身一个就可以,但女性只能遮住上下两个。
男同学已经进入游泳池热身,但是女同学没有登场。
巧合的是,从女更衣室走到游泳场教育场所的结构中,本应该像审查韩国小姐泳衣一样进来约30米,但女同学却没有入场。 不是,当时回到那个年代的泳池想象,孤独的那条路可能难以承受男同学的视线。 男性如果想在游泳场或海水浴场经过女性聚集的场所,也会装作若无其事的样子,但走路和视线处理会变得不自然。
更何况男同学们在水中用眼睛等待女同学们的泳装入场,在这种情况下,第一个立场需要不小的勇气。
过了约5分钟左右的时间,游泳教官催促道:"快进女性更衣室吧。"
终于有人第一个出场,一眼就能看到男性们的视线聚集在一起,尴尬的表情历历在目。 然后是羊群像跟着队长进来一样瞬间进入了游泳池。
第一个女人的自信是女性的健康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