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 생활이 한 달쯤 지나자 대략적인 지역의 특성과 지점의 영업방향에 대한 기준이 세워졌다.
대리점 사장들과 인사도 끝냈고 신임 지점장이 온 것을 알렸으니 이제는 판매 계획에 대한 안내와 공조를 통하여 필요한 부분은 탄력적인 적용을 더하면 된다.
주말을 이용해서 용정중학교와 백두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침밥을 일찍 챙겨 먹고 지점 소속 운전기사와 함께 출발했다. 주변 풍경은 논과 밭으로 시작해서 1시간쯤 지나자 용정중학교 정문이 보인다.
우리가 다니던 그 정도 중학교처럼 아담하고 교정 한 켠에 윤동주의 시비와 기념관 건물도 있었다.
영화 ‘동주’를 보면 일본에서 유학한 시인은 항일운동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된 후 일본의 생체실험으로 판단되는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고 죽어갔는데 그의 자작시인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들은 남아서 그를 새벽 별 같이 영롱한 전설로 만들었다.
찻길 옆으로 2시간 정도 옥수수 밭과 야산들이 펼쳐지고 1시간 정도 산길로 들어서면 어느덧 주변 풍경이 활엽수에서 침엽수로 바뀐다. 나무들이 굵고 높게 변하며 도로변에 서서 우리를 호위한다.
백두산 입구에 도착해서 버스로 정상 아래까지 1차 이동한 후 다른 차로 갈아타고 2차 이동하면 정상 밑자락까지 갈 수 있는 A코스. 나는 한 1시간쯤 걸어서 올라가는 B코스를 택했다.
어차피 누군가와 함께 다시 여러 번 오게 될 백두산이니 다양한 코스를 경험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춘하추동의 백두와 천지를 눈과 가슴에 담아두려고 작정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춘하추동의 백두와 천지를 눈과 가슴에 담았다.
첫 등정은 걸어 올라야만 한다. 그래야 발 밑에 숨어있던 전설들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된 등정로 옆에는 하늘에서 쏟아져 장백폭포로 이어진 물길이 내천을 이루어 흐르고 산에서 무너져 내린 듯한 돌무더기가 또 다른 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산신령의 기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대식 숙소들만 없으면 저 멀리 인간이 되기 이전 웅녀의 친구들이 출현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산세와 적막함이 서려 있었다.
조금 더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유황불 냄새가 나고 주변의 온도가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花果山에서 활약했던 오공이 다시 구름을 타고 지나갈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유황온천인지 다가서니 더욱 향기가 진해지고 누군가 계란을 끓는 물에 넣어 두었다.
주인이 먹으려고 넣어 놓은 것 같지는 않고 관광객들에게 판매를 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 유발용으로 넣어 둘 수도 있었겠다.
조금 더 올라가면 물소리가 웅웅거린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포수가 수면을 때리는 소리로 연달아 울리는데 일종의 오케스트라 같은 울림이 전해온다.
백두와 천지가 만들어 내는 천상의 교향곡 이런가.
멀리서 실낱 같은 폭포가 점점 가까워져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의 중심인 천상계에서 세속의 인간계로 내려 보내주는 구원의 생명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줄기는 물줄기대로 장엄했으니 쪽 달이 뜨면 하늘에서 내려와 물속에 잠겨 쉬던 용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천상계로 복귀할지도 모를 일이다.
장백폭포를 뒤로 하고 걸으면 이제는 산 길이 시작된다. 장백의 기운을 제대로 받아서 산 길로 접어들어야 등정하는데 힘이 덜 든다.
조금씩 계단이 가팔라지고 호흡도 같이 빨라진다.
평소 달리기로 단련된 건강한 폐에 백두의 영험한 공기를 가득 담아서 가야지 백두산에 온 의미가 있지 않겠나?
한 발 한 발 지면에 닿는 느낌이 신비롭고 신기하다.
그 옛날 단군부터 고조선, 고구려, 발해로 이어진 민족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계단으로 이어진 산행로는 낙석과 지진을 대비하여 튜브 형태인 요새로 만들어져 웬만한 외적 요인에도 내부는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턱 하니 정상 문턱에 내려서자 눈 앞에 펼쳐지는 거울 같은 천지가 하늘에 반사되어 푸른 물빛을 보내온다.
수 천년 동안 한민족의 정기를 고스란히 간직해 온 그 한민족의 백두산이 나를 반긴다.
산과 물의 완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눈이 시렸다. 하늘 빛인지 물 빛인지 아니면 두 개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와서 인지. 가슴도 시렸다.
우리가 노래에서 꿈에서 그렸던 그 산과 그 하늘과 그 물이 눈 앞에서 모두 함께 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가?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학창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면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의 피 끓는 애절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실제로 연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송정이 있고 일송정에서 내려다보면 한 줄기 해란강이 보인다. 작곡가 조두남이 1933년 북간도(용정)의 여관에 머물고 있을 때 어느 독립군한테 건네받은 시에 곡을 붙여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선구자를 찾아보니 ‘어떤 일이나 사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일제 강점기는 공식적으로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을 말하는데 내가
정한 기준으로 다시 환산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은 1860년대 메이지 유신을 시점으로 근대화의 길을 걷는다.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청나라를,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세력까지 물리친 그 시점부터 조선에 대한 적극적인 내정간섭이 시작되었으니 공식적인 강점기에 비공식적인 이전 기간을 더하면 1894-1945년 약 50년 이상 기간을 나는 식민통치 기간으로 간주하겠다.
당시 평균수명이 50세 이하였으니 결국 그 시절에 태어난 선배들은 거의 일생을 일제 통치하에 살았다고 봐야 한다. 평생 동안 국제무대에 강자였던 일본이 2차 대전에서 미국에 패배하며 항복할 것으로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었다고 본다.
식민통치는 그렇게 무서운 문화적 괴리를 경험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러한 일본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기약도 없이 자신의 목숨과 가족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최대의 희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조국을 떠나 북간도에서 신산한 독립운동에 헌신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릴 적 간간이 들리던 식민지 근성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하다 안되면 쉽게 포기한다는 의미로 쓰였고 한반도를 다스리는 통치기간에 노예 근성이라는 무서운 용어를 만들어서 우리 민족을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반항의 연줄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심지어 일본은 조선 왕실, 역사와 문화, 게다가 생체실험에 우리의 언어까지 말살정책을 강행했다.
참으로 무서운 민족이다.
延吉生活过了一个月左右后,制定了大概的地区特点和分店的营业方向的标准。
已经和代理店社长们打完招呼,告知了新任分店长来了,现在通过对销售计划的介绍和互助,必要的部分可以灵活适用。
利用周末的时间,去一趟龙井中学和白头山。 早点吃完早饭,和分店所属的司机一起出发了。 周边的风景从水田和旱田开始,经过1个小时左右,就能看到龙井中学的正门。
就像我们上过的中学一样,校园的一角还有尹东柱的诗碑和纪念馆建筑。
从电影《东柱》来看,在日本留学的诗人因涉嫌抗日运动被关进福冈刑务所后,在注射了被判断为日本活体实验的身份不明的针后死去,他的自创诗《序诗》、《数星星的夜晚》、《自画像》留下来,使他成为了像晨星一样晶莹的传说。
在车道旁边展开2个小时左右的玉米田和野山,进入1个小时左右的山路,周围的风景不知不觉间从阔叶树变成了针叶树。 树木又粗又高,站在路边护卫着我们。
到达白头山入口后,乘坐公交车第一次到达山顶下方,然后换乘其他车第二次移动就能到达山顶底端的A路线。 我选择了步行1个小时左右上去的B路线。
反正白头山会跟某人一起来很多次,所以觉得体验各种各样的路线比较好。 他至少打算把春夏秋冬的白头和天地放在眼睛和心中,实际上把春夏秋冬的白头和天地放在眼睛和心中。
第一次登顶必须要走上去。 因为只有这样,隐藏在脚下的传说才能重新浮出水面。
在已经开始的登顶路旁边,从天而降的长白瀑布的水路形成了内河,像从山上坍塌一样的一堆石头正在制造另一座山。
到了这种程度,不得不感受到山神的气息。 如果没有现代式宿舍,在成为人类之前,即使雄女的朋友出现,也不会感到尴尬,充满了山势和寂寞。
再往顶峰走一点,不知从哪里闻到了硫磺火的味道,周围的温度变得温暖起来。 果曾经活跃在花果山的悟空,好像又要乘云而过,到处冒出袅袅的烟。
靠近硫磺温泉,香气更加浓郁,有人把鸡蛋放在沸水中。
好像不是主人为了吃而放进去的,而是为了卖给游客或引起过路人的好奇心而放进去的。
再往上一点,水声就嗡嗡响。 从天而降的瀑布击打水面的声音接连响起,传来一种管弦乐般的回响。
白头和天地共同创作的《天上交响曲》就是如此吗?
远处,细细的瀑布越走越近,感觉天上的水柱就像从天心天界送下凡间的救命水。
水流按照水流庄严,月亮升起来后,从天而降,沉入水中休息的龙可能会重新浮出水面,重返天界。
背对着长白瀑布走,山路就开始了。 只有正确接受长白的气息,进入山路,才能减轻登顶的难度。
阶梯逐渐变陡,呼吸也跟着变快。
平时通过跑步锻炼出来的健康肺里,装满白头山灵验的空气,才能有来到白头山的意义吧?
一步一步接触地面的感觉既神秘又神奇。
从古代的檀君到古朝鲜、高句丽、渤海,可以感受到民族的气息。
连接楼梯的山路是为应对落石和地震而建成的管状要塞,内部设计一般不会受到外部因素的影响。
终于看到山顶了。 站在山顶的门槛上,眼前像镜子一样的天地反射着天空,送来了蓝色的水光。
几千年来一直保留着韩民族精气的那个韩民族的白头山欢迎我。
山水的完整体像全景一样展现出来。
眼睛发凉。 不知道是天色还是水色,还是两个同时映入眼帘。 心里也觉得凉。
我们在歌曲中梦寐以求的那座山,那片天空和那片水,在眼前都陪伴着。
哪里是天空,哪里是水?
延吉生活过了一个月左右后,制定了大概的地区特点和分店的营业方向的标准。
已经和代理店社长们打完招呼,告知了新任分店长来了,现在通过对销售计划的介绍和互助,必要的部分可以灵活适用。
利用周末的时间,去一趟龙井中学和白头山。 早点吃完早饭,和分店所属的司机一起出发了。 周边的风景从水田和旱田开始,经过1个小时左右,就能看到龙井中学的正门。
就像我们上过的中学一样,校园的一角还有尹东柱的诗碑和纪念馆建筑。
从电影《东柱》来看,在日本留学的诗人因涉嫌抗日运动被关进福冈刑务所后,在注射了被判断为日本活体实验的身份不明的针后死去,他的自创诗《序诗》、《数星星的夜晚》、《自画像》留下来,使他成为了像晨星一样晶莹的传说。
在车道旁边展开2个小时左右的玉米田和野山,进入1个小时左右的山路,周围的风景不知不觉间从阔叶树变成了针叶树。 树木又粗又高,站在路边护卫着我们。
到达白头山入口后,乘坐公交车第一次到达山顶下方,然后换乘其他车第二次移动就能到达山顶底端的A路线。 我选择了步行1个小时左右上去的B路线。
反正白头山会跟某人一起来很多次,所以觉得体验各种各样的路线比较好。 他至少打算把春夏秋冬的白头和天地放在眼睛和心中,实际上把春夏秋冬的白头和天地放在眼睛和心中。
第一次登顶必须要走上去。 因为只有这样,隐藏在脚下的传说才能重新浮出水面。
在已经开始的登顶路旁边,从天而降的长白瀑布的水路形成了内河,像从山上坍塌一样的一堆石头正在制造另一座山。
到了这种程度,不得不感受到山神的气息。 如果没有现代式宿舍,在成为人类之前,即使雄女的朋友出现,也不会感到尴尬,充满了山势和寂寞。
再往顶峰走一点,不知从哪里闻到了硫磺火的味道,周围的温度变得温暖起来。 果曾经活跃在花果山的悟空,好像又要乘云而过,到处冒出袅袅的烟。
靠近硫磺温泉,香气更加浓郁,有人把鸡蛋放在沸水中。
好像不是主人为了吃而放进去的,而是为了卖给游客或引起过路人的好奇心而放进去的。
再往上一点,水声就嗡嗡响。 从天而降的瀑布击打水面的声音接连响起,传来一种管弦乐般的回响。
白头和天地共同创作的《天上交响曲》就是如此吗?
远处,细细的瀑布越走越近,感觉天上的水柱就像从天心天界送下凡间的救命水。
水流按照水流庄严,月亮升起来后,从天而降,沉入水中休息的龙可能会重新浮出水面,重返天界。
背对着长白瀑布走,山路就开始了。 只有正确接受长白的气息,进入山路,才能减轻登顶的难度。
阶梯逐渐变陡,呼吸也跟着变快。
平时通过跑步锻炼出来的健康肺里,装满白头山灵验的空气,才能有来到白头山的意义吧?
一步一步接触地面的感觉既神秘又神奇。
从古代的檀君到古朝鲜、高句丽、渤海,可以感受到民族的气息。
连接楼梯的山路是为应对落石和地震而建成的管状要塞,内部设计一般不会受到外部因素的影响。
终于看到山顶了。 站在山顶的门槛上,眼前像镜子一样的天地反射着天空,送来了蓝色的水光。
几千年来一直保留着韩民族精气的那个韩民族的白头山欢迎我。
山水的完整体像全景一样展现出来。
眼睛发凉。 不知道是天色还是水色,还是两个同时映入眼帘。 心里也觉得凉。
我们在歌曲中梦寐以求的那座山,那片天空和那片水,在眼前都陪伴着。
哪里是天空,哪里是水?
苍松苍老,
一条海兰江流淌千年…
学生时代唱这首歌时,经常能感受到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进行独立运动的爱国志士们的热血沸腾的哀切感。 但实际上,离延吉不远的地方有一松亭,从日松亭往下看就能看到一条海兰江。 据说,这是作曲家赵斗南在1933年停留在北间岛(龙井)旅馆时,给某独立军写的诗谱曲而创作的歌曲。
找到先驱者后,可以解释为"在任何事情或思想上都比别人领先的人。
日帝强占期是指韩日正式合邦的1910年到1945年的36年。
按规定的标准重新换算如下。
日本从19世纪60年代明治维新开始,走上了近代化道路。 以东学革命发生的1894年为契机,在韩半岛打败清朝,在日俄战争中打败俄罗斯势力,从那时开始积极干涉朝鲜内政,在正式的强占期加上非正式的迁移期,在1894-1945年大约50年以上的时间里,算作殖民统治期。
当时平均寿命在50岁以下,因此可以说在那个时期出生的前辈们几乎一生都在日本帝国主义统治下生活。 你能想象,一生都是国际舞台强者的日本,会在二战中败给美国投降吗? 我认为不是。
殖民统治会让我们经历如此可怕的文化背离。 但我认为,以这样的日本为对象进行独立运动,是在没有期限的情况下,无法保证自己的生命和家人的安全的最大牺牲。
不难看出,离开家人和祖国,在北间岛献身于辛酸的独立运动比想象中要困难得多。
小时候偶尔能听到的殖民地韧性一词。 意思是"如果不行就轻易放弃",在统治韩半岛的统治期间,曾试图制造"奴隶本性"的可怕用语,在心理上压迫我们民族,事先封锁反抗的关系。
日本甚至强行推行扼杀朝鲜王室、历史和文化,甚至活体实验加上我们的语言。
真是个可怕的民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