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MT에 대부분의 같은 학번 동기들이 함께 했다. 분 반 수업으로 어색했던 분위기를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8할은 과 대표 형의 역할이었다고 본다. 여러모로 부지런하게 잘 챙겼으니 말이다.
내 기억에 있을 수 없는 경기가 있었는데 혼성 족구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글 제목 배경 사진이 우리 팀 선수들이다.
남3 여2. 그런데 예전에 서로 족구를 한 적도 없는데 팀 간 호흡이 좋았고 승부는 아슬아슬하게 이기지 못했다. 막판에 역전의 찬스를 살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루는 족구 팀 멤버의 집에 가서 모내기 활동을 했는데 여기에서도 내 장난기는 발동하였고 마치 처갓집에 온 사위 마냥 좌중들에게 익살을 부렸는데 당시 너그럽게 지켜봐 주셨던 동기 여학생 아버님의 그 시절 젊은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버님. 부디 귀엽게 봐주셨기를 바랍니다.”
나의 첫 만취의 기억은 고3 겨울방학 때 불친이랑 같이 포장마차에 가서 참새구이에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시고 집에 들어오다가 집 앞 구멍가게에서 흑갈색 병에 담긴 소주 1병을 사서 병나발로 정확히 두 번에 나누어 투샷으로 비웠던 기억이 있다.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가?
우선 집에는 잘 왔다. 가게와 집이 가까웠고 갑자기 들이닥친 소주 세례를 영문도 모르는 내 위장이 화학반응을 보이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내 위장도 얼마나 놀랐겠는가?
자기 주인이 갑자기 예고 없이 난생처음 알코올을 들이붓는데 얼마나 경악했겠는가?
다음 날 동선을 추적해 보니 일단 담을 넘어가면서 신발 한 짝이 방 앞에 없었다.
그리고 자다가 내가 갑자기 누워서 이불에다가 토하기 시작하자 옆에서 자고 있던 남동생이 놀라서 안채에서 주무시던 부모님에게 뛰어간 모양이다.
주무시다가 막내아들의 호출을 받고 사랑채로 오셨을 두 분의 난감한 표정을 상상하고도 남는다.
큰 놈이 인사불성으로 술냄새를 풍기는 토사물을 여기저기 이불에다가 잔뜩 토해 놓았으니 얼마나 장관이었겠는가?
다음 날 깨질 듯 아픈 머리와 온몸을 얻어맞은 듯한 육신을 일으키는데 도저히 제 정신과 상태가 아니다. 아마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서 일어났던 것 같다.
벽지에 내가 토한 소주 냄새가 베어 한 보름을 갔는데 방에 들어가면 그 냄새가 맡아지는데 아주 고역이었다.
숙취가 아닌 술취가 한동안 유지되더니 엄마의 콩나물국의 지원으로 정신 차린 것은 2-3일이 지나서였다.
호된 신고식이었다.
커피숍 로댕에서 가까운 곳에 ‘동래파전’이 있었다.
말 그대로 파전 집인데 이것이 지금의 피자 같은 사이즈에 두툼해서 식사 겸 안주 겸 모두 가능한 나의 최애 메뉴 중 하나였는데 합죽선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파 위에 올려진 돼지고기가 잘 풀려진 계란을 만나서 고소하고 푸짐했으며 먹음직스럽다.
당시 소주는 25도. 지금의 17도 수준의 뒷맛과는 차이가 많았다.
동석자의 주량을 화제로 삼을 때 소주 몇 병이냐고 확인하는데 그 시절 25도 한 병은 지금의 순해진 소주로 환산하면 거의 2병에 가까운 느낌이다.
만일 동래파전에서 둘이 앉아 파전 1장이면 식사를 따로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는데 소주 2병을 나누어 마시면 얼큰하고 1병을 추가하기 시작하면 취기가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 불친과 추억찾기 일환으로 로댕과 동래파전 자리에 가보았더니 두 군데가 모두 옷집으로 바꿨다.
세월을 따라 추억을 따라 갑자기 동래파전이 쏠린다.
지하 입구를 길다랗게 들어가면 조명부터 침침한 학사주점 스타일의 술집.
동태탕을 시켜 놓고 술 마시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고 당시 술집에서는 흡연이 자연스러운 장면이었는데 소주 한 잔 먹고 동태탕 한 숟가락 넘긴 후 피는 담배는 낭만 그 자체였다.
사실 나는 학생 때 애연가는 아니었고 담배 맛도 잘 몰랐다.
진정한 흡연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군 입대 이후라서 당시는 뻐끔 담배 수준이었다.
‘뻐끔 담배’라 함은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보내지 않고 입과 목에서 잠시 머물게 한 뒤 다시 뱉어 내는데 초보 흡연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진정한 흡연인 볼 때는 담배만 낭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담배 좀 피운다는 녀석들이 즐겨 만들던 도넛 구름도 인기 이벤트 중 하나였다.
그 당시 토담골에서 동래파전에서 몽롱한 눈 빛으로 형광등을 향해 발사하던 도넛들이 하늘로 올라가 밤하늘 은하수가 되었다는 전설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大部分同级同学都参加了春季MT。 通过分班授课,为营造尴尬的气氛起到了很大的作用。
我认为8成是科代表哥哥的作用。 因为各方面都很勤奋。
我记得有一场不可能的比赛,是混合网式足球。
如果我没有记错的话,这篇文章的标题背景图就是我们队的选手。
男3女2,但是以前双方都没有踢过网式足球,所以球队间的配合很好,胜负也险些没能获胜。 在最后关头似乎没能抓住逆转的机会。
有一天,我去网式足球队的成员家进行了插秧活动,在这里也发动了我的调皮劲,就像来到岳母家的女婿一样对在座的人开玩笑,当时宽容地守护我的同期女学生父亲年轻时的样子历历在目。
"伯父,希望您能喜欢。"
我第一次烂醉的记忆是,高三寒假时,我陪着佛爷去大排档吃了一瓶烧酒,回家时,在家门口的小店里买了一瓶黑褐色瓶装的烧酒,用瓶喇叭准确地分两次喝光。
想知道接下来怎么样吗?
首先回家正好。 离店铺和家很近,突然袭来的烧酒洗礼,莫名其妙的我的胃肠发生了化学反应,花费了一些时间。 我的肠胃该有多惊讶啊?
自己的主人突然毫无预兆地倒进生平第一次的酒,该有多震惊啊?
第二天追踪移动路线后发现,翻墙后有一只鞋子不在房间前面。
然后睡觉时,我突然躺下开始吐在被子上,旁边睡觉的弟弟吓了一跳,跑向了睡在里屋的父母。
睡觉的时候接到小儿子的呼叫来到厢房的两位难堪的表情也留下了。
大佬不省人事,把酒味儿吐得满地往被窝里吐,多壮观啊!
第二天,我头疼得像要裂开了一样,浑身像被打了一样,但是我的精神状态完全不是很好。 大概是躺了一整天,直到下午很晚才起床的。
我吐在墙纸上的烧酒的味道被割下来,去了半个月,一进房间就能闻到那个味道,真是苦差事。
不是宿醉,而是酒醉了一段时间,在妈妈的豆芽汤的支持下,过了2-3天才清醒过来。
这是一次严厉的申告式。
咖啡店罗丹附近有一家"东莱葱饼"。
顾名思义就是葱饼店,这是像现在的披萨一样的大小,厚实,可以兼作下酒菜,是我最喜欢的菜之一,在扁平的葱上,猪肉遇到了松软的鸡蛋,又香又丰盛,又可口。
当时的烧酒温度为25度。 这与现在的17度水平有很大的差异。
以同席者的酒量为话题时,会确认是几瓶烧酒,如果把那个时期的25度一瓶换算成现在的纯烧酒,几乎是2瓶。
如果两人坐在东莱葱饼上,一张葱饼,即使不单独吃饭,也能勉强坚持下去,但分两瓶烧酒喝起来很辣,如果再加一瓶,就会有醉意。
最近作为寻找与不亲的回忆的一环,去了罗丹和东莱葱饼的位置,结果两个地方都换成了服装店。
随着岁月的流逝和回忆,东莱葱饼突然涌上心头。
从地下入口进去,从照明开始就暗淡的学士酒馆风格的酒吧。
点明太鱼汤后,正好是喝酒的氛围,当时在酒吧里吸烟很自然的场面,喝杯烧酒,喝一勺明太鱼汤后抽烟,简直是浪漫。
其实我在学生时期并不是烟民,也不太了解烟的味道。
真正走上吸烟者之路是在入伍以后,当时只是一张一合的香烟。
所谓"吧嗒吧嗒香烟"是指,不把香烟烟雾送到肺部深处,在嘴和脖子上停留一段时间后再次吐出来,是新手吸烟者的典型表现,从真正的吸烟者来看,只是浪费香烟。 吸烟的家伙们喜欢制作的甜甜圈云也是人气活动之一。
你听说过当年土墙沟里,东莱葱煎饼用朦胧的目光射向荧光灯的甜甜圈升空成为夜空中的银河吗?