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廣州 故事 3

by 제이킴

고2+고3 담임선생님


고교 은사님 부부께서 광조우에 여행을 오셨다.

두 분이 제자를 만나러 오셨기에 나로서는 큰 영광이자 평생의 자부심이 되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나와 우리 가족들을 만나러 오는 것과는 다른 울림이 남는다.

처음 와이프에게 선생님 초청에 대한 나의 계획을 알리자 감사한 마음이 읽혔는지 고마운 반응을 보였다. 사실 와이프가 고마웠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어른들이 오시면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남편이 은사님을 초청하겠다고 하는데 마지못해서 승낙하는 것과 남편의 의중을 헤아려 기쁘게 표현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와이프가 사교적이고 친화력이 좋은 장점이 있지만 그래도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즐거운 초청계획은 시간을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선생님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시니 방문일정도 일사천리로 잡혔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나와 와이프는 중국에서 서로의 방문 준비를 시작했으며 드디어 두 분은 한국에서 출발하셨고 우리도 중국에서 같은 마음으로 광조우 공항으로 출발했다.

비행기 입구에서 화사한 표정으로 내려오시는 두 분을 모시고 집으로 가는데 들뜬 기분은 다시 고2 시절로 향한다.

아마도 결혼 후 처음 보는 선생님 두 분께 와이프와 아이들도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그때 우리에게는 초교 저학년 아들과 유치원 딸이 있었는데 당시 기억을 물어보니 어려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선 와이프는 제대로 솜씨를 부려서 시장하셨을 두 분에게 광동식 반, 한국식 반 정도의 비율로 음식을 장만하였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광조우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반은 가깝고도 먼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불원천리는 사제지간에도 존재한다.


광효사光孝寺


선생님 두 분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신다고 알고 있었다.

광조우에 나름 유명한 고찰이 있다. 선종禪宗 6조 혜능慧能 선사가 세웠다고 알려진 광효사.

건립은 약 1,700년 전이라고 하는데 광조우가 생기기 전부터 사찰은 있었다고 한다.

남조南朝 달마 스님이 바리때를 씻었다는 우물과 당나라 때 쌓았다는 탑과 돌로 만든 경번經幡, 남한南漢의 천불 철탑, 송나라의 육조전六祖殿, 가리륵訶梨勒, 보리수菩提樹와 같은 불교 명물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에게는 그냥 고찰이었지만 두 분은 광효사와 혜능의 흔적을 보시더니 구전되어 온 선사의 자취를 확인하셨다면서 자세를 정돈한 후 엄숙한 마음으로 합장을 드리는 것을 보고 나는 솔직히 감명을 받았다.

선지자들의 오래된 신앙의 흔적과 발자취가 후대의 불가 제자들에게 이렇게도 큰 울림을 남겨 주시는구나 탄복을 했다.


내가 일찌감치 본 적도 없었고 경험할 수도 없었던 경건함의 순간이었다.



정호산鼎湖山딩후산


선생님이 보내주신 정호산 배경의 사진을 보면서 오래된 기억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광조우에서 약 1시간 정도 차량거리의 자오칭肇庆에 위치한 산으로 약 400여 동안 유지된 남아열대 계절풍 상록활엽림이 잘 보존되어 있고 1,000미터 주봉인 지룽산鸡笼山은 주강珠江 삼각주 지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선생님을 모시고 나름 유명한 광조우 명승지나 관광지를 다니면서 고교 시절의 추억이 새롭게 느껴졌던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이 아닌 중국이라는 공간적 특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아니면 전생이든 현생이든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모래알 같은 인연 안에서 부부, 사제, 자식으로 또다시 만나는 인연의 소중함에는 참으로 오묘한 우주의 섭리가 담겨져 있다. 세상에는 자연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만남의 조화가 존재한다. 헤아릴 수도 없는 영겁의 세월 속에서 얼마나 기나긴 인연의 끈들이 존재하겠는가?

부처님의 설법이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동북인東北人


두 분을 모시고 갔을지 모르는 다른 식당의 기억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함께 보내신 사진을 보니 당시 광조우에서 들렸을 식당의 한 모습이다.

‘동북인’은 주로 중국 동북지역의 특유의 음식들을 선 보였던 식당이었는데 우리나라로 말하면 강원도 맛집 정도로 연상하면 될 것이다.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묵직한 맛의 여운이 남는다고나 할까?


훗날 내가 연변 연길에서 근무를 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 시절 동북인의 기운이 닿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20년 이상 된 사진이니 또 한 번 세월의 빠름과 당시 고왔던 사진 속 주인공들의 미소가 너무나도 온화하다. 어찌 부처님의 염화시중 미소만 온화하겠는가?

지금도 두 분의 막내 따님을 포함해서 크고 작은 고마운 인연이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인연은 진흙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꽃처럼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결국 사람이 연꽃이다.




高2+高3班主任


高中恩师夫妇来广州旅游了。

二位前来拜师,对我来说是莫大的荣幸,也是一辈子的骄傲。

与父母、朋友或熟人出来见我们家人不同,留下了不同的回响。

第一次向妻子告知了邀请老师的计划,不知是不是因为读懂了感谢之情,她表现出了感谢的反应。 其实很感谢妻子。

无论是娘家还是婆家,如果长辈们来的话,都会感到紧张,但是丈夫说要邀请恩师,勉强答应和理解丈夫的想法后高兴的表达出来,有很大的差异。

虽然妻子具有社交能力强、亲和力强的优点,但也不是那么容易的决定。 那么愉快的邀请计划不耽误时间就联系了老师。

老师也爽快地答应了,访问日程也安排得很顺利。

老师在韩国,我和妻子在中国开始互相准备访问,两位终于从韩国出发,我们也在中国怀着同样的心情出发前往广州机场。

从飞机入口带着灿烂的表情走下来的两位回家时,兴奋的心情再次回到了高二时期。

妻子和孩子们也亲切地问候了婚后第一次见到的两位老师。 当时我们有小学低年级的儿子和幼儿园的女儿,问了当时的记忆,说小时候记不清了。

首先,我记得妻子很会用自己的手艺,按照广东式一半、韩国式一半的比例给饿着的两位准备了食物。

从韩国到广州坐飞机约3个半小时,可以说是很远的旅程。

师徒之间也存在不远千里。


光孝寺


据我所知,两位老师是虔诚的佛教信徒,信仰生活也非常努力。

广州有个很有名的古刹。 据说是禅宗六祖惠能慧能禅师建立的光孝寺。

据说建立是在约1700年前,在光祖雨出现之前就有寺庙。

这里隐藏着南朝达摩大师洗过瓦砾的水井和唐朝时建造的塔和石头制成的经幡经幡、南汉的千佛铁塔、宋朝的六祖殿六祖殿、加里勒訶梨勒、菩提树菩提等佛教名物。 虽然对我来说只是考察,但两位看到光孝寺和惠能的痕迹后,说确认了口传的禅师的踪迹,整理好姿势后,以严肃的心情献上双手合十,说实话我感触很深。

先知们古老的信仰痕迹和足迹,给后代的佛家弟子留下了如此大的共鸣,令人钦佩。

这是我从未见过也无法经历过的虔诚的瞬间。


鼎湖山


看着老师发来的井湖山背景的照片,重新回到了久远的记忆。

位于肇庆肇庆的山,距广州约1小时车程,保留了约400余年的南亚热带季风常绿阔叶林保存完好,千米主峰基隆山鸡笼山是珠江珠江三角洲地区最高的山峰。

带着老师去比较有名的广州名胜或旅游景点时,重新感受到了高中时期的回忆,这反过来也是因为中国的空间特殊性,而不是韩国。

无论是韩国还是中国,无论是前世还是今生,在无数人创造的像沙粒一样的缘分中,作为夫妻、司祭、子女再次相遇的缘分的可贵之处,蕴含着奥妙的宇宙法则。 世界上存在着用自然科学难以解释的相遇的和谐。 在数不清的永劫岁月里,还会有多长的姻缘线存在?

即使不是佛祖的说法,也能感觉到吧?


东北人


虽然记不清其他可能带着两位去的餐厅,但从老师一起发来的照片来看,这是当时在广州听到的餐厅的一幕。

"东北人"主要是展示中国东北地区特有的饮食的餐厅,用韩国的话可以联想成江原道美食店。 虽然多少有些粗糙,但味道还是会让人回味无穷。

后来我在延边延吉工作,我想也许这个时期能感受到东北人的气息。

因为是20多年的照片,所以再次感受到岁月的流逝和当时照片中主人公们的微笑非常温和。 佛祖的含氯微笑岂止是温和的?

现在,包括两位的小女儿在内,大大小小的感谢缘分仍在继续。

这样的缘分,希望像淤泥中绽放的荷花一样,长久被铭记。

归根结底,人是荷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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