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대기를 하다가 다른 기사님을 만났다. 나이는 나보다 위인데 기사 경험은 내가 선배였다.
예전에는 군대에서 나이가 어려도 한두 달 입대가 빠르면 그래도 선임은 선임이다.
내가 두 달, 후배님은 한 달이 되어갈 시점이었는데 이 분에게 식당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서 전하자 자신의 신상에 대하여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시중 은행 지점장으로 은퇴 후 낮에는 다른 직장에 나갔다가 퇴근하고 또는 주말에 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대리 운전의 장점 중에 하나인 자신이 선택한 근무시간에 일을 할 수 있다는 편리를 누리고 있었다. 자식들은 장성했고 다들 출가했으며 자신의 기사 수입을 부인한테 용돈 삼아 준다고 한다. 자신은 지점장 시절 몸에 밴 서비스 정신을 기본으로 손님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다.
대리 운전을 연극 무대로 생각하고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공연을 위하여 사전 준비를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차피 인생은 길고 시간은 점점 많아지니 연령대별로 새로운 막이 기다리고 있다.
1인 연극이라고 설렁설렁할 것 같은가? 정성이 부족하면 내가 알고 관객이 안다.
업종별 프로정신은 무엇일까?
접객 분야는 서비스 제공에 대한 준비성과 즐거운 마음가짐이 손님께 전달되어야 하고 영업 맨이라면 자사의 제품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 이리라.
요즘 서비스 정신이 묻어나지 않으면 똑똑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핸드폰에서 이물질이 돌아다니는 작은 소음이 생겨서 주말에 A/S 센터를 찾았다.
1층 입구에 ‘점검 기사들의 정상적인 휴무를 위하여 대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나는 그냥 지나친 후 3층에 올라갔다. 평소와 같지 않게 대기자가 많고 어수선하다.
기사 데스크가 중간중간 비워져 있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현장 매니저한테 물어보니 기사들이 회사에 주말근무에 대한 항의 방법으로 근무자를 축소 배치를 했다고 한다.
그래. 기사들도 주말에 쉬고 싶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오는 손님은 여전히 많고 기사는 평소보다 적으니 서서히 기다림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핸드폰은 일류라서 비싸게 팔면서 서비스는 삼류 수준이라고 고객센터에 항의를 했지만 그게 즉시 개선이 되겠는가?
내가 이 회사의 경영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기사 노조에서 사전 회사에 통보된 축소 배치라고 하는데 미리 조정을 통하여 사이에 낀 소비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살펴야 하지 않을까?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슬로건이 무색하지 않은가? 내가 이 회사의 기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소비자를 볼모로 회사 경영진에 호소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을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기사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호소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1시간 이상 기다려서 내 차례가 되었다. 결국 사용하다 보면 내부의 작은 부품들이 일상생활의 충격으로 떨어져 나가서 핸드폰 내부에서 돌아다니지만 성능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내리는데 3분. 그럼 내가 기다린 시간들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사무친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주신 맛에 대한 강렬한 추억이 몇 가지 있다.
나중에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르는 어머니가 기억을 하실지는 모르겠다.
여산 송氏 장녀인 어머니는 일단 밥을 하면 당시 인기 전자제품이었던 전자밥솥에 위치 이동을 해 놓아 늘 따뜻하게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셨고 하교 때 맞추어 적당 온도로 낮아진 보리차가 에어포트에 담겨 있었다.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호평이 이어지면 장기 공연에 들어간다.
엄마는 우리들이 좋아하는 메뉴의 반응을 참고하여 날을 잡아서 대량 조리에 들어갔다.
처음 1-2일은 버텨진다. 맛있는 반찬도 3일 차가 되면 물리기 시작하는데 어릴 땐 그냥 지나갔다.
어느 날인가 튀김기구를 준비해서 즉석 새우튀김을 만드셨는데 특유의 바삭거림과 새우의 풍미는 지금도 올곧이 기억난다. 튀김옷을 얇게 하여 새우의 본연 맛에 치중했다.
하루는 카레를 좋아하는 우리를 보시더니 날을 잡아 찜통으로 하나 만들어 놓으셨다.
우리는 카레를 먹으며 노래를 한다.
“까만 똥. 까만 똥. 우째서 까만가? 짜장을 먹어서 까맣지.”
“빨간 똥. 빨간 똥. 우째서 빨간가? 케첩을 먹어서 빨갛지.”
“노란 똥. 노란 똥. 우째서 노란가? 카레를 먹어서 노랗지.”
맛있는 카레를 오래 먹으면 정말 노란 똥이 나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 낮. 아버지가 한마디 거들고 나서신다.
“어이. 수제비나 뜨지?”
우리들이 주방 보조로 나선다. 재료는 별거 없다. 멸치, 호박과 밀가루 정도로 기억된다.
끓는 물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제비를 띠운다. 넓게 길게 얇게 두껍게 둥글게 세모지게 네모지게 내 맘이다.
비가 내리는 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분간이 안될 정도가 되면 수제비가 위로 떠 오른다.
그래서 수제비를 뜬다고 하던가?
지금도 엄마손이 그립다. 그때 먹었던 새우와 카레와 수제비가 그립다.
지금까지 만나본 남도 음식의 최고봉.
음식마다 깊이가 느껴지고 여운이 오래간다.
명절 때 차림상을 보면 임금의 수라가 부럽지 않다.
‘임금의 밥상’이라는 주제의 책이 있어서 보니 장모 솜씨가 비교우위에 있다.
우스개 소리로 훗날 돌아가시면 이 음식에 대한 추억들은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묻자 그저 웃으신다.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우리 장모님은 음식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셨다.
在餐厅等候的时候遇到了别的司机。 年龄比我大,但棋手经验我是前辈。
以前在军队里,即使年龄小,入伍时间早一两个月也是选任。
我两个月了,后辈快一个月了,但当他把咖啡从餐厅自动售货机里拿出来传达给这位时,他开始谈论自己的身份。
作为市中银行支行行长,退休后白天去其他公司工作,下班后或周末做代理。 代驾的优点之一是享受着可以在自己选择的工作时间工作的便利。 子女们长大了,都出家了,把自己的报道收入当作给妻子的零花钱。 自己在担任分店店长时期,以熟悉的服务精神为基础,努力为顾客提供安全和舒适。
他认为代驾是话剧舞台,为每天新上演的演出做好了事前准备。
是的,反正人生漫长,时间也越来越多,各个年龄段都有新的帷幕等着你。
因为是单人话剧,会感到轻松吗? 诚意不够我就知道,观众知道。
各行业的敬业精神是什么呢?
在接待领域,应该向顾客传达对提供服务的准备性和愉快的心态,如果是营业员,就应该说服消费者选择本公司的产品。
如果最近不体现服务精神,自然会受到聪明的消费者的冷落。
手机上出现了异物流动的小噪音,周末去了售后服务中心。
虽然1楼入口处贴着"为了检查司机的正常休息,等待时间可能会变长的通知",但我还是路过后上了3楼。 和平时不同,等候者多而混乱。
司机台中间空着。 这是什么?这种不祥的感觉?
问了现场经纪人,司机们以对周末工作的抗议方法,减少了工作人员。
是啊。 司机们也想着周末应该想休息吧,但是来的客人仍然很多,司机比平时少,所以慢慢开始厌烦等待。 虽然向客服中心抗议说,手机是一流的,卖得很贵,但服务是三流的,但能立即改善吗?
如果我是这家公司的管理层会怎么做呢?
司机工会说这是事前向公司通报的缩小部署,是不是应该通过提前调整,以免夹在中间的消费者感到不便呢? 不觉得向往世界第一的口号黯然失色吗? 如果我是这个公司的司机会怎么做呢?
除了以消费者为人质向公司管理层呼吁的方法之外,没有其他方法吗?
有没有办法在提供更好服务的同时,呼吁消费者体谅司机的心情?
等了一个多小时,轮到我了。 结果,在使用过程中,内部的小零件因日常生活的冲击而脱落,在手机内部流动,但诊断出性能没有异常,需要3分钟。 那我等的时间呢?
虚无缥缈的想法深入人心。
小时候妈妈给我做的关于味道的强烈回忆有几点。
不知道以后会读这篇文章的母亲记不记得。
作为骊山宋氏长女的母亲,一旦做饭,就会把位置移到当时人气电子产品的电子电饭锅上,准备了经常热乎乎的日用粮食,在放学时适当温度下降的大麦茶装进了Airport里。
如果看到观众的反应,好评如潮,就会进入长期演出。
妈妈参考了我们爱吃的菜品的反馈,择日进行批量烹饪。
最初的1-2天会坚持下来。 好吃的菜到了第三天就开始腻了,小时候就那样过去了。
有一天,他准备了油炸工具,制作了即食炸虾,他特有的脆脆和虾的风味至今仍记忆犹新。 油炸外裹糊较薄,偏重虾的原味。
有一天,看到我们喜欢吃咖喱,就定好日子做了一个蒸笼。
我们一边吃咖喱一边唱歌。
"黑色的屎,黑色的屎。 怎么这么黑? 吃了炸酱才变黑的。"
"红屎,红屎。" 为什么这么红? 因为吃了番茄酱,所以变红了。"
"黄色的屎,黄色的屎。 为什么这么黄? 吃了咖喱才变黄的。"
美味的咖喱吃久了真会出黄屎。
淅淅沥沥地下着雨的夏季白天。 爸爸站出来插了一句嘴。
"哎,面片汤盛出来了吧?"
我们当厨子。 材料没什么特别的。 记忆中只有鳀鱼、南瓜和面粉。
三三两两坐在开水里做面片汤。 宽而长,薄而厚,圆而圆,四四方方的我的心。
当雨声和水沸腾声达到分不清的程度时,面片汤就会浮上水面。
所以说要做面片汤吗?
现在也想念妈妈的手。 好怀念那时候吃的虾、咖喱和面片汤。
到现在为止见过的南道饮食的最高峰。
每个食物都能感觉到深度,余韵持久。
逢年过节看摆设,不羡御膳。
因为有以"国王的饭桌"为主题的书,所以岳母的手艺具有比较优势。
开玩笑说,以后去世的话,关于这个食物的回忆怎么办? 记者问他,他只是笑了笑。
都说人会留下名字,但是我们丈母娘却留下了对食物的美好回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