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延吉 故事 2

by 제이킴

백두산


애국가를 부르며 자라 온 세대라면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대상이 있다.

‘백두산’

마르고 닳도록 불러서 먹먹한 것이 아니라 뜨거운 피가 흐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한 백두산이 지척에 있는 연길에서 제2의 중국 생활을 시작한다.

독립군의 후예들과 일제 강점기를 피해서 동북으로 이주한 선비들과 농민들이 모여 살던 이 곳은 생각보다 바다도 지척이다. 중국, 러시아, 북한의 3국 국경이 가까우니 훗날 분명 경제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된다.

실제로 백두산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중국에서도 신비로운 영험의 산으로 추앙을 받는다.

강택민 주석이 천지의 맑은 모습을 3번 만에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그만큼 백두산 정상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예사롭지 않은데.


단군신화를 보자면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삼사(風雨雲)를 거느리고 백두산에 내려와 웅녀熊女를 만나 단군왕검檀君王儉을 낳게 된다는 줄거리인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風雨雲을 거느린다는 표현이다. 그만큼 백두산 천지의 기후변화가 다양했다는 이야기를 증명해준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제사와 통치를 같이 했으니 백두산 천지 어딘가 에서 하늘을 향하여 제사를 지냈을 터인데 혹시 지금 내가 서있던 자리에 단군왕검도 같이 섰을지 모를 일 아닌가?

상상을 해보라. 단군께서도 풍경 좋은 곳에서 제천행사를 했을 텐데 풍경 좋은 곳은 포토존으로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곳일 테니까 말이다.

단군왕검과 내가 같은 곳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확률은 로또 당첨보다 높을까? 낮을까?

이번 주는 단군왕검을 기리며 로또 한 장을 살 지도 모르겠다.


중국동포


연변은 예로부터 고조선의 중심이었고 고구려의 요충지였으며 발해 시대를 거쳐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출발점이며 독립군들의 주요 거점이자 청산리 전투 등 일본군을 무찌른 흔적이 도처에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 잃은 서러움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그 많던 독립군의 후예들이 지금은 중국동포로서 한국과 중국에서 맹활약 중이다.

중국 내 소수 민족 중 가장 총명하고 부지런하며 잔치가 있으면 손을 높이 쳐들고 춤을 춘다.

다른 민족에는 없는 춤사위로 흥을 돋운다.

실제로 음식과 술이 잘 차려진 잔치에 가보면 여지없이 노래와 춤이 절로 나오면서 흥이 나는데.


그렇다. 우리 민족은 흥이 많은 민족이다.

잔치를 하면 술이 있어야 하고 술이 있으니 어깨춤이 나오는 것이다.

어깨가 들썩이는데 양 손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치켜든 손에서 내려와 머리와 어깨를 비껴가는 아름다운 곡선이 만들어진다. 추는 사람도 즐겁지만 보는 사람도 함께 몸으로 눈으로 곡선을 그리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한민족처럼 하반신 동작보다 상반신 특히, 손동작이 다채로운 춤사위는 흔치 않다고 한다. 실제로 잔치가 벌어지면 그 옛날 할머니들과 더 윗 할머니들이 추워왔던 그 춤사위.

내가 노래방에서 배운다고 여러 차례 흉내를 내보기도 했는데 어딘가 2% 부족하다.

연길에서 생활한 시간이 짧아서 그런가?


중조中朝 관계


동북지역 이주 초기의 신산한 삶은 둘째 치더라도 타국의 생활은 서글프기 마련인데 청나라가 중화민국이 되고 북한이 북조선이 되는 역사적인 흐름의 중심에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었다.

그 자치주 주도가 연길인데 도심의 크기는 한국의 중소도시 규모이지만 한/중 간을 오가는 중국동포들의 고향이기에 평소 움직이는 인적/물적 교류들이 빈번하다.

우리가 70/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다면 한중 수교 후 중국동포들에게 코리안 드림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어 지금도 수 만 명의 동포들이 중국에서 한국에서 다른 해외에서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장개석에게 밀린 국공내전에서 북한의 도움으로 부상병과 전력을 가다듬어 재기에 성공했던 모택동은 북한 김일성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되고 이러한 혈맹관계는 다시 6.25를 만나면서 인해전술로 대변되는 항미원조로 연결된다. 抗美援朝. 북한을 도와 미국을 물리친다는 의미인데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지원군을 보내면서 명분으로 내세운 항왜원조抗倭援朝와 비슷하지 않은가?

우연한 역사의 중첩인 듯하지만 속내를 들춰보면 1592년 임진왜란과 1950년 6.25 전쟁에 대한 중국의 참전 명분은 단지 358년 시차만 있을 뿐 역사의 반복됨을 알 수 있다.

단지 배역만 바뀌었을 뿐.



白头山


如果是唱着《爱国歌》长大的一代,每次唱《爱国歌》时都会有让人心痛的对象。

'白头山'

如果不是因为唱得干巴巴,而是流着热血的大韩民国国民,更是如此。 这样的白头山在咫尺之遥的延吉开始了第二次中国生活。

独立军的后裔和为了躲避日本帝国主义强占期而移居到东北的书生和农民们聚居的这个地方,大海比想象中近在咫尺。 中国、俄罗斯、北韩三国边境相近,可以预见,今后经济开发一定会如期而至。

实际上,白头山无论是在韩国,还是在朝鲜,还是在中国,都被尊为神秘的灵验之山。

传说江主席三度见天地晴朗,白头山峰顶变幻莫测的天气非同寻常。

从檀君神话来看,桓仁桓因的儿子桓雄桓雄带着风雨云来到白头山,遇到了雄女熊女,生下了檀君王剑檀君儉,这里值得关注的是,率领风雨云的表达。 这证明了白头山天地的气候变化多种多样。

檀君王剑檀君王儉,既然是一起祭奠,那白头山就在天池的某个地方祭天,或许檀君王剑也站在我现在站的位置上。

想象一下。 檀君也应该在风景好的地方举行堤川活动,风景好的地方是拍照区,是游客们喜欢的地方。

檀君王剑和我可能住在同一个地方的概率,会比中彩票高吗? 会低吗?

这周为了纪念檀君王俭,说不定会买一张彩票。


中国朝鲜族


延边自古以来就是古朝鲜的中心、高句丽的要冲地、经过渤海时代后成为韩民族历史和文化的出发点、独立军的主要据点、青山里战斗等打败日军的痕迹随处可见。 在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用全身体验失去国家的悲伤的独立军的后裔们现在作为中国同胞活跃在韩国和中国。

中国国内少数民族中最聪明、最勤奋,有宴请就高举双手跳舞。

用其他民族没有的舞姿助兴。

实际上,如果去美食和酒类齐全的宴会,就会不由自主地唱歌和跳舞,让人兴奋不已。

是的。我们民族是兴致勃勃的民族。

宴席上要有酒,有酒才能跳出肩膀舞。

肩膀一动一动,两手能闲着吗? 从翘起的手下来,与头擦肩而过,形成了美丽的曲线。 虽然跳舞的人很开心,但观看的人也会用身体用眼睛画出曲线。

据说,在全世界范围内,像韩民族一样,比起下半身动作,上半身特别是手动作丰富多彩的舞蹈并不多见。 实际上,如果举行宴会,以前奶奶们和更高一层的奶奶们一直都很冷的舞姿。

因为我在练歌厅学过很多次,但是好像还差2%。

是因为在延吉生活的时间太短了吗?


中朝关系


暂且不说东北地区移居初期的辛酸生活,异国他乡的生活必然是悲凉的,而延边朝鲜族自治州正是清朝成为中华民国、北韩成为北朝鲜的历史潮流中心。

该自治州的主导地位是延吉,市中心的大小虽然是韩国中小城市的规模,但由于是往返于韩中之间的中国同胞的故乡,所以平时活动的人力、物力交流非常频繁。

如果说我们在70/80年代有美国梦,那么韩中建交后,韩国梦自然而然地开始于中国同胞,现在也有数万名同胞在中国、韩国、其他海外勤奋地活动。

在被蒋介石逼退的国共内战中,毛泽东在北韩的帮助下,调整了伤兵和战斗力,成功东山再起,他欠下了北韩金日成的心债,这种血盟关系再次与6.25相遇,以人海战术为代表的抗美援朝联系在一起。 抗美援朝. 是帮北韩打败美国的意思,这和壬辰倭乱时明朝派援军,打着抗倭元祖抗倭援朝的旗号不相似吗?

虽然看似是偶然的历史重叠,但仔细分析可以发现,中国对1592年壬辰倭乱和1950年6.25战争的参战理由只有358年的时差,历史的反复。

只是换了一个角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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